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과실 판례 기획시리즈 : 인정사례 ②] "일반인 상식 근거 입증"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의학이나 의료술에 문외한인 일반인이 전문의사의 의료과실을 밝혀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의료과실로 추정되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웬만한 피해자들은 시간 및 비용 부담까지 겹쳐 소송을 제기할 엄두를 못냈던게 사실이다.

모든 소송이 다 그렇지만 의료사고 역시 입증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따라 승패여부가 좌우된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환자측에서 입증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한다면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관련소송에서 승소하기는 정말 어렵다.
 
이같은 상황에서 의료사고 피해자측에게 획기적인 판결이 나타났다.
 
◆ 대법원 "환자측은 일반인의 상식 근거해 의료인 과실 입증하면 돼"
 
지난 1995년 대법원 판결(사건번호 93다52402)에 의해 의료과실에 대한 일반인들의 입증책임이 ‘일반인의 상식’이라는 잣대가 판결문에 등장했으며 이후 이 판결 취지가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처럼 돼버렸다.
 
실제로 이후 수많은 의료과실 관련 소송에서 지금까지 이 판결이 바이블처럼 원용되고 있어 비록 17년 전의 판례이지만 상세하게 살펴보는 것이 의료사고 소송 당사자에겐 도움이 될 것이다.
 
1995년 2월10일 대법원(재판장 박준서)은 “의료행위는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여서 일반인들이 의료과실을 밝혀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환자측은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 등만 입증하면 되고 의료인측이 의료사고가 다른 원인때문이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의료행위와 의료과실과의 인과관계를 추정해 의료인측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게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쉽게 말해 환자측이 일반인의 상식에 근거한 의료인의 과실을 증명하고 또 환자에게 다른 질병등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면 의료인은 의료사고가 다른 원인 때문이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한 의료인측이 의료사고에 대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당시 “원래 의료행위에 있어서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책임이 있다고 하기 위해선 의료행위상의 주의의무의 위반과 손해의 발생과의 사이의 인과관계의 존재가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의료행위가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고, 그 의료의 과정은 대개의 경우 환자 본인이 그 일부를 알 수 있는 외에 의사만이 알 수 있을 뿐이며, 치료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의료 기법은 의사의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에 손해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인지 여부는 전문가인 의사가 아닌 보통인으로서는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환자가 치료 도중에 사망한 경우에 있어서는 피해자측에서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 있어서 저질러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를 입증하고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면 된다”고 판시했다.
 
이를테면 “환자에게 의료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한 경우에 있어서는, 의료행위를 한 측이 그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 의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 맞다”는게 판결문의 핵심 내용이다.
 
당시 소송은 환자의 사망원인인 뇌경색이 수술후에 일어난 건에 대한 것이었는데 재판부는 “이 사건 수술과 환자 사망 사이에 다른 원인이 개재됐을 가능성은 찾아 볼 수 없는데다 환자가 다한증외에는 특별한 질병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고 수술전 사전검사에서도 특이한 이상증상이 나타나지 아니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치료과정에 있어서 수술의사가 수술의 일부분을 다른 의사들에게 맡기고 늦게 수술에 참여해 수술도중 피부 및 근육을 절개해 놓고 기다린 시간이 다소 많이 경과하는 등 수술과정에 있어 소홀한 점이 있었으며 수술 후 사후대처가 소홀했다는 원심 인정사실을 종합하여 보면, 결국 환자 사망은 수술의사의 이 사건 수술과정에서의 잘못때문으로 추정된다”고 판시했다.
 
◆ '근육 절개후 시간 흘렀다면' 일반인 상식 근거 사망 원인중 하나 추정
 
이에 따라 “의료전문가가 아니고 수술과정에 참여한 바도 없는 원고들이 의료인의 과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환자의 사망 원인을 밝혀 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피고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한 것.
 
이 판결에서 '근육 절개후 시간이 흐른 사실'에 대해 환자측은 그 절개가 의학적으로 사망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게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으로 근육절개후 시간이 흐르면 환자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으로 사실상 의료과실이 인정된 셈이다.
 
