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일자리, 편견과 차별을 넘어⑧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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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치 = 김은주 김현우 송수연 기자] 노동시장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에게 보호작업장이 아닌 일반 기업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다.

장애인의 고용 기회를 넓힌다는 취지로 ‘의무고용제도’가 도입된 지 27년이 넘었지만 그야말로 ‘유명무실’. 대다수의 기업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채우는 대신 고용부담금으로 내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는 공공기관과 대기업들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요지부동이다.

욕 먹고 기분 좋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대기업은 이미지가 곧 생명이다. 대중의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대기업들은 도통 변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일까?

■장애인 의무고용률 30곳 중 1곳만 지켰다

(출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출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 일자리 창출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지난 2017년부터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에 대한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각각 3.2%와 2.9%로 상향 조정했지만 그 효과는 미비하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비례대표, 환노위)이 공개한 2017년 12월 기준 ‘대기업집단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개 업체 가운데 장애인 고용의무를 준수한 회사는 단 한 곳에 불과했다.

대우조선해양(4.73%)만이 유일하게 장애인 고용의무 기준치를 넘겼을 뿐, 나머지 29개 업체는 기준치에 크게 미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업체별로 삼성 1.90%, SK 1.55%, GS 1.23%, 한화 1.82% 등은 장애인 고용률이 2% 미만이었으며, 특히 부영 0.49%, 한국투자금융 0.57%, 대림 0.81% 등 3개 기업은 1%에도 미치지 못해 커다란 질책을 받았다.

송옥주 의원은 “장애인 의무고용률에 미달하면 2017년 기준 1인당 최소 매달 81만2,000원의 고용부담금을 내야 하지만, 대기업들은 장애인 고용하느니 차라리 고용부담금 납부로 대신 하겠다는 태도로 정부의 장애인 고용 정책 방향에 순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이어 “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인 만큼 대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헀다.

은행권도 의무고용률을 안 지키기는 마찬가지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5대 시중은행의 연도별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2014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장애인 고용률 평균은 1.03%로 법정 의무고용률인 2.9%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은행별로 우리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의 경우 장애인 고용률이 0%대를 기록했다. KB국민은행은 1%를 간신히 넘겼지만 매년 장애인 고용률이 감소했다.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던 NH농협은행도 1.46%로 의무고용률에 미치지 못했다.

비단 일반 사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다. 장애인 복지정책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 절반이상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을 정도니, 차라리 의무고용률을 지키고 있는 기업을 찾아 칭찬을 하는 것이 빠를 지도 모른다.

■장애인 ‘이래서’ 뽑기 힘들다

(출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출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컨슈머치>는 유명 대기업 홍보실을 통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하는 나름의 변을 직접 들어봤다.

올해 국감의 집중 타깃이 된 은행권에서는 고객들의 인식이 먼저 바뀌지 않는 한 은행 내 장애인 채용은 어렵다고 토로한다.

은행 홍보실 직원 A씨는 “은행 직원 중 70% 이상이 영업점 직원이다. 알다시피 영업점 업무는 대부분의 고객과의 대면 거래가 주인데, 장애인 직원이 응대할 경우 고객들로부터 항의 아닌 항의가 많이 들어오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러한 부분은 은행 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장애인 고용에 더욱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업종 내 비은행 계열사 채용 담당자 B씨는 “금융 쪽은 마케팅 및 영업 활동을 해야 해서 외근을 나가야 할 경우가 많은데 장애인들을 내보내기 쉽지 않다”라며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적합한 직무가 한정적”이라고 말했다.

금융사 관계자 C씨는 "금융 서비스는 무엇보다 고객과의 소통의 중요한데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는 직무가 제한적이라 인력 운용상의 어려움이 있다"며 "특히 고용 문제는 한 법 뽑다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워낙 많다보니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 외에 대다수의 업체들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느니 부담금을 내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덜 된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식품업계 관계자 D씨는 "장애인 1명을 고용하고자 할 때 시설부터 조직문화까지 기업 입장에서 뜯어 고쳐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차라리 벌금을 내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정부에서 아무런 지원 없이 그저 고용률을 수치만을 맞추라고 우겨 넣기식 정책을 펼치는 것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 E씨는 “장애인 고용을 늘리겠다는 취지 자체는 좋지만, 기업에 장애인 일자리 대책을 떠넘기는 느낌”이라며 “일정 인원 이상 장애인을 뽑지 않으면 부담금을 물게 하는 패널티는 주면서 정작 정부에서 뒷받침 해주는 지원이나 움직임은 전혀 없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내는 것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 보다 리스크가 더 적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장애인 의무고용률(공공기관 3.2%, 민간기업 2.9%) 자체가 너무 높게 설정돼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불만도 나온다.

제약업체 홍보 담당자 F씨는 “3% 가까이 되는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며 “장애인 고용 문제를 단순히 수치로 따지지만 말고 얼마나 양질의 일자리에 장애인들을 배치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성 평가도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사내 장애인 채용에 대한 내부 지침이 따로 없기 때문에 일개 채용 담당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채용을 결정하는 것도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대기업 계열사 인사 담당자 G씨는 “채용 관련 담당자이긴 하지만 장애인 지원자를 채용을 해도 되는지 기준이 서지 않을 때가 많고, 애매하다”고 토로했다.

한편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조호근 국장은 “기업 인사 담당자들과 만나서 상담해 보면 다양한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특히 장애인 한 명을 고용하고자 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무척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예컨대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한 명을 고용했을 경우, 우선 사무실 내 이동 가능한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또 건물 내 휠체어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고정형 리프트 설치 등 회사 전반 인프라가 바뀌어야하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신 한 번 바뀌고 나면 그 효과는 굉장히 크다. 기업 인프라 외에도 하청업체, 부대시설, 주변 식당까지 모두 바뀔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사회 전체가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소기업에 100명이 고용되는 것보다 대기업에 1명이 고용되는 것이 장애인 일자리 개선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큰 만큼 대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장애인 고용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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