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슬픈 신조어 ‘글로벌 호갱’…국내기업부터 자성해야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언젠가부터 소비자들이 스스로를 ‘호갱’으로 지칭하기 시작했다. 호갱이란 호구와 고객의 합성어로, 기업의 폭리에 이용당하는 어리석고 순진한 소비자를 일컫는 말이다.

호갱이라는 단어는 소비자를 ‘봉’으로 보는 기업들의 몰지각한 행태를 풍자하는 촌철살인의 외침인 동시에 어쩐지 씁쓸한 맛이 남는 슬픈 신조어기도 하다.

기업들이 외치는 ‘고객은 왕이다’라는 입에 발린 말들이 소비자들의 귀에는 ‘고객은 봉이다’로 필터링 돼 들리고 있다. 어쩌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글로벌 호갱’으로 명성을 떨치며 급격한 신분 하락을 겪게 된 것일까.

자동차, 의류, 노트북, 휴대전화, 커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유명세를 탄 가구까지. 우리나라만 들어오면 어김없이 가격이 몇 배 씩 뛰고 있다. 

해외에서 4000원이면 살 수 있는 수영복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4만5000원, 무려 10배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며 사야하는 것일까. 향수 8배, 페이스파우더 6.4배, 초콜릿과 선글라스는 각각 3.5배 비싼 돈을 주고 제품을 구입해야 할 당위성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심지어 아플 때 복용하는 의약품마저 다른 나라보다 비싼 현실은 어쩐지 서글프기까지 하다. 물 건너 한국만 들어오면 제품에 금칠을 하는 것 아닐까 싶을정도로 가격이 급등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가장 큰 ‘호갱’ 논란을 불러일으킨 글로벌 기업은 단연 ‘이케아’.

저렴한 가격을 최대 무기로 내세우며 전 세계 42개국에 345개의 매장을 보유한 이케아가 뒤늦게 국내 시장 문을 두드렸다. 국내 소비자들은 즉각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들에게 돌아온 건 세계에서 ‘제일 비싼 가격’과 ‘일본해 표기 지도’였다.

이에 대해 몇몇 소비자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갱이라는 것이 외국 기업에 까지 소문이 난 모양”이라며 자조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이 말의 기저에는 ‘국내 기업들이 내국인들을 호갱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해외 기업까지 한국인들을 호갱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울분이 담겨있다. 한국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들이 국내 기업의 행태를 닮아간다는 것이다.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미국에서는 삼성 갤럭시 S5 가격이 통신사 2년 약정에 단돈 1센트, 사실상 공짜로 팔리고 있다. 한국에선 최고 보조금을 받기 위해 통신사 2년 약정에 9만 원대 요금제를 쓰더라도 64만 원을 지불해야 살 수 있는 제품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국내 소비자는 당연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질소과자와 단통법, 도서정가제 등 올 한 해 국내 소비자들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 다수의 소비자들은 ‘호갱 탈출’의 해법으로 해외직구를 택했다. ‘직구족’이 늘어나니 기업들은 선후관계는 직시하지 않은 채 국내 소비자들을 원망하며 우는 소리만 하고 있다. 정작 울고 싶은 건 소비자들이다.

기업들은 고객을 ‘왕’이라 부르고, 소비자들은 스스로를 ‘호갱’이라고 칭하는 시대. 소비자들은 ‘왕’ 대접을 바라지 않는다. 어리석은 ‘호갱’이 아닌 진정한 ‘고객’으로 소비자를 대하기를 바랄 뿐이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호갱’이길 거부한다.

하루빨리 ‘호갱’이라는 신조어가 불필요하게 돼 아무도 쓰지 않는 ‘사어(死語)’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이미 돌아선 소비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건 ‘입바른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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