재판부는 아울러 “의사가 환자에게 수술 등 인체에 위험을 가하는 행위를 함에 있어 그에 대한 승낙을 얻기 위한 전제로서 환자 본인 또는 그 가족에게 그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그 환자가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하여 그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가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설명의무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
 
이 판결 이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이 이어지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환자가 치료 도중에 하반신 완전마비 등 사지부전마비증상이 발생한 경우에 있어서는 환자측에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한 경우 의료인 측이 다른 원인으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입증하지 아니하는 이상 의료인측에서 책임을 져야한다”(대법원 1995.03.10. 선고, 94다39567 판결).
 
의사의 망막박리유착수술을 위한 전신마취의 회복 도중에 나타난 환자의 저산소뇌후유증으로 인한 신경마비증세가 의사의 과실로 인하여 초래된 것으로 추정된다(대법원 1995.03.17. 선고, 93다41075 판결).
 
전신마취 후 수술 도중에 심정지가 발생하여 뇌손상으로 인한 전신마비 증세를 초래한 의료사고에서, 피해자의 인과관계에 관한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의료원측에 책임을 지운 사례(대법원 1996.06.11. 선고, 95다41079 판결)
 
신결핵에 따른 신장 적출수술 중 하대정맥 열상으로 인한 과다출혈이 있었고 수술 후 저산소성 뇌손상에 의한 기질성 장애 등의 후유장애가 발생한 의료사고에서,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여 병원측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대법원 1996.12.10. 선고, 96다28158 판결).
 
이 판결의 법리는 이어졌으며 올해초에도 역시 비슷한 취지의 판례가 형성됐다.
 
지난 1월 27일은 대법원은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호흡이 정지되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였으나 환자가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사망한 사안에서, 의사의 마취제 과다 투여 등 과실과 환자의 뇌손상 및 사망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했다(대법원 2012.01.27. 선고, 2009다82275 판결).
 
일반인 상식 근거한 의료인 과실조차 입증못하면 환자측 불리
 
이처럼 의료인의 과실을 일반인의 상식에 근거해 판단해 의료인의 과실만 입증하면 환자측은 다른 병이 없었다는 등의 사실만 댈수 있다면 의료사고 소송에서 유리한 위치에 오르는게 사실이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일반인의 상식에 근거해서도 의료인의 과실을 입증하지못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예컨대 고혈압의 병력을 가진 환자이지만 입원일부터 수술 직전까지 마취과 의사와의 협의진료를 통하여 혈압이 잘 조절되는 것을 확인하고 전신마취하에 의사가 척추관협착증 등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을 시행하였으나 환자가 수술 후 제대로 의식이 돌아오지 못하며 뇌경색 증세를 보인 경우, 의사의 수술상의 과실로 인하여 환자에게 뇌경색이 발생하였다고 추정하기 어렵다고 한 판결(2002. 8. 23. 선고 2000다37265)이 있다.
 
대법원은 또 분만중 신생아 사망사고에 대해 의료인측의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으며(2011.07.14. 선고, 2009다101916) 안과수술 후 갑자기 나타난 예측불가능한 시신경염으로 환자의 시력이 상실된 경우 수술 부위가 시신경과는 무관한 안검 부위로서 시신경염으로 인한 시력상실은 통상적으로 예견되는 후유증이 아니라는 점에 비추어 그에 대한 의사의 설명의무 및 의료과실을 부정하기도 했다(대법원 1999. 9. 3. 선고 99다10479 판결)
 
결론적으로 95년이후의 판결들에 의하면 환자가 의료인의 과실을 일반인의 상식에 근거해 의료인의 과실을 입증하고 다른 질병등의 원인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하면 입증책임이 의료인에게 넘어가지만 일반인의 상식에 근거한 의료인의 과실조차 입증하지 못한다면 입증책임이 의료인에게 전환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환자측의 피해 구제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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