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차는 '레몬'입니까①

[컨슈머치 = 김현우 박지현 기자] 올해 들어 레몬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적용이 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신차 환불 및 교환과 관련해 소비자-업체 간 다툼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이를 중재할 수 있는 규정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레몬법'부터 '레몬 같은 법'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레몬법이란 익히 알려진 대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을 불량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레몬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냄새는 좋지만 막상 먹어보면 신맛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는 레몬의 특성에서 착안한 것이다. 새 제품을 샀을 때 겉은 화려하지만 문제가 많아 정비를 자주 받을 경우 ‘겉만 번지르르한 레몬 같은 제품’에 관한 법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출처=PIXABAY)
(출처=PIXABAY)

레몬법의 발상지인 미국의 경우 1975년부터 시행됐으나, 국내의 경우 지난 2017년 10월 24일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통해 공포됐고, 지난 1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제47조의2(자동차의 교환 또는 환불 요건)에 따르면 비사업용 자동차를 구입한 소비자에 한해 차량 인도 1년, 주행거리 2만 킬로미터(km) 이내 신차에서 원동기‧동력전달장치‧조향장치‧제동장치 등 차량 주요 부품에서 2회 이상의 하자가 발생하거나, 그 외 부품에서 3회 이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리고 수리기간이 총 30일을 넘을 경우 레몬법을 적용해 제조사에 차량의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

소비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이는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서 중재 제도를 통해 차량의 환불 및 교환 등을 결정하게 된다.

■ 현장 적용 전혀 안 된 ‘레몬법’…“영업점 사원은 레몬법 뭔지도 몰라”

문제는 소비자-업체간 차량 계약이 이뤄지는 현장에선 레몬법이 여전히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자가 레몬법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사전에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차량매매 시 교환‧환불 규정에 관한 계약이다.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제47조의4에 따르면 교환·환불중재 신청에 필요한 사항으로 ▲자동차 제작자 등이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교환·환불중재 규정을 수락한 경우 ▲하자차량 소유자가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또는 교환·환불중재를 신청할 때 국토교통부령에 따라 교환·환불중재 규정을 수락한 경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즉, 자동차 매매 단계에서 두 이해당사자가 차량 교환‧환불‧중재에 대한 사전 동의를 서면으로 계약해야만 레몬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국내 업체든 수입차 업체든 신차 계약 단계에서 이 같은 계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지적에 국내 한 완성차업체 본사 관계자는 “계약 단계에서 소비자가 인지할 수 있게 안내 후 레몬법에 관한 조항이 추가된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레몬법이 시행되자마자 법에서 요구하는 절차에 따라 신차계약을 하고 있다고 말한 셈이다. 과연 사실일까.

<컨슈머치>가 서울‧경기 지역 내 위치한 국내 5개 완성차업체의 영업점 중 10곳을 무작위로 선정해 취재해본 결과 10곳 모두 “레몬법에 관한 본사 지침이 내려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 영업점 중 일부 영업사원은 레몬법이 어떤 법인지 조차 몰라 기자에게 반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에 따라 자동차 계약 단계에서 소비자가 인지할 수 있을 만큼 레몬법을 설명해야 할 의무를 가진 영업사원이 간단한 설명조차 못할 정도로 관련 지식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레몬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다른 완성차업체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따라 관련 내부 규정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방법 등을 논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아마 모든 업체가 같은 상황인 만큼 실제 현장에서 소비자들이 적용받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레몬법, 소비자보호법 맞나? “독소조항, 입증책임 등" 지적

한편, 레몬법의 목적이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있지만, 조문에 쓰인 단어에 따라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있다고 일각에선 지적한다.

