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Pal등 대기업 의류 납품 한우물 'Fine 김재인 대표'

▲ Fine의 김재인 대표이사, 일본 대기업들로부터 신뢰를 얻게된 경험을 밝혔다.

일본 유명 백화점과 기업들에 OEM방식으로 고가 의류를 신뢰로 납품하는 여성의류 중소기업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본지가 그 회사를 찾아갔다.

회사의 이름은 Fine, 현재 일본 유수의 기업들에 젊은이들 취향의 고가 의상만을 납품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은 Fine의 회의실에 들어서자 일본 바이어들에게 선보일 샘플용 의상들이 옷걸이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Fine의 김재인 대표는 빼곡하게 늘어선 샘플들을 가리키며 “바이어가 1주일동안 계속 올 예정인데 각각의 바이어마다 풍을 바꿔야 해요”라고 서두를 꺼냈다.

김 대표는 서글서글한 외모에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인터뷰에 응했는데 여느 인터뷰이들과는 다르게 소탈하게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현재 김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의류회사 Fine은 총 17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언뜻 보기엔 다른 의류수출들과 크게 다를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Fine은 1999년 회사 창립이후, 13년간 지속적으로 '일본 수출'이라는 한 우물을 파와 현재 일본 의류업계에서는 신뢰성만큼은 알아주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 대기업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하늘이 두쪽나도 납기를 지켰던게 오늘날 Fine의 밑거름이 됐다는게 김대표의 설명이다.

회사 상황에 대한 질문에 김대표의 대답은 의외로 "괜찮아요"였다. 글로벌 경기가 안좋아 의류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음으로써 상황이 쉽지않다"는 답변을 기대했던 기자의 상상이 여지없이 깨져버린 것.

김 대표는 “2003년에 환율이 730원까지 내려가서 당시 수출업체들 상황이 안 좋아 포기하는 회사도 많았는데 요즘은 대기업들의 주문이 많은데다 엔화 환율마저 올라서 지금은 좋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말대로 2008년까지만 해도 700~800원 대를 오갔던 엔화는 2009년 엔고현상으로 인해 최고 1600원대까지 뛰어올라 지금은 많은 신생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상황이다.

고가 의류를 주된 수출 품목으로 운영하고 있는 Fine은 국내 19개의 하청공장과, 중국 2개, 인도네시아 1개 등의 공장을 통해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저 같은 경우에는 저가 생산보단 고가생산 위주로 하고 있다”며 “인건비가 옛날엔 낮았는데 지금 우리 사무실 같은 경우에는 디자이너 90%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유학파들이라 비용측면이나 경쟁력 측면에서 고가품 위주로 생산할수 밖에 없다”며 일본 시장공략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김 대표는 “우리는 90%가 일본 쪽으로 수출을 하고 있는데 큰 기업으로는 메루로즈(メルローズ), PAL, 미츠비시 상사(三菱商事), 토요시마 상사(豊島商事) 등과 거래를 하고 있다”며 일본에서 아주 쟁쟁한 기업들의 이름을 열거해 나갔다.

Fine은 젊음의 거리 시부야에 위치한 109백화점( 一丸九デパート)에 OEM방식으로 수출을 하고 있다.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109백화점은 세계적으로 유행이 가장 빠른 곳으로 옛날에는 일본디자이너들이 유럽에 가서 유행을 체크해 갔지만, 이제는 109백화점에서 유럽디자이너들이 유행을 가져갈 정도로 유행에 민감한 곳”이라고 말해 이런 유명백화점에 의류를 납품하는 Fine의 위상을 가늠케 했다.

김대표는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회사로 성장했지만 Fine설립 초기에는 경영난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

김 대표는 “99년도 설립당시에는 바이어가 없어서 남의 회사(무역회사)생산 관리를 해줬어요 그렇게 번 돈으로 직원들 월급을 주며 7시까지 이 일을 하고, 이후에는 일본 영업을 하며 하루에 2~3시간 밖에 못 잘 정도로 고생을 했어요”라며 당시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김 대표의 노력의 결실은 2001년에 회사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빛을 보게 됐다.

김 대표는 회사가 흑자로 돌아선 계기에 대해 “먼저 바이어와 협력이 잘 됐고, 빠른 납기와 당시 부인복시장 수출이 대세일 때 젊은 층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 먹혀 들었다”며 그 원인을 꼽았다.

김 대표는 “과거에는 한국 브랜드는 ‘싸다’라는 인식이 컸지만, 이제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디자인을 보여줘도 ‘한국이니까 이렇게 비싸다’고 이미지가 변화 됐다”며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이야기했다.

▲ 회의실 벽면을 가득매운 샘플의상들이 일본 바이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뷰 중반부터 함께 자리한 Fine 해외사업부 서수영 과장은 예전과 달라진 회사의 모습에 대해 “근래 회사분위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질이 향상됐다"며 사회복지라던지 회사의 질이 매우 좋아져 요즘 일하는 맛이 난다”고 밝혔다.

내년 총 매출액 1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Fine은 향후 이회사 첫 브랜드인 ‘데르에’를 론칭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는 스파 브랜드가 너무 활성화가 돼 있어서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 같다”며 “이 거품이 꺼지면 진출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어요”라며 ‘데르에’론칭시기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기자가 김 대표의 경영철학에 대해 묻자 김 대표는 “새삼스럽게 무슨 경영 철학이라는 것이 특별히 있겠느냐”며 “그저 이 회사를 오백만원으로 시작했는데 항상 ‘망해도 잃은 것은 500만원 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하며 일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김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아내와 딸, 그리고 직원들을 얻어서 잃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또 직원들이 대부분 비슷한 또래 많아서 같이 늙어가는 모습 보는 것이 좋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김 대표는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 사무실이 참 좋다”라며 “Fine은 내 것이 아닌 우리 것”라고 자신에게 있어서의 Fine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끝으로 김 대표는 자신이 존경하는 박경진 회장(진흥문화)과의 대화중 자신의 머릿속에 강인하게 박혀 인생의 모토가 된 말을 소개했다.

“어느 날 박경진 회장이 ‘김 사장 '평등'을 무어라 생각하는가’하고 물었는데 저는 ‘5:5가 평등이 아닐까요?’라고 대답했는데 자기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당시 박경진 회장이 김 대표에게 말한 평등의 정의는 바로 4:6, 자신이 4가 되고 상대가 6이 돼야 분쟁이 없다는 그 말에 김 대표는 “자기가 손해 보듯 사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라는 말을 듣고 정말 대단한 마인드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Fine의 사뭇진지한 회의장면

이런 마인드를 가슴에 품은 김 대표는 바이어들에게 보여주고 난 샘플의상들을 '아름다운가게' 등에 기부를 하는 등 사회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기자가 인터뷰를 통해 느낀 Fine의 성공 비결은 단순히 높은 매출 달성을 목표로 달리는 회사가 아닌, 사회에 대한 헌신과 직원들 간의 애정이 넘치는 문화가 현재의 Fine을 이뤘다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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