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피해 구제 첫 단추 집단소송제①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집단소송제도가 있었더라면 과연 그 기업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과 액션을 취할 수 있었을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17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와 박주민‧송기헌 의원실 공동 주최로 열린 집단소송제 도입촉구 토론회에서 인보사 투여 환자들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엄태섭 변호사가 토른을 마무리하며 한 말이다.

우리사회 옥시 가습기살균제 사태, 홈플러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대진 라돈 침대 사태, BMW 화재, KT 화재 통신장애 등 집단적 피해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지난 수년간 소비자 집단소송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소비자단체 및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반대 입장에 부딪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집단소송제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만약 집단소송제가 있었다면 앞서 나열한 최악의 집단적 피해 사건들이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제2의 인보사‧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막으려면…“

제품 하나를 잘못 선택한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우리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으며 국내 집단소송제 도입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높아진 계기가 됐다.

출처=옥시레킷벤키저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출처=옥시레킷벤키저 공식 홈페이지 캡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 신고 피해자는 6,160여 명이다. 피해자 중 사망자는 1,400명을 넘어섰지만 정부로부터 인정돼 구제급여를 받을 수 있는 피해자는 11%인 679명밖에 되지 않는다.

집단소송제는 피해 소비자가 가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을 때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별도 소송 없이 구제받을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일부 증권분야에만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있어 사실상 해당 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집단소송제의 부재로 인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고통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도 막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실련 측은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보듯, 우리사회는 집단적 소비자피해를 예방하거나 피해구제에 취약하다”며 “집단소송제의 핵심은 집단피해를 예방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효율적 피해구제”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의약품 성분이 바뀐 사상 초유의 사태로 논란을 빚고 있는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사태로 인해 집단소송제 도입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분위기다.

지난 28일 인보사 투약 환자 244명은 코오롱생명과학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공동소송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인보사 투여 환자들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엄태섭 변호사는 “코오롱생명과학이 계속해 금방 드러날 거짓말은 하는 이유는 집단소송제를 통해 본인들이 중대한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자신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며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됐더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대진침대 라돈 사태, 홈플러스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 소비자들이 대규모로 피해를 입은 여러 사례를 통해 ‘집단소송제’ 도입의 필요성은 점점 더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다.

■개개인 피해보상을 넘어 예방효과까지

사실 일반 소비자들에게 ‘소송’은 무척 먼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당장 나와는 거리가 있는 남의 일로만 보이기에 다소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소홀히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1403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비롯해 최근 좌절을 안긴 인보사 문제가 결코 남의 일일 수만은 없다는 점, 나와 내 가족을 비켜가리 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출처=PIXABAY)
(출처=PIXABAY)

대량으로 공급되는 상품이 잘못되거나 거래 과정이 불공정한 경우 집단 피해가 종종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오늘날 현대사회 소비자피해는 소액 다수가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 한 사람으로만 봤을 때는 소송까지 벌일 정도로 큰 피해가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

당장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더라도 개인이 소송을 하는 데는 큰 결단이 필요하다. 하물며 단 돈 몇 만 원짜리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고, 혹은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개인정보 유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거대 기업을 상대로 법정 다툼을 벌일 마음을 먹기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피해가 경미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해당 소비자에 국한된 것이며, 전체 피해소비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기업들이 거액의 손해를 끼친 격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점을 그 때 그 때 바로잡지 않으면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불법 행위를 하거나 하자있는 상품을 스스럼없이 판매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피해 정도가 경미해 피해구제를 신청하는 소비자가 극히 일부에 불과하게 되면 나머지 소비자에 대한 피해구제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회사 입장에서는 거액의 불법이득만 얻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최악의 문제가 발생해도 사측 입장에서는 손해보다 이득이 크기 때문에 경각심을 갖지 않는 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액의 피해를 입은 소비자라 하더라도 용이하게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데 그 중심에 ‘집단소송제’가 존재한다.

이에 대해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제가 되는 라돈 침대 수 만개를 판매하고도 책임을 피하려고만 하는 대진침대를 보며 집단소송 입법과 제도 개선의 시급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며 “기업 자본에게 자율적 양심에 따른 책임을 바라왔지만 라돈 침대, BMW 화재, 옥시 가습기살균제 등 소비자 피해에 대응하는 해당 기업들의 입장은 한결같다”고 지적했다.

윤철한 경실련 정책실 실장은 “피해보상도 보상이지만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기업들이 부담감 때문에라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 좋은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려 경각심을 갖고 노력할 것”이라며 “자정효과를 통한 경쟁력 향상 측면으로 볼 때 소비자 뿐 아니라 기업들에게 좋은 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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