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김성훈 초대 대표 인터뷰
종심(從心)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孔子)가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道)에 어그러지지 않았다.(從心所欲不踰矩)”고 한데서 유래된 말이다.
종심을 넘긴 노신사가 소비자 정의 구현을 위해 다시 한 번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주인공은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초대 대표에 취임한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청담동에 위치한 한 호텔 내 커피숍에서 만난 김 대표는 중책을 맡은 투사의 이미지 보다는 고향집 할아버지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김 대표는 현재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를 맡은 동시에 미디어협동조합 이사장을 맡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달 말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끝나면서 더 이상 反환경적인 대통령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의 퇴임이후 나는 자유인을 꿈꿨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김 대표를 필요로 했다.김 대표는 웃으며 “나는 평생 시민단체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가보다”며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풀어냈다.
그래도 좋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면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자꾸 이러니… 진짜 자유인이 됐으면 좋겠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자신을 아직도 필요로 하는 세상에 대한 소회일까.
김 대표는 시민운동을 ‘가라오케 운동’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노래방 갈 때 자기 시간과 돈을 내고 누가 듣거나 말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마치 시민운동과 같지 않느냐”
김 대표는 가라오케 운동이라 불릴 만큼 외롭고 힘든 씨름판에 다시 한 번 샅바를 고쳐 매고 있었다.
◆ 소비자 위해 농업 살려야…영농협동조합으로 가정농업 전문화 필요
김 대표는 시민운동 중에서도 농민운동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김 대표는 서울대학교에서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전남대학교 대학원과 미국 EWC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98년 제50대 농림부장관을 역임했다.
이런 경력 때문인지 몰라도 김 대표는 “소비자를 위해 농업을 살려야한다”며 농업 분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김 대표는 “지금 재벌기업이 시화호에 유리온실을 지어 토마토 농사를 지으려 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위해 FTA대책지원금까지 주고 있다”며 “농업경쟁력이라는 것이 기존 농민들의 경쟁력을 강화해 주는 것이지 대기업을 키우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일갈했다.
김 대표는 농업경쟁력의 강화를 위한 대책으로 ‘영농조합법인’을 꼽았다.
김 대표는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농민들이 협동해 가정농업을 전문화시켜야 한다”며 “대기업이 농업분야에 들어오는 것은 농업의 자원적 기능 유지라는 관점에서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이 농업분야에 참입하면 이윤을 최대화 하기 위해 환경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것이 김 대표가 우려하는 점 중 하나이다.
김 대표는 “대기업 농업과 GMO토마토 모두 소비자들에게 손해다”며 “이것을 감시할 체계도 법도 없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는 “옛말에 한국사람들은 이마가 터져 피가 나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했다”며 “미리 내다보고 대책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이마가 터질 때까지도 참은 뒤 피가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는 것인데 그때는 이미 늦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FTA에 대한 우려도 빠뜨리지 않았다.
김 대표는 “미국과 EU도 모자라 중국과도 FTA를 한다고 한다”며 “중국은 우리와 기후가 비슷하기 때문에 미국, EU와 FTA를 체결했을 당시 겨우 살아남았던 고사리, 도라지농업도 모두 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 ▲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김성훈 초대 대표는 "경제민주화의 첫 걸음은 소비자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 ||
◆ 소비자 정의 세우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첫 걸음
김 대표는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에 취임하면서 “경제민주화의 첫 걸음은 소비자 정의를 밝히고 바로 세워나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경제민주화라는 것은 ‘재벌을 줄인다’ 이런 개념이 아니라 소비자주권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며 “소비자가 봉이 아닌 왕이 되는 것, 이것이 경제민주화의 이상적인 상태”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자유시장경제라는 부분에서 소비자의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소비자가 기업이나 정부의 봉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국내 기업이 생산한 내수용 제품과 수출용 제품의 가격 및 품질의 차이를 그 예로 들었다.
김 대표는 “소비자입장에서 왕이 되려면 수출하는 상품의 국내 가격과 해외가격 중 어느 것이 더 싸야 맞느냐”며 “국내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가격에 튼튼한 상품을 구입해야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를 예로 들면서 “나는 18년째 쏘나타를 운전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캐나다 교환교수로 갔을 때 샀던 것인데 한국에서 사는 것 보다 200만원이 싸고, 철판도 훨씬 두껍고 마력수도 높다”며 자신의 체험담을 이야기했다.
김 대표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조작농산물)농산물의 실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지금 소비하고 있는 콩과 옥수수의 8할 이상이 GMO”라며 “GMO로 인해 생태계 교란은 물론 사람들의 건강까지 위협 당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음에도 국내 언론들이 이를 경고하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는가”라고 성토했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언론에도 일침을 가한 것.
◆ 박근혜 정부, 이명박 정부보다도 걱정…아직 희망 버리지는 않아
김 대표는 이명박 정부 이후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는 신자유주의 기조에 대해 언급했다.
김 대표는 “돈 버는 것은 무엇이든지 좋은 것, 그러다보니 자연히 큰 것이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만 지원하게 된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워싱턴DC에서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고 했을 때 한 말이 ‘일부 축산 농민들의 불만은 있겠지만, 우리 소비자들은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니 잘됐지 않았느냐”는 아주 단순무식한 판단이 정치기조를 지배해 왔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런 정치적 기조를 깨뜨릴 지도자로 박근혜 대통령이 적임자라는 생각했지만, 취임 이후의 모습 때문에 걱정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김 대표는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외국스파이 의혹, 외국 무기업체 브로커 회사에서 고문으로 있던 사람을 정부 중요요직에 임명하는 것을 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더하다는 생각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농업문제 만큼은 바로잡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국회의원 초년병 시절 확실히 농업만큼은 자기 아버지의 애정을 물려받은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받았고, 대선기간에도 농업문제는 자기가 챙기겠다고 해놓고는 인수위원회에 한명도 농업계인사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김 대표는 “농심은 민심이고 민심은 천심”이라며 “이것들을 잃으면 비극이 오게 된다”고 지적했다.
◆ 소비자 알 권리 위해 노력할 것
김 대표는 소비자의 7대 권리로 ▲안전할 권리 ▲알 권리 ▲선택할 권리 ▲의견을 반영할 권리 ▲피해를 보상받을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단체를 조직할 권리를 내세웠다.
이중 김 대표가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알 권리’로 이를 위해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지난 11일 식품의약품안정청(이하 식약청)을 상대로 유전자재조합식품의 수입업체 현황 비공개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이 외에도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온라인장터 표시가격 개선과 보험상품 불완전판매 문제 해소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소비자단체, 돈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김 대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소비자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본과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제안했다.
김 대표는 “소비자단체의 운영자체가 정부로부터 위탁받은 사항이나 기업의 후원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상당수다”며 “대기업과 정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소비자 위해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지금의 소비자단체들이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며 “그러나 정부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감히 누가 문제제기할 수 있느냐”며 외국 소비자단체를 본 받을 것을 충고했다.
김 대표는 소비자단체들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방안으로 시민들의 적극적인 개미집단 후원을 이끌어낼 것을 제시했다.
김 대표는 자신의 임기기간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한 질문에 “74세에 들어가면서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보다 내가 구상한 것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데 헌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본지에 “고발 좀 제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대표는 “대부분의 공직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남이 모르게 하고 있고 기업은 사운으로 다루는 생명처럼 업무를 비밀로 하고 있어 투명치 못하다”며 “소비자의 권익과 관계된 것을 알 수 있도록 소비자고발신문이 앞장서줬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