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일자리, 편견과 차별을 넘어⑲

[컨슈머치 = 김현우 송수연 전향미 기자] “시설은 발달장애인의 선택 기회를 박탈하고 일정 지역에 격리하고 고립시킨다. 사람들이 격리되고 선택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는 곳이 바로 시설”

캐나다 발달 자조 단체 창시자 패트 워스(1955~2004).(출처=캐나다 피플퍼스트 홈페이지)
캐나다 발달 자조 단체 창시자 패트 워스(1955~2004).(출처=캐나다 피플퍼스트 홈페이지)

캐나다 발달장애 자조(自助) 단체 ‘피플퍼스트(People first)’를 창시한 발달장애인 당사자 패트 워스(Pat Worth) 씨가 밝힌 시설에 대한 사견이다.

그는 “시설은 삶 그 자체를 거부하는 곳이다. 시설은 우리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능력조차 박탈하며 발달장애인의 꿈을 허락하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 시설 거부, 이유는?

올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실시한 전국단위 조사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의 42.6%, 정신요양시설 거주 장애인 59.7%가 탈(脫)시설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계는 2005년부터 ‘탈시설’을 요구 중이다. 자기결정권이 없는 삶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탈시설이란 장애인이 시설에 수용되는 것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 거주하며 필요한 복지, 치료 서비스 등을 제공받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006년 인권위가 ‘장애인 생활시설에 대한 인권 현황을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탈시설 요구는 더욱 확대됐다.

시설에 입소하는 순간부터 장애인 스스로의 결정이 없어지고, 각종 인권 침해 사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시설에 본인 스스로 입소한 경우는 22.1%에 불과했다. 나머지 77.9%는 타인의 강요 등으로 인해 입소했다.

지난해 인권위 조사 결과에서도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의 67.9%가 비자발적 입소자로 나타났다. 정신요양시설의 비자발적 입소도 62.2%에에 달했다.

궁극적으로 이들이 탈시설을 원하는 이유는 시설 내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다.

인권위 조사에서 입소자들은 숙소 거주 인원이 다수라서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없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이 목욕하기 어려우며 다른 사람과 함께 목욕을 해야 하는 등 개인 프라이버시(사생활 침해)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또 시설 내 언어폭력과 무시, 신체폭력, 강제노동, 감금 등의 인권침해 또한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장애인단체 관계자는“우리는 그동안 광주 인화학교사건, 대전 성지원 사건,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대구 성보재활원 사건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를 보호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수용해온 시설에서 자행된 인권침해를 수없이 목도했다”며 “장애인 시설 인권침해 문제는 전국 곳곳에서 매년 일어나고 있어 탈시설 및 자립 지원 정책이 추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출처=장애인 자조모임 홈페이지.
출처=장애인 자조모임 홈페이지.

■ 지자체 '탈시설 프로그램' 아직 부족

시설에 만연한 문제를 인식한 지방정부 등에서는 탈시설에 대한 고민이 수년 전부터 이뤄져 왔다.

서울시는 시설거주 장애인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조사를 진행하고 2009년에 장애인 자립에 중점을 둔 소규모 생활 시설인 ‘자립생활 체험홈’을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체험홈이란 중증장애인이 집이나 시설을 벗어나 주체적인 자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그에 적합한 자립생활의 경험 및 기술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또 서울시는 2013년에는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탈시설 전환주거 제공 및 탈시설 정착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지난 2015년에는 장애인개발원과 함께 발달장애인 탈시설 계획안을 발표했다. 올해는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도 내놨다.

장애계에서도 탈시설을 위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체험홈을 운영하는가 하면, 자립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일자리’ 지원을 위한 각종 교육 및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체험홈 운영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완전한 자립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장애인 시설에 입소한 A씨의 하루

발달장애인 A씨는 지난주 시설에 입소했다.

A씨는 이 곳의 규칙이 아직 몸에 익숙치 않다. 아침 7시까지 일어나야하는 기상시간부터 곤욕이다. 입맛도 없지만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갔다. 하필 가장 싫어하는 된장국이 나왔고 억지로 몇 술 먹었다.

시원하게 산책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침대로 돌아와 TV를 본다. 관심도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채널도 바꿀 수 없으니 그냥 멍하니 TV를 응시한다.

