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적 기업에 피해액 수배이상 배상…소비자 두텁게 보호

본지에 제보된 글을 먼저 한번 읽어보자. 지난 17일 제보된 피해 원문을 간추린 것이다.

"저는 흥국생명에 8년전 보험을 가입하게 됐는데 다리가 다쳐 수술한적이 있다고 했는데도 회사측에서 그래도 가입가능하다면서 강권하는 바람에 할수없이 가입한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협심증으로 입원, 보험금을 청구하자 흥국생명측은 고지의무 위반이라면서 일방적으로 해지했는데 제가 가입시 녹취자료를 요구하니 고지의무 위반 없었다고 인정하고 보험을 다시 살렸습니다.
 
그후 제가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목디스크 수술 4번, 허리수술 한번, 심장협심증 수술 두번을 연달아 하다보니 합병증으로 당뇨와 고지혈증도 생겼으며 뇌 왼쪽 대혈관도 막히게 됐습니다. 의사는 살아있는게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죠.
 
이 지경이 돼도 삼성생명에선 아무런 이의없이 보험금을 지급해줬지만 흥국생명은 보험금을 청구할 때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겁니다.
 
보험사기로 몰았다가 조사원이 문제없다고 하기도 했고 보험금을 깎자고도 했다가 결국엔 중환자인 저를 범죄자 취급해 보험사기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도와주세요"
 
제보자의 글로만 판단했을때 흥국생명측은 보험금 지급 의사가 없을 뿐더러 고지의무 위반이 아니란걸 알면서도 소비자를 형사제도를 악용해 악의로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경우로 볼수 있다.
 
이 경우 소비자가 할수 있는 건 고지의무 위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험금을 수령하고 나아가 사기죄로 몰았을 경우 형법 156조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 사실을 신고하는 죄'인 무고죄에 근거해 흥국생명을 고발할수도 있다.
 
이과정에서 발생된 손해가 있으면 역시 그 금액만큼 손해배상을 청구할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환자인 소비자가 불확실한 결과를 위해 취할수 있는 법적 수단은 현실적으로 한정돼있다.
 
무언가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금일(18일) "앞으론 대기업의 하도급대금 후려치기에 대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말한게 눈에 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건설·자동차부품·조선기자재·소프트웨어 분야 대기업 15곳의 대표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전달하며 이같이 밝힌 것.
 
대기업 납품가 후려치기에도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김 위원장 약속대로 납품가 후려치기에 대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면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낮추거나 기술을 탈취한 대기업은 거래금액의 3~10배를 물어줘야 하는데 중소기업으로선 최악의 경우 거래중단으로 입게 될 잠재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대기업의 횡포에 대해 쉽게 맞설수 있게된다.
 
6일전인 지난 12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소비 미래비전 포럼'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기도 했었다.
 
이날 경희대 권영준 교수는 소비자 분쟁조정제도의 효율적 개선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영국 미국 등 영미법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에서 주로 인정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무엇일까. 
 
미국 연방대법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정의에 대해 `응징과 억제를 위해 민사재판 배심원에 의해 부과되는 사적 벌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관련 유명한 사례는 맥도널드 사건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실제 유형
 
한 할머니가 49센트에 구입한 뜨거운 커피에 화상을 입어 치료비가 1만여 달러나 나온 사안에 대해 배심원은 징벌적 손해배상금으로 270만달러 배상을 인정한 것이다.
 
또 과거 조지 부시 행정부가 담배회사들에 대해 2,800억달러(현재 가치 312조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페널티 부과소송을 냈는데 2005년 10월 연방대법원이 이를 기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담배회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오르기도 했다.
 
당시 부시행정부가 담배회사들에 대해 부과했던 벌금이 바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근거한 배상금이었다.
 
부과 이유는 담배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고의로 일반에 대해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지만 연방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지하철 여객 운송약관 27조에도 징벌적 손해배상과 유사한 규정이 있다. 
 
무임승차한 승객에게 30배까지 가산금을 물리도록 한 것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이 법원판결에 의한다면 이 약관의 규정은 법원판결에 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는 있다.
 
서울지하철 여객운송약관 제27조(부가금)규정에 따르면 무단 열차이용, 승차권 분실, 단체 기재인원 초과인원 등의 사유가 있을때엔 1회권 운임의 30배 부가금을 받도록 돼있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피해자가 가해자의‘고의 또는 고의에 가까운 악의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경우, 그러한 행위를 장래 두 번 다시 못하게 하기위해 손해액과는 관계없이 고액의 배상금을 가해자에게 부과하는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 기업과 소비자사이에도 도입돼야
 
이처럼 광범위게 도입돼가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기업과 소비자사이에도 적용될수 있도록 하자는 게 이 글의 취지다.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범위는 소비자 피해유형과 법령 규정에 따라 실제 손해의 2배에서 몇 만 배까지 다양하게 결정된다.
 
