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보험료가 오른 이유⑬

[컨슈머치 = 송수연 기자] 우리나라 보험사기에 대한 정의는 간단하다.

“보험금을 편취하기 위해 보험회사를 속이는 행위”를 보험사기로 본다. 

실제 보험사기는 정의와 달리 복잡하다. 보험사기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면 보험사기가 단 한 줄로 정의되기에 고려해야 할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금새 확인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보험사기는 이를 다루고 있지 않다. 

그렇다보니 일부 소비자단체에서는 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다. 연례행사처럼 금융당국은 소비자의 보험사기 적발 및 처벌 결과를 발표하지만 보험사 사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점에서다.

학계에서는 보험사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컨슈머치>는 김헌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를 만나 우리나라 보험사기에 대한 정의에 대한 생각과 문제점, 그리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출처=컨슈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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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수 교수는 조지아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한국리스크관리학회장 및 아시아태평양보험학회장(ARPIA)을 역임한 보험 전문가다.

금융위원회의 금융옴브즈만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보험사기 적발 모형, 보험상품 및 채널 분석 등으로 다양하다.

■소비자 빠진 보험사기 정의

김헌수 교수는 우리나라 보험사기 정의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쉬운 점으로 소비자를 보호하는 내용은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보험사기는 엄격히 말하면 보험금 청구와 관련된 사기 행위에 해당해요. 미국 보험사들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개념을 가지고 있으나 미국의 보험사기방지법의 경우(각 주 별로 상이)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자를 속이는 행위까지 포함돼 있어요”

국내의 보험사기가 오직 소비자의 잘못을 추출하고 규제하는 방향으로만 정의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보험회사에 높은 신뢰를 요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어요. 다시 말해 보험계약자의 권리가 우리나라 보다 앞서 있는 것이죠”

“미국에서는 신뢰와 선의를 가지고 보험계약자를 대하지 않으면 그것도 불법으로 간주돼요. 만일 보험회사가 지속적으로 보험계약자를 소송하는 것도 법정에 서면 불법이라고 판단할 수 있어요. ‘Utmost good faith(최고의 선의의 원칙)’가 쌍방향으로 적용되는 거죠”

■불신, 보험사기에 영향

그 때문일까. 미국의 보험계약자들은 보험사에 대한 신뢰가 높은 편이라고 한다. 반면, 국내 보험계약자들은 보험사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보험계약자들은 평소, 보험사는 소비자를 속여 보험을 팔고 필요한 건 해주지도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상에도 보험사가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에 대한 언급이 없어요. 그러니 보험사가 부당하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처벌을 받지 않죠. 이는 보험계약자와 보험사 간의 신뢰에도 영향을 줘요. 사실상 보험계약자 입장에서 우리나라 현재의 보험사기 정의를 보면 보험계약자 모두를 잠재적 보험사기범으로 취급한다고 의심할 수도 있는 거죠”

김 교수는 이러한 불신이 오히려 보험사기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했다.

"보험사에 대한 신뢰 수준이 '연성 사기'에 강하게 영향을 끼쳐요. 보험회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태도가 보험사기를 증가시킨다는 사회학적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때문에 소비자 인식 변화만큼이나 보험사의 노력도 필요해요. 특히 보험사의 불완전판매 근절이 그것 입니다"

국내 보험계약자들도 보험사의 보험사기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도록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이 개정을 통해 보험사기에 대한 정의를 확대해야 할 필요성은 없는지 김 교수에게 물었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을 개정하자고 얘기하면 제 생각에는 보험 가입자를 속이는 행위까지도 다 보험사기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돼요. 보험회사가 보험사기에 대해 소비자들을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듯 보험사도 보험계약자에게 잘못된 행위를 하면 같은 기준으로 평가 받아야 그게 말이 되는 거죠”

■ 소비자 권리와 보험사기 사이의 '연성 사기'

김 교수는 보험사에 대한 신뢰와 깊은 연관이 있는 '연성 사기'의 경우 특히 더 신중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고 했다.

보험사기는 연성 사기와 경성 사기로 나뉜다. 먼저 연성 사기는 보험사고 발생 시 사고를 과장하거나 확대해 보험금을 편취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미 일어난 사고의 피해를 부풀려 불필요한 입원 치료 등을 받는 것이다. 경성사기는 일부러 사고를 낸 후 보험금을 편취하는 유형을 말한다.

김 교수는 연성 사기가 소비자와 밀접하다는 점에서 논쟁의 여지가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소비자 입장에서 어린 자녀가 아파 오전에 한 번 병원에 가고 오후에 또 방문하고 보험금을 청구하면, 이것을 과다(허위)청구로 봐야 할까요? 또 다른 예를 들어 볼게요. 미열이 나는 어린이가 있어요. 미열이지만 3일을 입원해야 할 어린이도 있겠죠. 그래서 3일을 입원하면 이건 연성사기로 봐야 할까요? 연성 사기와 소비자의 자기 권리에 대한 라인을 엄격하게 긋기는 이렇게 어려움이 있어요”

“물론, 여러 경우에 보험금을 목적으로 과다 청구하는 부분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 몸이 아프다는 것이 데이터로 나오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하루 더 입원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거죠”

출처=컨슈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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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소비자의 권리 주장일 수도 있는 연성 사기를 보험사기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걸까.

