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고 넘는 박달재'의 가수 겸 작사가 반야월(95·박창오)옹이 26일 오후 3시20분께 세상을 떠났다.
1917년 경남 마산 태생인 고인은 1942년부터 예명 '반야월'로 활동했다. 1939년 가수 데뷔 때는 진방남(秦芳男)이라는 예명을 사용했으며 이후 추미림(秋美林), 박남포(朴南浦)라는 이름으로도 곡을 냈다.
진해농산학교를 다니다가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한 고인은 1939년 태평레코드사가 주관한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1940년 '잘있거라 항구야'와 '불효자는 웁니다' 등을 비롯해 '고향만리'(1941), '꽃마차'(1942) 등의 히트곡을 냈다.
광복 이후에는 가수보다는 주로 작사가로 활동했다. 마산방송국 문예부장으로 일했다. 대표적인 작사 곡은 1950년 발표한 '울고 넘는 박달재'와 1956년 '단장의 미아리고개'다. '소양강 처녀' '아빠의 청춘' 등 지난 70여년 간 5000여곡을 작사했다.
일제의 침략전쟁을 칭송하는 '결전 태평양'과 '일억 총진군' 등 군국가요 작사에 참여해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4776명에 포함됐다. 고인은 2010년 6월9일 국회 본청 귀빈식당에서 군국가요를 부른 것이 매우 후회스럽다며 사과했다.
대한레코드작가협회 이사(1956)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1964), 한국가요예술작가동지회 명예회장(2003) 등을 지냈다. 1991년 대중음악과 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훈장을 받았다.
고인의 노래비는 전국 곳곳에 서 있으며 고향 마산에서는 반야월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고인은 지난 22일 발족한 충북 제천시의 한국가요사 기념관 건립을 위해 음악 관련 소장품 158종을 무상으로 기증하기도 했다. 한국가요사 기념관에는 반야월 전시관 등이 들어선다. 내년 상반기 착공해 10월 준공할 예정이다.
딸 미라(작사가)·애라(주부)·희라(작곡가)·보라(주부), 아들 미호(작곡가)·민호(작곡가)씨가 유족이다.
장례는 한국가요작가협회 5일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이 생전에 바란대로 박달재에서 수목장으로 엄수될 예정이다. 딸 희라씨는 "한국가요사 기념관이 완공된 뒤 수목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풍납2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 30호실, 발인 30일 오전 8시.
소비자고발
news@sobijagoba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