즉 위법 부당한 행위를 한 자에 대해 고액의 손해배상을 인정해 피해자는 물론 소비자 등 사회 일반인을 보호하는 가해행위의 재발방지제도로 법원은 가해자의 행위가 폭력적 또는 위압적이거나 악의 기망 의도적 무시 등의 사유를 수반하는 경우에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입은 손해를 넘어 별도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명할 수 있다.
 
처음에 언급된 흥국생명건도 제보자 주장에만 근거해 판단한다면 '보험사측이 위압적이며 의도적 무시, 고지의무 위반사실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악의에 의한 법적 수단 이용' 등의 행태가 나타나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지급해야할 보험금의 수배이상을 물린다면 유사피해가 크게 줄어들어 사회적 약자인 보험소비자를 쉽게 보호할수 있게 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기 위해선 불법행위를 요건으로 하기때문에 가해자의 고의, 가해자의 책임능력, 가해행위의 위법성 및 가해행위에 의한 손해의 발생등이 있어야 한다.
 
또 가해자의 악의성을 요건으로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주된 목적은 가해행위의 억제 및 제재이므로 그 성립요건에는 가해자의 악의성이 전제된다. 다만 악의성은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법원이 판단한다. 따라서 행정기관의 판단에 의하는 과징금이나 과태료와는 다르다.
 
이밖에 징벌적 손해배상은 실질손해 이외에 추가적으로 부과하는 손해배상이다. 
 
가해자 악의성 제재에 큰 효과
 
이런 점에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성격의 위자료와 구분되며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의 비행을 제재하고 장래 그와 같은 행동을 못하게 억제하는 것이란 점에서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 성격을 띠고 있는 위자료와는 확연히 다르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당사자는 피해자 외에 대리인 법인 일정한 국가기관 등이 배상청구권을 갖는다.
 
배상액은 침해정도와 침해기간 피해규모 등이 감안되지만 제재와 억제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재산상태 등도 검토된다. 같은 액수일지라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과중한 액수가 될 것이 부유층에는 새발의 피 정도로 미미하다면 제재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너무 폭넓게 인정하면 기업은 쉽게 파산하고 보험회사의 보험책임이 증가해 보험료 상승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이중처벌금지 조항 위반 등의 합헌성 여부가 오랫동안 논란이 돼왔다.
 
그러나 형사벌이 부과되는 경우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금지하거나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면 위헌성 시비를 잠재울 수 있다.
 
현재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노르웨이 브라질 등이 도입했으며 러시아도 원상회복 금전배상 금지명령 등을 시행, 사실상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실손해액에 대한 배상이라는 법원칙을 채택하고 있어 환경 또는 인권 침해 등 불법행위에 있어서는 그 실제 손해를 입증하기 어려운데다 그 손해배상액 역시 지나치게 소액이어서 많은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따라서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이런 문제는 많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악의적인 불법행위에 대해 민사적으로 많은 손해배상금을 배상받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형사적보다는 민사적으로 분쟁 해결을 유도하는 장점도 있다. 
 
특히 기업의 악의성 등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높을수록 가해자가 부담해야 할 손해배상 금액이 증가하게 돼 최종적으론 악의적인 불법행위를 억제하는 순기능도 기대할수 있다. 
 
기업의 위법행위는 근본적으로 기업만이 방지할 수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기업이 적법하고도 적정한 거래를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게 한다는 점에서 도입을 늦출 이유는 없다.
 
◆ 도입 늦출수록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막는 사태 벌어져
 
기업의 자발적 노력은 분명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소비자 보호가 제도적으로 잘돼있다면 결국 기업은 품질경영에 주력할수 밖에 없게돼 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쟁력 향상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준다.
 
참여연대 측도 "제도 도입을 미룰수록 우리 기업의 경쟁력만 떨어뜨려서 결국은 기업 자체의 성장 및 생존에 악영향만 미친다"고 꾸준히 지적을 해왔다.
 
참여연대측은 "영리추구를 위해 제품 안전성을 기망하거나 하자를 알면서도 방치하고 나아가 폐수의 불법적 방출로 인한 손해 발생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불법행위의 대표적인 가해 주체가 기업인 것을 고려할 때 예외없이 기업의 모든 반사회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의 경기 침체를 감안해 장차 일어날 불법행위의 가능성을 막을 수 있는 제도 도입을 미룬다면 그야말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할 사태’를 계속 조장하는 격이 된다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늦출 이유가 없다는게 참여연대측의 일관된 주장이다.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해주고 기업엔 장기적으론 돈을 벌게 해줄 제도의 도입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발상전환이 시급하다.
 
소송 남발에 따른 기업도산 등을 막기위한 보완조치는 필요하지만 단지 기업의 활동제약만을 우려해 제도 도입을 꺼린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못담그는 격이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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