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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일자리, 편견과 차별을 넘어⑮

[인터뷰]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장 “장애 유형 고려한 직무개발 시급”

2019. 02. 06 by 김은주 기자

[컨슈머치 = 김은주 김현우 기자] 아주 잠시지만 시력을 잃어 당장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고 상상해 봤다.

우선 컴퓨터의 모니터와 자판이 보이지 않아 이렇게 글을 쓰는 행동은 자연스럽게 멈춘다. 작은 사무실 안에서도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고, 복사기를 사용하거나 떨어진 펜을 줍는 일,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떠 마시는 것조차 막막한 일이다. 하물며 밖으로 나가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이처럼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힘든 시각장애인이 ‘직업’을 갖고 ‘노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시각장애계는 전체 장애인구 중 시각장애인 비율이 10%에 달하지만 장애인 고용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 서비스 자체가 안마와 관련된 업종에 국한돼 있다 보니 일자리 수는 턱 없이 부족하고, 다양한 시각장애인들의 직업 욕구를 충족시키는데도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컨슈머치>는 장애인 일자리 문제, 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하다는 시각장애인 일자리 문제의 개선 방향을 듣기 위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연주 정책팀장을 만나봤다.

(출처=컨슈머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연주 정책팀장(출처=컨슈머치)

“기업들이 장애인을 뽑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부터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장애인의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만약 노동시장에서 장애인의 생산가치가 높게 평가된다면 정부가 의무고용률을 강제하지 않아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장애인을 채용 하겠죠”

말 그대로 장애인은 노동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질까. 이 팀장은 이 질문에 단호하게 “전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부에서 의무고용제를 시행하는 것 자체가 장애인의 노동력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많은 나라에서 의무고용제를 시행하고 있고요. 특히 독일의 경우 의무고용률이 5% 수준임에도 대체적으로 잘 지켜지고 있는 편이죠”

실제로 2000년부터 독일에서는 20인 이상 근무하는 모든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이 중증장애인을 5%이상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증으로 한정 짓지 않은 채 공공기관은 3.2%, 민간기업은 2.9%의 의무고용률을 설정하고 있음에도 2015년 기준 100대 기업 중 22곳만이 이를 지켰다. 반면에 독일은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장애인 고용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장애유형과 장애정도에 따른 직무 개발이 제대로 이뤄져 있느냐의 차이죠. 현재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은 대부분 안마사 등 한정된 직종을 선택 할 수밖에 없잖아요. 이렇게 직업이 정해져 있는 것 보다는 장애유형에 따라 할 수 있는 직무를 개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거든요”

시각장애인은 직업 영역으로 보면 중증장애인으로 분류되다 보니 일자리가 찾기가 더욱 쉽지 않다. 그나마 1980~90년대 시각장애인들의 진입이 용이했던 피아노 조율, 전화교환원 등은 산업수요 감소로 오래전에 직업훈련이 중단된 상태다. 콜센터 상담업무나 텔레마케팅 역시 고객데이터시스템에 대한 접근성 문제로 활성화가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 주도로 또 다른 직무 개발이 이뤄졌어야 했지만, 유일하게 헬스키퍼만이 정착됐을 뿐 아직 다른 직무 발굴은 거의 전무한 상태에요”

헬스키퍼 제도는 기업이 직원의 건강관리를 위해 사내 마사지 시설을 설치고 국가 자격 안마사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제도다. 직원들의 복리후생과 장애인 고용률 달성이라는 이중효과를 가질 수 있어 기업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 팀장은 시각장애인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최우선 과제로 헬스키퍼와 같은 시각장애인 맞춤형 직무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몰론 그 역할의 칼자루는 ‘정부’가 쥐고 있다.

“정부 기관인 장애인고용공단이 직무 개발에 더욱 힘써야 해요. 특히 다른 유형의 장애인에 비해 시각장애인의 직무 개발은 더욱 뒤로 밀려나 있어요.

직무 개발이 안 돼 있으니 취업 교육 프로그램도 제대로 만들 수 없고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아요. 회사 내 맡길 만한 직무가 아예 없는데다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장애인을 민간기업에 억지로 뽑으라고 하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죠.”

장애인 의무고용제가 도입된 지 30여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진 못하고 있다. 사업주 입장에서 장애인을 고용할 때 드는 비용보다,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해 내는 벌금 성격의 고용부담금이 훨씬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

이 팀장은 맞춤형 직무 발굴 및 개발이 미흡한 상황에서 장애인 고용 문제 해결의 역할을 ‘민간기업’에 떠넘기기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해서 나서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민간기업에 강요하기 전에 최소한 공공영역에서 먼저 의무고용률을 지키는 노력을 보여야죠. 또한 현재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근로 장애인들은 대부분은 지체장애나 경증 장애로 치중돼 있는 것도 문제고요.

수많은 정부 중앙부처 중에 시각장애인 근로자의 숫자는 교육부에서 일하고 있는 딱 한 명이 전부에요. 공공기관 마저 이런 상황인데 민간기업에 무엇을 바랄 수 있겠어요. 저는 그래서 민간기업보다 공공기관의 의무고용률을 더욱 강화하고 장애유형별 쿼터제도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팀장은 또한 시각장애인 일자리 지원은 고용파트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사회 전반적인 인프라 및 서비스 개선, 그 중에서도 특히 이동권이 보장될 때 시각장애인들이 취업에 대한 의지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각장애인은 출퇴근부터 어렵기 때문에 이동을 함께 하는 활동 보조사 지원이 100% 이뤄져야 해요. 현재 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가 그 기능을 하고 있는데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급여‧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 고민이 많아요”

이 같은 고민은 오는 7월부터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의학적 기준으로 나눈 장애등급 대신 개인의 사정에 초점을 맞춰 의료·복지 지원을 하겠다는 취지로 결정됐다.

문제는 정부가 장애등급을 대체할 대안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힌 ‘종합조사표’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장애유형별 특성과 욕구가 서로 다름에도 시각장애인의 특성은 조사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시각장애인은 음식물을 삼키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어요. 다만 음식물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먹을 수 없는 거죠. 또 옷을 갈아입는 행위 자체는 가능하지만 색깔을 맞출 수는 없고요"

한 마디로 신체적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은 지체장애인을 위한 평가 항목은 많은 반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한 시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항목이 부족해 지원을 받을 수 점수가 낮아지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현재 이러한 점이 충분히 반영된 수정안을 정부에 제출한 상태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일자리가 갖는 의미에 대해 묻자 이 팀장은 장애인이 정부로부터 복지서비스를 제공 받는데 있어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과정의 한 축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직업이 없다보니 소득이 발생되지 못하고, 소득이 없으니 세금도 못 내는 경우가 많죠.

결국 소비자로서 정당한 복지 서비스를 요구하지 못하고 정부에서 주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일자리는 ‘내가 낸 세금을 통해 복지서비스를 받는다’는 인식이 장애인에게도 적용되게 해주는 것 입니다”

이 팀장은 흔히들 장애인들에게 있어서 재활의 꽃은 ‘직업’이라고 하는데 정작 그 꽃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안타까움을 표하며,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통해 삶의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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