김 교수는 사실상 연성 사기도 엄연한 보험사기로 봐야 하며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또 다른 연성 사기의 사례를 소개했다. 

"A라는 병원이 B환자를 치료한 후 하루 입원을 권했는데 B씨가 이틀 더 입원하겠다고 했어요. 회복 기간을 더 갖고 싶다는 거죠. 그래서 A병원이 B씨에게 입원일당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이 있는지 물어요. B씨는 당연히 있다고 했죠. 그러자 A병원에서 B씨를 이틀 더 입원 시켰어요. 연성 사기일까요?"

“소비자들은 이를 연성 사기라고 안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명백한 연성 사기거든요. 자, 그러면 우리가 저 연성 사기를 고발할 수 있을까요? 사실상 고발은 힘들어요. 입원이 필요한 당사자가 아프다고 더 입원해야 한다고 말하면 사실 방법이 없어요. 명백한 증거를 잡아내기 힘든 거죠. 보험사기 발생 현장에 있지 않는 한 증거 확보가 난해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는 이럴 경우 보험금을 지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겁니다”

■절반은 보험사, 절반은 소비자 책임

증거 확보가 어려운 연성 사기는 그야말로 보험사의 골칫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은 연성 사기를 유발할 수 있는 보험상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판매하고 있다. 이를 이유로 김 교수는 보험회사도 보험사기에 대한 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고 했다.

보험사기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상품에 대해 묻자 김 교수는 ‘정액형 실손보험’을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그는 보험사기를 줄이고 싶다면 이러한 상품은 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액형 실손보험이 뭐냐면 내가 다치면 무조건 보상해 주는 보험인거에요. 보험회사는 이 보험이 소비자를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죠. 이런 보험은 실제로도 정말 잘 팔리거든요. 대부분의 소비자는 이런 보험은 본전치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또 보험사기를 취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이거 해볼 만한 거죠. 그러니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제가 봤을 때 본전 생각하는 유형의 소비자는 국내에만 몇 백만 명 있다고 봐요”

그는 본전치기를 생각하는 소비자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보험사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보험은 위급한 상황 또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필요한 것인데 보험료를 낸 것이 아까우니 본전치기를 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또 보험사고가 발생해서 과잉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소비자들은 ‘그 정도쯤이야~’하는 분위기잖아요. 이렇게 보험사기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에요”

“제가 소비자 입장을 옹호하고는 있지만 소비자들의 이런 행위 역시 지적받아야 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보험사기는 적발과 처벌이 어려운 만큼 소비자의 윤리 의식이 중요하거든요”

■보험사기 통합 데이터 기법 고도화가 보험사기 해결 키

일각에서는 매년 보험사기가 줄지 않는 것에 대해 보험사기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김 교수에게 보험사기 적발을 확대할 수 있는 묘책이 없을지 물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용정보원, 금융감독원 등에서 보험사기 데이터가 집적되고 있기 때문에 통합데이터 측면에서 강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보험사기를 위해 통합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죠. 보험사기 통합 솔루션 데이터를 만들 때 초기 디자인을 제가 했는데 개인의 클레임 데이터가 중앙에 집적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문제는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법을 고도화 하는 게 보험사기 적발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우수 데이터는 어떻게 활용해야 될지 방향을 제시해 달라고 하자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현재 기법의 고도화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확실히 불리한 측면에 있어요. 왜냐면 조사할 수 있는 사람이 경찰과 검찰 밖에 없는데 이들도 독자적으로 조사를 잘 못해요. 보험회사나 금감원에서 주는 정보를 가지고 공권력을 행사하는 게 전부거든요. 이들이 직접 보험사기를 조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금감원에 특사경 위치를 갖도록 해서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봐요”

■보험사기, 공공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수도

마지막으로 계속되는 보험사기로 우려되는 부분이 있냐고 물었다.

“소액이라도 보험사기를 편취하기 시작하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의 복지수급액을 전부 다 편취할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벌써 우리나라도 그런 증상이 나오고 있거든요. 실업급여, 산업재해보험 앞으로는 연금 이런데 까지 사실상 정부에서 주는 모든 지원금을 편취할 가능성이 있어요. 이게 사회시스템이 경제시스템을 보장하는 일종의 보험이거든요. 불행한 일부에게 보험금을 주듯 공공시스템도 차이가 없어요"

"보험금을 편취하는 사회는 즉 공공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험사기를 엄격하게 적발하고 책임을 물어야 돼요. 사회적 안전망이 누수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보험사기가 전적으로 소비자의 잘못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또 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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