앞에서도 거론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제47조의4가 바로 그 것인데, 해당 조문에 ‘수락’이나 ‘사전 동의’ 등 선택적인 용어가 기재돼 있어, 업체 측이 자칫 수동적으로 나올 경우 유명무실한 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독 이 조항이 부각되는 원인은 자동차 회사의 사전 동의가 없다면 소비자는 중재 제도 자체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국토교통부 측은 자동차 회사의 사전 동의를 받는 것은 미국에서도 일반적인 절차라고 설명한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제작사가 레몬법 중재에 대한 사전 동의를 하고 있다”며 “완성차 제작‧판매사가 사전중재를 동의한 이후 매매계약 등 이후 절차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과 교수는 “국토부가 미국을 예시로 들었는데, 미국의 경우 제조사가 나서서 레몬법에 대한 것을 계약서상에 명기한다”며 “소비자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미국처럼 자진해서 하는 것과 지금처럼 (국내 업체들이)안하려고 하는 것은 극과 극이다”며 “계약서에 명기하지 않더라도 신차 구입 시 자동으로 적용되게 하는 것이 법의 올바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중 일부 내용(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중 일부 내용(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또 일각에서는 자동차 업체가 직접 결함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문화돼 있지 않은 점을 지적한다. 실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에는 이 같은 내용이 들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동법 제47조의3에 ‘6개월 하자 추정 규정’을 통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이 조항은 신차를 인도 받고 6개월 안에 발생한 결함은 차량제조 때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문제는 6개월 이후에는 소비자에게 입증책임이 넘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6개월’이라는 기간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그는 중고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를 예로 들며 "6개월이라는 기간에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중고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는 한 달 2,000km 이내에 차에 하자가 발생하면 소비자는 교환‧환불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 같은 기간과 거리를 설정한 이유는 중고차 구입 후 90%에 달하는 하자가 이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명확한 근거 없이 ‘6개월 이내 하자는 제조사 책임, 6개월 이후 하자는 소비자 책임’이라고 정한 것이다. 근거나 없이 아무렇게나 던진 기간을 법에 적용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소비자원 분쟁조정위원으로 있었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이 결함을 입증하기 위해 업체 측 전문가와 치열하게 싸운 것이다”며 “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게 업체 측 전문가들인데, 일반 소비자가 이들을 상대로 책임을 입증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말했다.

이에 국토부 한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각 주(州)별로 레몬법의 내용이 조금씩 다른데, 모든 주에서 완성차 업체가 결함을 입증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6개월 하자 추정 규정’은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연합의 레몬법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며 “한국형 레몬법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이를 벤치마킹 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 중재제도의 강제력…“양날의 검으로 작용할까”

일각에선 중재제도를 통할 경우 한국소비자원을 통한 조정제도나 법원을 통한 소송 등의 대안적 분쟁해결을 할 수 없거나, 중재제도를 통해 만약 소비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왔을 경우 대안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사실 중재제도의 도입 자체는 소비자에게 긍정적이다. 이를 통한 결과는 법원 결정과도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기에 제작사가 이를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레몬법 시행 이전까지 결함으로 인한 자동차 교환·환불은 한국소비자원의 고시(告示)로 규정한 요건에 따라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제도를 통해 그 분쟁해결이 시도됐다. 그러나 이는 구속력이 없고 분쟁당사자들이 조정안을 수락해야만 구속력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실제로 분쟁당사자들이 조정안을 수락하는 예는 매우 드물다.

이를 보완한 것이 중재제도이지만 제도의 강제성이 소비자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토부의 중재 절차를 통해 중재가 진행될 경우 소비자는 조정제도나 소송 등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국토부의 중재 판정이 업체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까지 강제성을 띄기 때문에 중재 이외에 다른 대안적 분쟁해결 방법은 제한된다. 또 중재 결과가 소비자에게 불리하더라도 대안이 없다.

뿐만 아니라 김필수 교수는 중재결정을 내리는 ‘국토교통부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 의문을 표했다.

김 교수는 “각계 전문가 50인을 선출하는 곳은 결국 ‘국토교통부’다”며 “국토부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채워 넣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국토부 관계자는 “중재제도를 통한 결과가 소비자에게 유리할 경우 제작사는 이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며 “법적 효력이 전혀 없는 조정제도의 한계를 보완한 것인데, 이를 단점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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