점심식사 뒤 다행히 산책을 허락받아 건물 마당은 한 바퀴 걸었다. 땀이 조금 나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오후 5시가 되자 대학생 봉사자들이 목욕 봉사를 왔다. 일면식도 없는 대학생들에게 벌거벗은 몸을 보이는 건 여간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참에 씻어야지.

매일 정해진 일과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 외에는 A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체험홈 거주 장애인 중 절반 이상이 시설로 다시 복귀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 서울시 자립생활 체험홈 퇴소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6년 5월까지 거주시설 체험홈에 입주한 265명의 거주인 중 126명이 퇴소했으나 기존 거주시설로 돌아간 사람은 65명이었다. 다른 시설로 입소한 사람은 2명이었다. 즉, 절반 이상이 다시 시설에 입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현영 사무국장은 “거주시설 내 체험홈은 자립생활로 연결되기 어려운 기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는 “체험홈이 정원 4명이면 탈시설로 봐야하지 않냐고 하는데, 과연 거주인들이 룸메이트를 선택했는지 묻고 싶다”면서 “물리적 공간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거기 사는 장애인의 삶에 집중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커뮤니티케어

출처=보건복지부.
출처=보건복지부.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 기존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사회정착을 지원하고자 '커뮤니티케어(Community Care)'를 도입하기로 했다.

커뮤니티케어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택이나 체험홈 등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자아실현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선진국형 사회복지서비스 체계다.

예컨대 시설에 사는 발달장애인을 지역사회로 이주시키기 위해서는 장애 당사자를 잘 아는 가족, 복지사, 심리학자, 의사, 간호사 등과 같은 전문인들이 전환팀을 구성한다.

이 팀은 먼저 장애인에게 지역사회 생활을 설명하고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해 지역사회에 필요한 서비스를 마련하고 그 후 계속 그의 상태를 모니터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커뮤니티케어의 도움을 받는 중증장애인 B씨의 하루

27년간 지체 1급 중증장애인으로 시설 생활을 한 B씨는 최근 장애인자립센터를 통해 체험홈에 입주하게 됐다.

B씨는 오랜 기간 시설에 머물렀던 탓에 사소한 것 하나 결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체험홈에서 차근차근 스스로 결정하는 방법을 배웠다.

체험홈에서 원하는 시간에 친구들과 만나고 산책하며, 먹고 싶은 간식도 찾아 먹는다. 복지사의 도움을 받기는 해야 하지만 샤워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

이후 B씨는 직업훈련센터의 직무지도사의 도움으로 원하는 직무를 찾았다. 한 장애인단체의 활동가로 두각을 나타낸 B씨는 최근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다.

얼마전에는 모임을 통해 만난 여성과 교제도 시작했다.

국내에는 커뮤니티케어라는 용어와 개념 자체가 낯설지만 결코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이미 1970년대 이후 커뮤니티케어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각 지방정부마다 커뮤니티케어를 위한 전담 조직을 구축해 운영 중이다.

미국은 1978년 ‘펜허스트 판결’을 통해 장애인의 탈시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대규모 수용 시설이었던 ‘펜허스트’에 입소한 장애인들은 삶의 질 향상이 불가능하다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역사회 기반 치료 제공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영국은 1990년에 커뮤니티케어법을 제정했다.

영국 커뮤니티케어 운영 방식의 핵심은 케어매니지먼트(Care Management)다.

케어매니저(Care manager)는 담당지역의 서비스 욕구사정, 서비스 제공 여부의 판단, 서비스 배치 등의 과정을 담당한다.

영국에서 케어매니저를 지명 하는 책임은 지방정부에 있고 대부분의 케어매니저들은 지방정부의 사회서비스국에 소속이다. 이들은 대다수가 사회복지사로 구성돼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 3월 커뮤니티케어의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커뮤니티케어 추진본부를 꾸려 장애인 자립생활 및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정착 등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 중이다.

또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학계 및 현장 전문가를 모아 커뮤니티케어 정책 포럼 및 간담회를 진행했으며 10월까지 ‘커뮤니티케어 추진방향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관계자는 “탈시설에 성공한 사례를 보면 실제로 자유롭게 사는 현재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커뮤니티케어 등을 통해 더 많은 시설 장애인 지역사회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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