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지난 1년간 꽁꽁 묶여있던 은산분리 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에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은산분리를 반대하던 여당 의원들이 인터넷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자는 기조로 돌아선데 이어 최근 문재인 대통령도 은산분리 완화 가능성을 시사해 자본확충에 난항을 겪던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다만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악용될 수 있다며 완강히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도 여전히 적지 않아 하반기 은산분리 완화 법안 통과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인터넷 전문은행에 한해서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제한하는, 이른바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날 문재인 대통령은 “인터넷전문은행은 지난 1년 은행의 개념을 바꾼 새로운 금융상품과 서비스로 국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금융권 전체에 전에 없던 긴장과 경쟁을 불러 일으켰다”며 “그러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도 규제가 발목을 잡아 금융권에 정착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 원칙이지만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며 “은산 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 전문은행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대주주의 사금고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주주의 자격을 제한하고 대주주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등의 보완장치가 함께 강구돼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덧붙였다.

이는 줄곧 반대 입장을 보여 왔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전향적 태도로 바뀐데 이어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감원장이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 위한 '은산분리' 완화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발언으로, 국회에 표류 중인 관련 법안이 올 하반기 내에 무난히 통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은산분리 제도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을 막는 구조적인 한계로 지적돼 온 게 사실이다. 은산분리 원칙이란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에 제한을 두는 제도로 현행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의결권이 있는 은행 지분을 4%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각각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카카오와 KT 주도로 만들어졌지만 은산분리 제도에 발목이 묶여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불만이 컸던 만큼 향후 은산분리 제도 완화로 IT기업들의 지분확대 시 시너지 확대가 예상된다.

정부와 여당의 은산분리 완화 정책 움직임에 시민단체와 정의당 측은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인터넷전문은행이 목표한 경제적 효과는 극히 적었으며, 인터넷 전문은행과 핀테크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긋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논평을 내고 “금융위를 비롯한 정부가 은산분리가 마치 산업과 혁신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결국 인터넷전문은행을 핑계로 은산분리라는 중요한 원칙을 허물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실련 측은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이후 현재까지 중금리 대출의 활성화 효과는 없었던 점과 은행업 자체의 고용이 감소되는 추세로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았다 점, 테크산업 발전의 효과가 불명확하고, 일반은행을 더 설립한 효과만 있었을 뿐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지난 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에서도 다양한 반대 의견이 흘러나왔다.

이날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2013년 동양그룹 사태를 사례로 들며, 은산분리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인터넷전문은행을 통해 은산분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비판했다.

박상인 교수는 “동양그룹 사태는 재벌 금융계열사가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동양증권이 증권사가 아니라 은행이었다면, 동양그룹 사태는 특정 재벌의 몰락에서 끝나지 않고 금융 및 경제위기를 야기했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은산분리 규제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성공과 무관하다”며 “카카오뱅크가 자본확충에 성공적이었던 것에 반해 케이뱅크가 자본확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은산분리 규제 때문이 아니라, 가계신용대출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케이뱅크의 존속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회의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주선 변호사 역시 인터넷전문은행을 활성화하기 위해 현행 은행법의 은산분리 규정을 완화할 필요성을 찾기 어렵다며, 해당 문제를 금융소비자보호강화 방향에 맞춰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08년 키코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증권 사태 등 대규모 금융소비자피해가 반복되는 와중에 금융감독당국이 금융소비자피해구제에 필요한 제도 개선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던 점을 지적하며,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은산분리는 완화할 것이 아니라 확고히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선주 변호사는 “미국, 일본, EU 등의 경우, 대체로 은산분리규제를 유지하고 있고, 인터넷전문은행이라고 해서 특별한 규제 완화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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