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Q

대한민국 타투, 예술과 불법 사이④

[인터뷰] 타투이스트 이안 "늘 편견과 싸우는 중이죠"

2018. 09. 20 by 송수연 김은주 박지현 기자
타투이스트 '이안'
타투이스트 '이안'

[컨슈머치 = 송수연 김은주 박지현 기자] 타투이스트들은 흔히 예명을 많이 쓴다. 그래서 ‘이안(40·남)’이라는 이름 또한 당연히 예명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뜻을 물어봤는데 의외로 본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본명은 ‘류이안’이다. 따로 예명을 짓는 대신 성을 빼고 ‘이안’이라는 이름으로 16년째 활동 중이다.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 작은 건물 1층에 위치한 그의 가게는 타투 시술을 하는 작업장인 동시에 후배들을 양성하는 교육 장소이다. 또한 동네 사람들과 지인, 단골손님들이 언제든지 음식 싸들고 찾아와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는 사랑채가 되기도 한다. 단 작업장 안에서 술·담배는 절대 금물이다.

이안은 몇 년 전까지 여성복 디자이너를 겸업했지만 현재는 타투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많이 부드러워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타투와 타투이스트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차가운 편이다. 정제되지 않은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타투이스트는 양아치 일 것’이라는 식의 사회적 편견들과 여전히 싸워야 하는 고충도 분명 있다.

타투이스트 이안은 “예를 들어 기자님과 제가 지금 치고 박고 싸워서 경찰서를 갔다고 쳐보세요. 당연히 몸에 타투가 있는 사람이 왠지 더 잘못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는 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아주 사소한 문제도 만들지 말자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오히려 타투이스트를 향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보육원 봉사활동을 나서고, 본인의 SNS을 통해 헌혈증을 가지고 오면 무료 타투를 해주겠다는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이안은 “솔직히 박수 받는 직업은 아니잖아요.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저는 이미지 개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타투 하는 사람도 좋은 사람일 수 있다’ 뭐 그런?…”이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인연을 맺는 일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는 이안은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안은 “처음부터 타투이스트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예전에는 대부분 엉망으로 타투를 해주는 곳이 많았는데 저도 10대 시절 그런 곳에서 타투를 받은 학생 중 하나였죠. 그렇게 잘못된 타투를 가지고 살다가 커버타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을 때 제일 친한 친구의 사촌 형이 타투이스트라는 것을 알게 돼 소개를 받게 됐어요. 저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타투 1세대로, 업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더라고요. 결국 그 분이 제 타투 인생에 스승님이 됐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왜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몇 번이고 본인에게 타투를 배워보라고 러브콜을 하시더라고요. 당시 옷 디자인하는 일에 대한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거절하다가 계속되는 설득에 ‘타투이스트를 해볼까?’가 아니라 ‘내가 디자인을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재미는 있겠다. 한번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거에요. 여담이지만 나중에 듣기로 형(스승) 입장에서는 당시 굉장히 황당했대요. 자기한테 배우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는데 오히려 저는 자꾸 거절하니까”라고 웃음 지었다.

타투 손님들의 사진이 가게 한 면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는 모습/ 직접 제작한 티셔츠 / 타투머신과 직접 그린 도안

타투에 관심이 없던 그가 타투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 배경에는 스승을 잘 만난 덕이 크다는 것의 그의 설명이다.

이안은 타투이스트의 덕목으로 그림 실력보다는 열정, 센스, 그리고 인성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지만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은 특히 개인의 신념, 마음가짐과 인성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는 자신의 스승에게서 기술적 배움뿐 아니라 타투이스트가 가져야 할 여러 가지 철학까지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안은 “굉장한 행운이죠. 아마 그 형이 아니면 나는 그냥 장사꾼이 됐을지 몰라요.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한 번 왔다간 손님은 기억 못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반대로 손님들은 아마 저를 영원히 기억할거에요. 나를 죽을 때 까지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절대 욕 먹을 짓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타투이스트는 타투와 아티스트의 합성어에요. 장사꾼이 아니라 예술가라는 거잖아요.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지만 돈이 목적은 아니에요. 내 작품을 통해 타투를 받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길 바라는 게 제일 커요”라고 강조했다.

그가 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함을 느낄 때는 시술이 끝나고 손님에게 거울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손님이 거울을 보는 동안 이안은 손님의 표정을 살핀다. 손님의 표정에서 만족감이 드러날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지만, 반대로 손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기라도 하면 그 날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고민에 빠진다고 털어놨다.

이안은 돈만 주면 무조건 시술해준다는 일부 타투이스트들에 대한 인식도 깨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미성년자가 타투를 하겠다고 오면 무조건 혼을 내 돌려보내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손님에게 정중히 시술 예약을 미루거나 거절한다. 이 또한 그의 타투 철학과 연결된다.

이안은 “다른 직업은 몰라도 타투를 할 때는 타투이스트가 갑(甲)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컨디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죠. 컨디션이 안 좋으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손도 빨라지고 얼룩이 질 수 있어요. 집중을 하지 못하면 생길 수 있는 실수죠. 타투이스트는 절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직업이에요. 사소한 실수라도 시술을 받는 사람한테는 평생 상처로 남을 수 있으니까요”라고 자신의 소신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궁극적인 목표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서양은 올드스쿨, 멕시코는 치카노, 일본은 이레즈미 등 각 나라마다 타투의 장르가 존재하는데 우리나라의 고유의 타투 장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는 것이다.

대답을 못하자 이안은 당연한 반응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 타투 산업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장르는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이안은 앞으로 우리나라만의 장르를 개척하는 것이 목표다. 기왕이면 미인도나 하회탈 등 우리나라 전통과 민족성을 살린 작품으로 말이다.

그는 “머릿속으로 구상한 건 등에 이순신과 거북선을, 춘향이가 그네 타는 미인도를 생각해 봤어요. 이게 최종 목표예요. 우리나라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당장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를 만든다는 거창한 말보다 일단 '한국에 이런 타투이스트가 있다'를 알리는게 먼저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