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일자리, 편견과 차별을 넘어⑳

스타벅스 더종로R점 수퍼바이저 최예나(엘레나) 씨.
스타벅스 더종로R점 수퍼바이저 최예나(엘레나) 씨.

[컨슈머치 = 송수연 박지현 기자] “여긴 커피 머신 소리가 커서 시끄러워요”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최예나 씨(28)를 만나기 위해 더종로R점에 도착했다. 예나 씨는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조금 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이었다. 청각 장애가 있음에도 인터뷰 진행 과정에 소음까지 배려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사실 이런 생각마저도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 그녀는 청각장애 2급을 가진 바리스타다. 스타벅스가 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장애인 바리스타 양성 교육을 할 때 그녀는 교육생 대표를 맡았을 정도로 바리스타로서의 기질이 뛰어난 인재다. 

예나 씨는 인사 후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하던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바삐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청각장애라는 것 자체가 워낙 드러나는 장애가 아닌 것도 사실이지만 그녀가 능수능란하게 포스에서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통해 다년간 쌓아온 스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녀의 핸디캡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다시 돌아온 예나 씨는 나를 조용한 자리로 안내했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됐다.

스타벅스 더종로R점 내부. 국내에서 가장 큰 매장이다.
스타벅스 더종로R점 내부. 국내에서 가장 큰 매장이다.

“더종로R점에서 일하는 슈퍼바이저 최예나입니다”

그녀의 꿈은 본래 바리스타는 아니었다.

어릴 적 꿈은 스타일리스트였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 가진 꿈이었다. 그래서 대학교도 의류학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막상 의류학과에서 실습도 하고, 공부도 해보니 본인 적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학교 다니면서 우연히 카페 알바를 하게 됐고 커피에 대해서 배우다 보니 그게 너무 재밌어서 바리스타를 하게 됐어요”

그렇게 스타일리스트라는 꿈은 접고 바리스타의 길을 걷게 된 예나 씨는 본인이 일하는 카페 사장님의 권유로 스타벅스가 진행하는 장애인 바리스타 양성 교육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사장님이 스타벅스의 서비스와 교육을 경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하셨어요. 6개월에서 1년 정도 경험 쌓고 다시 오라고(웃음)…교육받고 스타벅스의 바리스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근데 그 카페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어요. 사장님이 1년 넘게 돌아오라고 하셨는데 제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지금은 포기하셨어요. 저를 놓친 것에 대해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으세요”

이렇게 시작된 스타벅스와의 인연이 그저 감사하다는 예나 씨다.

2015년 처음 스타벅스에 입사한 그녀는 건대스타시티점에서 일 하기 시작했다. 이후 소공동점을 거쳐 8월부터는 국내에서는 가장 큰 매장인 더종로R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나 씨는 최근 장애인 바리스타 챔피언십 수상 경력이 있을 만큼 커피에 대한 이해와 기술이 탁월하다.

유망한 바리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최예나 씨가 청각장애를 가진 직장인으로서 느끼는 고충과 생각, 비전 등에 대해 나눈 진솔한 이야기를 문답 형식으로 풀어 봤다. 

출처=컨슈머치.
출처=컨슈머치.

Q.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보이는 흔한 편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수화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예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저는 이러한 선입견을 깨고 싶어요. 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말 거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수화를 쓸 줄 몰라요. 처음부터 배웠으면 수화를 사용했겠지만 저는 일반 고등학교를 나와서 구화(상대의 말을 입술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을 보고 이해하거나, 청각을 통해 습득한 음성언어로 말하는 의사소통 방법)를 사용해요.

저는 입사 때도 소감으로 "장애가 있어 고객들과 소통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다"고 얘기 했었어요.

Q. 바리스타로 일하게 될 거라고 상상하신 적 있으세요?

생각해보면 저도 처음엔 제가 카페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던 것 같아요. 카페에서 일 해보고 고객들이랑 소통하는 것이 좋아서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택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이기는 하네요.

Q. 제 선입견일 수도 있는데, 청각장애인이라는 점에서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소통이라는 건 꼭 그렇게 많은 말들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웃으면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맛있게 드세요” 이렇게 음료 드리는 것만으로도 고객님들이 행복해하세요.

그런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끼고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Q. 앞치마에 ‘청각장애인 파트너’라는 배지가 달려 있네요?

이 배지를 달고 있는 이유는 간단해요.

제가 음료를 만들 때 대화하기가 힘들거든요. 소통 대상의 입모양을 보지 않으니까 구화가 어려운 상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잘못 들었거나 잘 안 들렸을 때 고객님들이 오해하지 않게끔 배지를 단거예요.

배지를 보지 못하는 분들도 분명 계시지만 또 보시는 고객분들도 많아서 배지 효과를 많이 보고 있어요.

주문 받고 있는 최예나 씨.(출처=컨슈머치)
주문 받고 있는 최예나 씨.(출처=컨슈머치)

Q. 여러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분명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을 것 같은데, 그 비법 좀 알려주세요.

솔직히 청각장애인은 정보 수집 능력이 비장애인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어요.

보통 주변에서 말하는 정보를 통해서 상황 파악이 가능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들을 수 없는 상황에 노출되면 상황 파악이 어려워서 더 많이 물어보고 더 많이 공부해요.

주문받을 때도 항상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습관이 있고요.

음료랑 푸드랑 함께 나가야 할 때는 듣는 게 어려워서 포스를 보고 눈치껏 음료와 푸드가 같이 나올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놓기도 해요.

Q. 다양한 고객들과 부딪혀야 하는 상황도 많아서 고충도 좀 있을 것 같아요.

네. 가끔 있어요.

