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이용석 기자] 지난해 한 소비자가 벤츠 차량을 골프채로 박살낸 사건이 있었다. 해당 차량은 S63 AMG 모델로 가격은 2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1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베테랑>을 촬영할 때도 조심스럽게 다뤄졌다던 그 벤츠를 영화나 광고도 아닌데 도대체 왜 박살을 냈을까.

사연인즉슨 그 소비자가 가족들과 함께 해당 차량을 운행하던 중 시동이 꺼져 죽을 고비를 넘긴 때문이었다. 그것도 수차례씩이나. 억만금을 주고도 바꾸지 못할 가족의 생사가 달린 문제인데 그깟 2억이 대수랴.

이 골프채 퍼포먼스는 결국 국토교통부의 조사를 이끌어 냈고, 정말 기적과도 같이 벤츠가 리콜을 결정하는데까지 성공했다. 아주 드문 경우라고 보인다.

일반적인 공산품은 제품 결함때문에 목숨이 좌지우지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안전에 대한 기대치가 아무리 높다한들 자동차도 한낱 공산품이다. 당연히 불량은 발생하게 마련이다. 어떤 업체가 불량률 0%를 자신할 수 있을까. 사고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급발진’ 사고는 400건이 넘는다. 지난해 유난히도 많았던 ‘주행 중 화재’ 사고는 어림잡아도 10건 가까이 된다. 또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에어백 미전개’ 사고는 부지기수다.

위 사례처럼 시동이 꺼진다거나, 차체 부식이 심각할 정도로 훼손되는 경우는 수없이 알려졌다. 이 사고들은 어떻게 됐을까.

얼마전 식품업체 오뚜기가 라면 수프포장이 터졌다는 고객의 불만에 라면 한 박스를 보상했다는 훈훈한 미담과는 정반대로 자동차 업계에서는 사고가 나면 원인을 밝혀내는 것 조차 어렵다.

급발진은 대표적인 원인 불명 사고 중 하나로 운전자 조작 미숙으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다. 베테랑 운전기사도 예외는 없다. 주행 중 화재사고, 에어백 미전개 사고 등도 속 시원하게 원인을 밝혀진 사례는 거의 없다.

한 자동차회사 관계자는 “수만 대를 판매하는 차량 중에서 몇 대 이상이 있다고 해서 리콜을 하고 결함을인정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라면에 비하면 그 값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만큼 자동차 업체에 결함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소비자들은 라면과는 차원이 다른 값을 치르고 자동차를 구매한다.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안전을 제공받을 의무가 있음에도 일부 소비자들은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그런 사례를 보면서 일반 소비자들도 불안함을 안고 차를 탄다.

상황은 이러한데 문제는 업체들이 굳이 결함을 공개하고 수습에 적극적일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배출가스 조작 사건 이후 폭스바겐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기존의 판매세를 회복했고, 현대차에서 급발진 사고가 발생해도 국내 월 판매 1위 모델은 항상 현대차에서 나온다.

더 이상 자동차를 구매하지 말자고는 못한다.

다만 소비자의 권리같은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2억원짜리 차를 사더라도 결함을 밝혀내려면 골프채까지 들어야 하는 이 상황이 개탄스럽다.

소비자들은 나와 내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면 주저없이 골프채를 들겠다는 각오는 하고 살아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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