[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자살보험금의 첫 단추가 잘못 꿰진 건 일본의 보험 약관을 그대로 베끼는 업계 관행에서 비롯됐다.

지난 2001년 동아생명(現 KDB생명)은 재해사망특약이 담긴 상품을 판매하면서 일본의 보험 약관을 그대로 들여와 ‘자살의 경우에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명시했고, 이후 다른 보험사들은 문제의 약관을 그대로 베끼면서 같은 내용의 약관이 들어갔다. 명백한 보험사들의 실수였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약관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지한 생보사들은 부랴부랴 자살을 재해사망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약관을 수정했다.

또한 보험사들은 대다수의 가입자와 유족들이 약관 내용을 완벽히 인지하거나 꼼꼼히 읽어보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의도적으로 2~3배 더 많은 액수의 재해사망 보험금을 빼고 일반사망 보험금만 지급했다.

이러한 일련의 자살보험금 지급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올라온 건 또 다시 3년 후 일이다. 2014년 금감원이 ING생명의 종합 검사를 진행하면서 ING생명이 약관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생보사 전체로 검사를 확대한 금감원의 레이더 망에 줄줄이 사탕 엮이듯 수 많은 생보사들이 걸려들었다. 국내 굴지의 보험사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타사의 자살보험금 표준약관을 따라 하지 않은 푸르덴셜생명과 라이나생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가 자살보험금 문제로 궁지에 빠졌다.

금융당국은 미지급된 자살보험금을 모두 지급하라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고, 법원 역시 재해사망특약으로 정한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 내렸다.

이 때부터 생보사들의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먼저 지난해 6월 ING생명, 신한생명, 메트라이프생명, 하나생명, DGB생명 등 7개 보험사가 소멸시효과 상관없이 자살보험금을 전액 지급하겠다고 백기 투항에 나섰다.

14곳 중 나머지 7개 업체는 소멸시효가 지난 건에 대해서는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들어 지급을 거부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중징계 예고에 상대적으로 자살보험금 규모가 큰 업체들도 하나 둘 자살보험금 지급을 결정 내렸다.

동부화재, KDB생명, 알리안츠생명, KDB생명, 현대라이프생명 등이 지급을 결정하면서 마지막까지 지급을 거부하는 리스트는 일명 생보업계 빅3로 불리는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단 세 곳으로 압축됐다.

그리고 세 업체 중에는 영업정지와 CEO제재 등과 같은 중징계 처분이 예고됨에 따라 신창재 회장을 지키기 위해 징계 수위가 발표되기 직전 교보생명이 가장 먼저 영리하게(?) 발을 뺐다.

이후 영업정지와 대표이사 문책 경고 등의 제재가 확정됐고 긴급이사회를 통해 삼성생명이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한화생명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해 수 년간 끌어오던 길고 긴 논란이 마침표를 찍게 됐다.

지금껏 수 많은 시간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각종 꼼수로 버티다 회사 대표가 물러나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몰리자 ‘등 떠밀려’ 뱉어내는 꼴이 된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은 결국 명분도 실리도 다 잃었다는 평가다.

이들의 뒤늦은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 결정은 ‘원님 행차 뒤에 나팔’ 딱 그 격이다. 그럼에도 업체들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눈치다. 이번 지급 결정이 회사를 신뢰하는 소비자를 보호하고 고객과 함께하는 경영취지에 부합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고객들에게는 이미 높으신 분들의 안위에 위협이 가해져야 ‘고객’과 ‘신뢰’가 보인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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