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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일자리, 편견과 차별을 넘어⑬

[인터뷰] 김재익 굿잡자립생활센터 소장 “발달장애인 고용, 先배치 後훈련"

2019. 01. 23 by 김은주/송수연/전향미 기자

[컨슈머치 = 김은주 송수연 전향미 기자] 장애인은 그저 도움과 온정이 필요한 대상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장애인 복지의 방향도 격리와 보호를 중심으로 철저히 서비스 제공자의 편의에 맞게 이뤄졌다.

이후 장애인의 신체‧심리‧직업적 잠재 능력을 최대한 회복시켜 비장애인의 생활수준으로 복귀시키는 ‘재활(Rehabilitation)’ 패러다임으로 한 단계 도약했으나 이 역시 전문가 중심이다 보니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최근 새롭게 출현한 장애인 복지 정책의 패러다임은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이다. 장애인 복지의 방향이 제공자 중심에서 소비 주체인 장애인 중심으로 변화한다는 의미다.

자립이란 ‘선택권’과 ‘자기 결정권’이 주어지는 삶이다. 물론 의사결정과 행동에 대한 책임도 뒤따른다.

쉽게 말해 무엇을 먹을지, 누구와 만날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등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대한 성공 혹은 실패까지 경험하는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인 자립생활 이념이 한국사회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1997년이다. 이후 국내 많은 중증장애인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선택권과 결정권을 갖길 희망하게 됐고, 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2005년 ‘굿잡자립생활센터’가 설립됐다.

발달장애인 등 중증장애인의 일자리 문제 개선과 나아가 자립생활 기반 구축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김재익 굿잡자립생활센터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굿잡자립생활센터 김재익 소장(출처=컨슈머치)
굿잡자립생활센터 김재익 소장(출처=컨슈머치)

김 소장은 중증장애인의 탈(脫)시설이 화두가 되는 이유도 자립생활과 관련이 있다며 첫 포문을 열었다.

탈시설이란 장애인이 대규모 수용시설이나 병원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에 거주하며 비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개념으로,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탈시설을 희망하고 있다.

“정상화와 사회 통합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 바로 시설이란 곳이에요. 저도 그곳에서 7년 정도 생활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등의 기본적인 욕구가 있는데 시설은 이런 것들이 모두 배제돼 있어요. 일반인이 사는 패턴과 전혀 다른, 비정상적인 환경이죠. 이 때문에 시설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탈시설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을 위해서는 인식 개선과 함께 인적‧물적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 붙는다. 만약 이 같은 대비 없이 무작정 탈시설에 나선다면 그들을 자칫 위험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자립생활에 있어 선택권과 결정권을 핵심 요소이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강조돼야 할 점이 책임성이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시설보다 못한 지역사회도 있고, 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하려는 사람들도 도처에 깔려 있다 보니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성매매를 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 역시 자신의 결정이고 자신의 선택이라면서요”

이 부분에서 김 소장은 잠시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또한 탈시설 이후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후 부모의 결단으로 어쩔 수 없이 시설로 다시 돌아가거나 스스로 복귀를 선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시설을 없애기 보단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역사회가 장애인 잘 살 수 있도록 완벽하게 구축되기 전까지는 완전한 탈시설은 존재할 없습니다. 어느 시기까지는 시설도 유지돼야 할 필요가 있어요. 대신 지금처럼 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서는 안 되겠죠.

소규모로 운영하는 동시에 시설 내 장애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동체 생활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합니다”

또한 장애인의 진정한 자립생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애인 부모의 역할과 자세도 중요하다.

김 소장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다 장애인 부모의 결정권이 더 앞서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장애인이 진정으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가족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훈련이 이뤄져야 하는데, 부모의 과잉보호가 훈련 과정 자체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굿잡자립생활센터 김재익 소장(출처=컨슈머치)
굿잡자립생활센터 김재익 소장(출처=컨슈머치)

“대학에서 발달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 있어요. 그 때 연락처를 보고 학생들에게 전화했더니 백이면 백, 부모님이 전화를 받더라고요. 연락처에 학생 당사자가 아닌 부모의 번호가 기입돼 있었던 거죠.

이건 부모들이 그만큼 장애인 자녀들의 자기결정권을 봉쇄하고 있단 걸 보여주는 단적인 예에요. 결국 다음날 학생들에게 모두 본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으라고 해서 새로운 연락처 리스트를 만들어야만 했죠”

장애인 자립의 꽃은 노동 시장의 진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비장애인도 양질의 일자리 구하기가 힘든 요즘, 발달장애인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는 다는 것은 그야 말로 꿈과 같은 일이다.

김 소장은 발달장애인의 민간기업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용형태 중 ‘지원고용’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원 고용의 또 다른 이름은 ‘선(先) 배치 후(後) 훈련’ 고용이다. 이는 비장애인 근로자와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해 취업을 하는 형태인 일반(경쟁)고용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을 위해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는 훈련이 이뤄지고 그에 맞는 직무에 배치되는 식이잖아요. 하지만 발달장애인은 이런 경우 돈도 못 벌고 훈련만 평생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에요. 그래서 발달장애인의 취업은 반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일단 직장에 먼저 배치시킨 뒤 잡코치(직무지도원)가 업무는 물론이고 출·퇴근지도부터 직장예절까지 꾸준히 가르치고 도와주는 형식으로 말이죠”

그는 또한 장애인이 취업 후 원만한 직장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업 내 배리어프리(Barrier-free)가 잘 구축되길 희망한다는 점도 밝혔다.

“배리어프리는 장애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말해요.

사실 최근에는 이보다 더욱 확장된 개념인 유니버설 디자인이 더 각광받고 있습니다만 엄청난 비용이 필요해서 선진국도 아직 적용사례가 적어요.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기업들이 배리어프리는 잘 구축하길 바라는 거예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은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보편적 설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인만을 위한 편의시설인 휠체어리프트가 배리어프리의 개념이라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편리한 엘리베이터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생애주기별로 봤을 때 두 번 정도 장애를 가지게 된다는 것 알고 계세요? 바로 갓난아이 때와 죽기 일보직전입니다. 또 우리 모두는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언제든 장애를 가질 수 있죠. 

인식의 부재가 차별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장애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어요. 사고방식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해요. 장애의 부정적인 부분만 생각하지 말고, 이해하려는 자세로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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