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김현우 기자] 국토교통부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연일 논란이 불거지는 불타는 수입차 때문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는 자동차 리콜제도 개선 방안을 추진, 이달 중 법령 개정 등 관련된 방침을 결정하기로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란 제조사가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법행위를 한 경우 피해자에게 입증된 재산상의 피해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토록 하는 제도다.

특히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강하기로 유명한데, 지난 2015년 디젤게이트 파문으로 곤혹을 치른 폭스바겐의 경우 미국에서 153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한화 17조9,000억 원)에 달하는 보상을 약속했다.

반면 같은 문제로 한국에서는 배상금 대신 100억 원 수준의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한 것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과 교수 등 업계 전문가들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영상 갈무리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영상 갈무리

최근 국토부가 제도 도입을 검토하게 된 배경에는 BMW가 리콜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 때문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 BMW코리아 측은 지난달 26일 리콜을 결정하기 전까지 정부의 자료 제공 요구를 거부하거나, 리콜 계획서가 부실해 반려되는 등 리콜에 적극적인 모습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국내 리콜제도의 한계가 드러났다.

국토부는 우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자동차안전연구원 등 성능시험대행자가 자동차 화재 사고 현장에서 제작 결함을 조사하고 사고 차량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또 제조사에 대해 리콜과 관련한 자료 제출 기준을 강화하고, 부실자료를 제출할 때 과태료를 등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하며, 결함을 은폐‧축소하는 경우 매출액의 1%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리콜에 대해서는 매출액 1%를 과징금으로 물릴 수 있다.

▶적극적인 국회 “기업 스스로 원인 밝히게끔 만들겠다”

법령 개정을 위해 꼭 거쳐야하는 국회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수립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순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자유한국당 소속)은 지난 6일 BMW와 관련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결함에 대한 입증 책임 전환 도입을 국회차원에서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토부에서 이달 3일 운행 자제를 권고했지만 이미 30여대가 넘는 차가 불에 탔고 8월 들어 매일 한 대씩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볼 때 국토부의 대처는 매우 늦었다”고 밝혔다.

출처=YTN뉴스영상 캡처
출처=YTN뉴스영상 캡처

박 위원장은 특히 결함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에 대해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자동차 결함에 대해 제작사가 신속한 원인 규명과 사후 조치를 다 하지 않아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며 “현행 제조물 책임법에서 제조업자에게 손해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는 것보다 자동차제작사에게 더욱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주행 중 화재 등 차량결함에 따른 사고 발생 시 운전자 또는 차량소유자가 사고 원인을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며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해 자동차제작사가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하여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형 레몬법에 대한 전망도 밝아져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갖춰지고, 입증책임이 바뀔 경우 내년 시행 예정인 레몬법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레몬법이란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을 불량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안으로, 미국의 경우 새로 산 차에 수리할 수 없는 문제가 발견됐을 경우 제조사는 이를 30일 이내 해결해야하며, 구입 1개월 후 가시적인 결함이 있는 경우 레몬카로 분류해 보호를 받는다.

아울러 통상 2년 수준의 보증기간 내에 안전과 관련된 동일 하자로 2회 이상 수리한 경우 혹은 일반 고장으로 4회 이상 수리한 경우 레몬법 적용를 받아 새차로 교환하거나 환불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 역시 이를 벤치마킹해 신차에 ‘중대한 하자 3회 또는 일반 하자 4회’가 발생한 경우 교환 및 환불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국형 레몬법을 추진 중이다.

다만 한-미 양국엔 큰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 결함이 발생하면 소비자를 위한 보상금 및 벌칙 조항(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등)에 따른 천문학적 금액의 벌금이 부과돼, 제조사는 이를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반면, 국내의 경우 해당 법적 근거가 없어 문제가 발생해도 제조사에 약간의 벌금을 물리게 할 뿐이다.

이어 국내의 경우 소비자가 제조상의 결함임을 입증해야하는 구조다. 보통 소비자가 이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소비자들이 국가에 하소연을 할 수도 없다. 국가가 나서도 기업에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부와 국회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전망이 밝아짐에 따라 정부가 기업을 압박할 수 있는 제도 도입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형 레몬법이 보다 실용적인 법안으로 작용할 수 있게된 것이다.

▶기업 반대는 심할 것으로 예상

물론 기업들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레몬법은 대표적인 소비자 보호법이다. 입증책임이 기업으로 넘어올 경우 제조사가 결함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를 증명하지 못할 경우 레몬법에 따라 소비자에게 보상을 실시해야 하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따라 국가에 천문학적 금액의 벌금까지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적용하려 한 바 있다. 하지만 전경련과 대기업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과 교수는 “국내의 경우 시장 규모가 미국과 비교해 작은 만큼 500억~1,000억 원 수준의 과징금을 물리는 한국형 징벌적 배상제도가 만들어 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여‧야가 힘을 합쳐 징벌적 배상 제도, 입증책임 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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