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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차는 '레몬'입니까⑤

[인터뷰] 오길영 신경대 교수 “제대로 된 레몬법, 소비자 관심·반성 필요”

2019. 03. 01 by 김은주 기자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국내 자동차 소비자는 을(乙) 중의 을(乙)이다.

자동차는 한 번 구매하고 나면 아무리 불량품이라도 교환‧환불은 꿈도 꿀 수 없는 게 불문율(不文律)이다. 대로변에서 2억 원짜리 외제차에 골프채를 휘둘러줘야 업체들이 눈이라도 한 번 깜빡 할 정도. 얼마나 맺힌 것이 많으면 한국 소비자는 ‘글로벌 호갱(호구+고객)’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판을 쳤을까.

국내 자동차 관련 소비자 문제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고시)을 따르도록 돼 있지만 그야말로 권고사항일 뿐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게 맹점이다 보니, 업체들의 적극적인 대처를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올해부턴 고장이 잇따르는 불량 신차를 환불·교환 해주도록 하는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된다는 점이다.

(출처=컨슈머치)
(출처=컨슈머치)

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오길영 교수는 <컨슈머치>와 인터뷰를 통해 “기간이나 횟수에 대한 설정 등 세세히 따지고 보면 레몬법의 내용은 결코 소비자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 이해관계자들의 타협으로 이뤄진 산물”이라며 “그럼에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없던 법이 생긴 것이니, 레몬법이든 낑깡법이든 새로운 법이 생겨난 그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없는 것 보다는 분명히 낫다”라고 말했다.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장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까다로운 요소에요. 실제로 자동차업체 입장에서는 그동안 한국은 제대로 된 법이 없다 보니 마음대로 장사를 할 수 있는 만만한 시장이었는데 이제 조금 스트레스 요소가 생긴 거죠. 그런 점에서 레몬법은 완벽하진 않아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현재 레몬법 시행은 명목상일 뿐 아직 ‘유명무실(有名無實)’ 제 역할을 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 오 교수는 독립입법 형태로 ‘한국형 레몬법’이 새롭게 입법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자동차 행정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법률인 ’자동차관리법’ 안에 자동차 소비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레몬법’을 우겨 넣는 것은 범주가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이 오 교수의 주장이다.

“독립입법을 주장하면 주변에서는 철없다고들 하죠. 독립입법은 국회에서 통과가 돼야 하는데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요. 분명한 건 지금처럼 국토교통부가 자동차관리법을 일부 개정하는 ‘짬뽕법’ 형태로는 자동차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거죠. 캘리포니아 등 미국은 각 주마다 레몬법이 독립입법 형태로 돼 있어요"

“특히 레몬법이 속한 현재 국내 자동차관리법은 입법 목적을 상실한 정체성 없는 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와 관련한 편의적인 조항들은 계속 추가하면서 실제로 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제반 규정들은 다 빠진 상태거든요. 결국 이번에 시행되는 레몬법은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점에서 만족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아쉬운 점이 많죠.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레몬법이 유용한 역할을 해야 할 텐데 걱정이 큽니다.”

(출처=컨슈머치)
(출처=컨슈머치)

오 교수는 현재 ‘하자’와 ‘결함’의 개념정의가 혼란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개정안에 하자에 대한 규정을 새로이 신설함으로써 ‘자동차관리법’ 전반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특히 문제로 지적했다.

"하자와 결함의 개념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요. 휴대폰이 꺼진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아요. 이건 ‘하자’에요. 하지만 자동차는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죽을 수도 있어요. 자동차의 하자가 이처럼 치명적일 때는 하자라고 부르지 않고 ‘결함’이라고 하죠"

'하자'는 흠집과 고장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결함'은 안전성과 관련이 있는 ‘위험한 하자’로 구분해 사용하는 것이 미국 등 국제적 공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동차관리법’에서는 이를 구분 짓지 않은 채 혼용해 사용하고 있어 향후 해석상 혼란일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오 교수는 지적한다.

“리콜과 레몬법은 완전하지 못한 제품에 대한 제조사 대처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른 카테고리에요. 신차를 샀음에도 계약 내용과 달리 문제가 생겼다면 하자이기 때문에 레몬법에 해당하지만 하자 중에 위험한 하자인 결함은 리콜로 들어가요. 예컨대 최근 떠들썩했던 BMW화재 사태는 전형적인 리콜, 결함 문제이기 때문에 레몬법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다 기간이 지난 차들이잖아요.”

당초 자동차관리법 자리가 아닌 소비자보호법제의 모법인 소비자기본법에 들어가야 맞으나 소비자기본법에는 이미 모든 제품에 대한 리콜 규정이 돼 있다. 그렇다 보니 소비자기본법에 자동차만을 위한 리콜을 따로 규정해 특별법으로 넣기도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

오 교수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자동차 리콜에 관련된 규정과 레몬법 둘 다 ‘자동차관리법’에 자리하게 된 상황에서, 개념상 혼동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의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또한 한국형 레몬법의 정착을 위한 개선 방향에 대해 오 교수는 “이왕 레몬법이 시행된 만큼 회의적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며 “정부와 업체는 물론이고 소비자도 노력할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레몬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강제성을 내포하고 있어야 해요. 당사자의 강제력이 없는 한 법적으로 규범화돼 있는 것만으로는 실효성을 발휘할 수 없어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레몬법에 대해 그저 ‘상징적’으로만 ‘소비자들에게 그런 권리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레몬법대로 순순히 교환‧환불을 해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 전에 소비자들의 반성도 필요합니다"

(출처=컨슈머치)
(출처=컨슈머치)

오 교수는 그동안 자동차 문제와 관련해 판매자와 소비자간 이뤄져왔던 관행을 꼬집었다. 판매자와 소비자 개인 간 암묵적 합의를 통해 ‘내 자동차’만 고쳐지면 문제를 공론화시키지 않는 바로 그 ‘관행’ 말이다.

"다른 소비재와는 달리 유독 자동차에 대해서는 한 번 구매가 확정되면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팽배하다 보니 업체와 거래를 통해 개인 차원에서 혹은 동호회 차원에서 구제를 받게 되면 입을 다물고 끝내버리기 일쑤였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레몬법이 시행되는 만큼 제도화 된 권리로써 소비자들이 제대로 인식을 해야 해요. 법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회사 측에서는 종전의 처리했던 손 쉬운 방식을 이어가며 레몬법을 회피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죠"

"사실 법 하나 생겼다고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죠. 아직 우리나라는 갈 길이 굉장히 멉니다. 이럴 때 일수록 자동차 소비자들이 레몬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업체들이 지킬 수밖에 없는 ‘중요한’ 법이 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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