제가 “죄송해요. 잘못 들어서 한 번만 더 말씀해주세요. 제가 청각장애인 파트너라서요”라고 설명드렸는데도 불편해하면서 짜증 내시는 고객분들이 종종 계세요. 그때 저도 난감하고 상처받기도 하죠.

이건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인데요.

고객에게 메뉴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계속 반복적으로 “네?” 하시더라고요. 그러고는 “말투가 왜 그래요? 외국인이세요?”라고 하신 분도 있었어요. 사실 택시를 타도 발음 때문에 외국인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래도 저를 이해해주시고 배려해주시는 고객분들이 훨씬 더 많아서 이런 고충도 이길 수 있어요.

제 배지를 보시고 입모양을 또박또박 발음해주시는 고객님들도 계시고, 제가 알아듣기 쉽게 천천히 말씀해 주시기도 해요. 어떤 고객분들은 제가 주문을 잘못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감안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도 고객분들께 최대한 집중하면서 소통해요.

Q.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스타벅스에서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파트너라고 불러요. 전 파트너 복이 많은지 정말 좋은 파트너들만 만났어요.

제가 잘못 들었을 때 대신 들어서 전달해 주기도 하고, 가끔 예상치 못한 질문 받고 난감해 하면 옆에 있는 파트너가 “저한테 말씀해주세요”라며 번개처럼 나타나 도와줄 때도 있어요. 그때마다 정말 든든해요.

그리고 제가 손님과 만나는 포지션에 들어가면 파트너들이 저한테 신경을 많이 써주는 것도 느껴지고요.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없다 보니 놓치는 부분들도 생기는데 화도 한 번 안 내고 다 이해해줘요.

Q. 이참에 파트너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시는 건 어떠세요?

쑥스러운데(하하).

제가 또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고맙다는 말도 잘 못했었거든요. 마음 속으로는 진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표현을 잘못할 뿐이지 속으로는 애정이 넘쳐요. 가끔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것은 파트너들 덕분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Q. 특별히 더 감사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요?

제가 입사하고 교육받을 때부터 봤던 분이 있어요.

스타벅스 내에는 행복추진파트가 따로 있거든요. 이 팀은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의 복지를 관리하는데요, 특별히 장애인 파트너를 위한 담당자분이 있어요.

그분 때문에 저는 스타벅스를 오래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 입사했을 때 업무를 잘 해낼 수 있을지 부담감이 컸는데 담당자분과 면담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고 매장을 옮기면서 슬럼프가 왔었는데 그때도 적당한 채찍과 당근으로 잘 케어해 주셨어요.

행복추진파트에서는 장애인 파트너가 매장에서 생긴 충돌이라든지 관련 문제들을 조율하고 면담을 통해 힘도 주시고 하시는데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출처=컨슈머치.
출처=컨슈머치.

Q. 좋은 동료들과 복지 서비스가 있어서 행복하시겠어요. 그럼 일하면서 만난 고객들 중에 기억에 남는 고객분들에 대해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매장 옮길 때 자주 오신 고객님께서 너무 아쉬워하면서 선물도 주신 분이 기억나네요.

그리고 방학 끝나고 오랜만에 학교 와서 스타벅스에 왔는데 제가 여전히 웃으면서 반겨줘서 너무 좋았다는 분도 계셔서 감동받았어요.

고객분들에 대한 얘기는 아니긴 하지만 스타벅스 사회공헌활동에 봉사자로 참여하면서 다양한 추억을 쌓기도 했고 스타벅스 18주년 사내 행사에서 엄마한테 영상편지를 받은 기억나요.

Q. 그렇군요. 이곳에서 일하면서 스스로 생각의 전환도 많이 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혹시 관련한 경험이 있으면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처음에는 바리스타만 생각하고 입사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슈퍼바이저라는 직책이 생기고 관리자로 일하게 되면서 책임감을 느끼고 일하고 있다는 점이 커요.

슈퍼바이저로 일하게 되면서 다른 파트너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일하게 됐거든요.

물론 저 스스로에게 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모범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불안한 적도 있었죠.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데, 어느 날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엘레나(매장에서 쓰는 최예나 씨의 닉네임)를 보며 많은 힘을 얻고 있어요, 일할 때 엘레나가 제일 따뜻했어요”라고 말을 해줬는데 그때 생각의 전환이라고 하긴 거창할 수 있지만 제 스스로 변화하는 계기가 됐죠.

그 말을 듣고 책임자로서 자신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좀 더 긍정적으로 성장하게 된 저를 느끼게 됐어요.

무엇보다 장애인 파트너가 도움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고, 그게 저한테 정말 큰 생각의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Q. 지난해 장애인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다고 들었어요. 후배들에게도 큰 귀감이 됐을 것 같은데 앞으로 목표는 어떻게 되세요?

일단 가장 가까운 목표는 부점장 지원에서 합격하는 게 목표입니다.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배워서 나중에 제 경험을 공유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 좋은 멘토가 되는 것도 목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되게 긍정적이거든요. 이 에너지를 나누고 싶어요.

Q. 장애를 가진 분들 중에 스타벅스에 입사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본인만의 꿀팁 좀 공유해주세요.

일단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 채용이 있어요. 공채 때 이력서 넣고 면접을 거치시면 되는 간단한 절차에요.

근데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채용은 스타벅스가 진행하는 직업 훈련을 이수해야 하는 조건이 있어요. 6주 과정이니까 꼭 신청해서 들으시길 바라요.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은 없더라고요. 긍정적인 마인드로 준비하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Q. 요즘 유행하는 질문으로 인터뷰 마무리할게요. 예나 씨에게 스타벅스란?

오히려 나보다 편견 없이 나를 인정해주고 기회를 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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