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1년 남부지원 "전문지식있는 기아차가 급발진 아님을 입증해야"

90년대 이후 최근까지 자동차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01년 정황상 급발진에 의한 사고가 확실할 경우 오히려 자동차사가 급발진이 아니란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와 파장을 일으켰었다.

비록 1심판결이었지만 당시 재판부는 사고낸 운전자가 30년 경력 운전자란 점에서 사고정황이 운전자 과실보다는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례에서 제조사였던 기아자동차가 급발진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당시 자동차업계를 초긴장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아쉽게도 이 판결이 뒤집어졌으며 이후에도 대법원 재판에서는 급발진으로 추정될 수도 있는 사건에서 모두 운전자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 2001년 남부지원 “기아차, 1,180여만원 배상하라”
 
2001년 9월 16일 서울지법 남부지원 민사36단독 유제산 판사는 급발진 사고차량 제조회사인 기아자동차는 삼성화재가 물어준 보험금에 대한 구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즉 기아차의 제조물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삼성화재는 주차관리인이 일으킨 자동차 사고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한뒤 기아차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냈는데 1심 재판부는 삼성화재에 1,18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것.
 
삼성화재는 지난 99년말 주차관리원인 이 모 씨(57)가 김 모 씨의 승용차를 주차시키던 중 차량이 갑자기 굉음을 내며 후진, 담벼락을 들이받은 후 다시 전진해 건물 벽과 앞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자 고객 김씨에게 차량수리비를 지급한 뒤 이씨와 주차관리소 그리고자동차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재판부는 자동차사만의 책임을 인정한 것.
 
당시 재판부는 "주차관리인 이모(57)씨의 운전경력이 30년인 점과 사고차량의 비정상적 운행상태 등을 고려할 때 이씨의 과실로 인한 사고로 볼 수 없다"면서 "이 경우 차량 자체에 결함이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급발진 사고의 경우 운전자가 차량에 결함이 있음을 입증해야 했지만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차량의 결함을 밝혀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차량 제조사가 자신들이 만든 차에 결함이 없음을 밝히는 것이 합당하다"고 밝혔다.
 
사실 90년대 이후 급발진 관련소송이 봇물을 이뤘지만 차량 제조사의 책임이 인정된 적이 한번도 없었던 상황에서 그 판결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판결 당시 현대 기아 대우 등 자동차 제조사들을 상대로 서울지법과 서울지법 남부지원, 인천지법 등에 모두 70여건의 급발진 관련 소송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제조사가 큰 부담을 지게될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기아자동차는 당시 "이번 판결은 급발진 사고관련 재판의 핵심이라 할수 있는 차량결함에 대한 원고의 입증과정이 전혀 없었던데다 변론기회도 3회밖에 되지 않는 등 불충분한 심리에서 나온 결과"라고 주장하며 항소를 했었다.
 
◆ 2심서 뒤집어진 판결…"사람 안다쳐 제조물 책임법 대상 아니다“
 
2002년 9월7일 서울지법 항소부(재판장 이동명)는 “차량 급발진으로 인한 차량자체가 파손된 경우는 제조물 책임이 적용되는게 아니라 하자담보책임이 적용된다”며 역사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판결을 뒤집고 기아자동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서울지법 민사항소1부는 삼성화재가 “차량결함으로 급발진사고가 발생한 만큼 차량파손에 대한 보험금으로 지출한 1,180원을 지급하라”며 기아자동차 등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 항소심(2001나55870)에서 원고패소판결을 내려버린 것.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제조물에 상품적합성이 결여됨으로써 제조물 그 자체에 발생한 손해는 하자담보책임에 의해 해결돼야 할 것이고, 불법행위책임(이른바 제조물책임)의 적용대상은 아니다”며 “원고가 피고에 대해 배상을 구하는 손해는 이 사건 자동차의 수리비, 즉 자동차 자체에 발생한 손해임이 명백한 이상 이는 하자담보책임의 법리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원고는 차량 제조사인 피고에게 급발진 사고의 제조물책임을 물었지만 법적으로 제조물 책임으로 인한 보상을 받으려면 제품 자체의 파손 외에 사용자가 직접 부상을 당하는 등 피해를 입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사고는 급발진으로 차량만 파손됐고 김씨는 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제조물 책임을 물을 수 없으므로 원고의 청구는 이유없다"고 밝혔다.
 
한편 2002년 7월부터 시행된 제조물책임법 제3조 1항에는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당해 제조물에 대해서만 발생한 손해를 제외한다)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즉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도 손해배상을 청구할수 있다는 규정으로 보이는데 이 사건 재판부는 "인명손실이 없기 때문에 제조물 책임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동차사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1심에선 운전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선 사실상 자동차 제조사의 손을 들어준 일이 최근 다시 일어났다(<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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