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큰 맘 먹고 150만 원 상당의 김치냉장고를 구입한 김(52세,여)씨는 최근 제품이 갑자기 작동하지 않았다.

수리를 맡기니, 업체는 핵심 부품을 구할 수 없다며 김 씨에게 수리 불가를 통보했다.

김 씨는 부품보유기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고 항변해 봤지만 업체 측은 일정 보상금으로 책임을 대신하겠다는 입장이다.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부품보유기간 이내에 수리용 부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발생한 피해에 대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김 씨가 업체로부터 받게 될 보상금은 대략 23만 원.

단순히 제품을 수리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다시 150만 원 상당의 가전제품을 재구입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김 씨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토로한다.

김 씨는 “고장 난 부분만 수리해서 쓰고 싶어도 업체 측이 부품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면 값비싼 가전제품이 통째로 무용지물이 되는 셈인데 소비자로써는 상당히 억울한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TV. 세탁기. 냉장고 등 고가의 주요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제품을 쓸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 마련이다.

5~6년 이상은 별 다른 이상 없이 사용하고, 이후 고장이 발생하면 3~4번 수리해 수명을 늘리는 게 우리가 상상하는 가전제품의 이상적인 생애(?)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제품이 고장이 났을 때 소비자는 아무리 고쳐 쓰고 싶어도 고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바로 제조업체가 필요한 부품을 보유하지 않고 있을 때다.

■ 제조일 기준 냉장고 9년, 스마트폰 4년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소비자분쟁해결 부품보유기간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소비자분쟁해결 부품보유기간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에 따르면 TV·냉장고의 부품보유기간은 9년, 자동차와 보일러·에어콘 8년, 세탁기·청소기·전자레인지·정수기·가습기·제습기 7년, 네비게이션·카메라 5년, 컴퓨터·스마트폰 4년 등이다.

사업자의 부품 수량 관리와 소비자의 부품보유기간 예측이 쉬워지도록 공정위는 2016년 10월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을 통해 제품의 부품보유기간은 생산중단 시점이 아닌 제조일부터 계산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제조업체 측의 부품보유기간이 짧아지면서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측면도 있음을 고려해 소비자들이 많이 사용하고 관련 분쟁이 빈번한 주요 제품별 부품보유기간은 이전보다 1년씩 연장했다.

■ “멀쩡한 새 제품인데...” 10년도 못 쓴다

문제는 이처럼 공정거래위원회는 품목별로 ‘부품보유기간’을 설정하고 있어도 업체들이 이와 상관없이 부품을 생산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간단한 수리만 하면 멀쩡히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버려야 하는 소비자들은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기존 제품을 수리하는 비용과 비교해 새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급해야 할 비용 부담은 훨씬 부담도 크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부품보유기간을 어긴 업체들은 정액 감가상각 잔여금액에 구입가의 5%를 가산한 보상금을 지불한다.

그렇다면 업체들은 어째서 부품보유기간을 지키지 않고 보상금을 지불해주는 쪽을 선택하는 것일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기업에 훨씬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부품보유기간을 지켜봤자 비용만 더 들어갈 뿐인데다, 제품 수명이 늘어나면 신제품 판매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는 신상품을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 부품을 없애는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소비자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비자피해보상규정 강화해 보상금 지불액을 상향 조정하거나 업체들이 부품보유기간을 강제적으로 지키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부품을 보유기간을 준수해야 하지만 각 제조사들이 모든 부품을 보유하다 보면 창고 및 물류비용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요 예상치를 두고 부품보유기간을 조정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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