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감정의 주체자들 ‘기쁨이’ ‘슬픔이’ ‘까칠이’ ‘소심이’ ‘버럭이’

※ 본 기사는 주관적인 리뷰이며 일부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애니메이션 영화의 주 타깃은 언제나 어린이다. 물론 남녀노소 누구에게 사랑 받은 작품들도 많지만 언제나 그 중심에는 어린이들의 ‘판타지’, ‘공감대’와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주를 이뤘다.

그 사이에서 <토이스토리>, <업> 등 어른들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작품들을 자주 선보이던 픽사의 손에 의해 또 한 번의 어른들을 위한 만화가 나왔다. 단언컨대, 어린이 보다 어른들의 ‘공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화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잃어버린 기억, 무의식 속에 잊고 있는 추억의 절대량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는 성인들이 더 웃음 짓고 더 많이 눈물 흘리게 되는 애니메이션 영화, 바로 <인사이드 아웃>이다.

▶내 머릿속에 살고 있는 넌 누구?! 기쁨·슬픔·까칠·소심·버럭

인사이드 아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 아니 심지어 말 못하는 동물들 까지도 각자의 머릿속에 감정 컨트롤 본부를 갖고 있다는 설정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한마디로 우리가 매 순간 느끼는 기쁨, 슬픔,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들은 실은 머릿속 감정의 주체자들인 ‘기쁨이’, ‘슬픔이’, ‘까칠이’, ‘소심이’, ‘버럭이’가 컨트롤 본부에서 불철주야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각자가 나서야 할 타이밍을 재고 있다 발현된다는 것.

 

영화는 인간의 감정 하나하나를 인격화시킨 기발한 발상을 기반으로 주인공 소녀 ‘라일리’의 탄생부터 사춘기 시절까지의 성장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는 11살 소녀 라일리는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갑작스럽게 이사를 하게 되면서 급격하게 달라진 낯선 주변환경에 미묘한 감정 변화를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컨트롤 본부에서는 슬픔이가 자꾸만 돌발 행동을 벌여 기쁨이를 당황하게 만든다.

감정들의 대장격인 기쁨이는 라일리의 즐거운 기억을 모아둔 구슬에 자꾸만 손을 대 우울한 기억으로 물들이려는 슬픔이를 저지하려 고군분투하지만 상황을 점점 더 꼬여 두 사람 모두 본부 밖으로 이탈하는 사고를 겪게 된다. 기쁨과 슬픔이 사라진 라일리에겐 분노와 까칠함만이 가득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트러블메이커가 돼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다.

같은 시간, 기쁨이와 슬픔은 라일리의 기억저장소를 헤매며 본부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방대한 기억들이 저장돼 있는 머릿속 세계에서 길을 찾기란 험난하기만 하다.

▶어릴 적 상상 속 친구와의 재회! ”기억은 없지만…반갑다, 빙봉!”

Who's your friend who likes to play?
(Bing Bong, Bing Bong)
His rocket makes you yell "Hooray!"
(Bing Bong, Bing Bong)
Who's the best in every way, and wants to sing this song to say
(Bing Bong, Bing BONG!)

솜사탕으로 만들어진 분홍색 털, 고양이 꼬리, 코끼리 코 등 라일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섞여 만들어진 귀여운 친구 ‘빙봉’. 특히 울 때 눈물 대신 카라멜 캔디가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모습은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빙봉은 라일리가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던 유아시절 만들어낸 그녀만의 가상 친구다.

“빙봉~ 빙봉~” 함께 노래를 부르면 빗자루연통에서 무지개가 뿜어져 나와 달나라로 날아갈 수 있는 수레를 타고 놀던 두 사람. 당연히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런 빙봉이 보일리 없다. 그리고 라일리가 또래친구들과 어울려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유일한 친구였던 라일리의 기억 속에서 조차 차츰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그랬던 빙봉이 다시 나타났다. 길을 헤매는 기쁨이와 슬픔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빙봉은 라일리가 자신을 다시 기억해줄지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을 품고 기쁨이와 슬픔의 길잡이를 자처해 함께 본부로 갈 수 있는 ‘상상의 기차’를 탄다.

인사이드 아웃의 핵심 가치는 누가 뭐래도 ‘빙봉’.

이제는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기억해낼 수 없는 친구.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정말 어린 시절 그런 친구가 존재했는지 조차 확실치 않다. 어쨌든 우리에게 어릴 때 상상 속의 비밀친구가 있었을 것 같은 기분을 만끽시켜주는 것만으로도 ‘빙봉’의 존재는 그 누구에게나 반가울 수밖에 없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이 영화의 ‘손수건 타임’은 이 친구가 담당하게 됐다. 어릴 적 만들었던 상상 속 친구. 그를 다시 잃어버리는 건 어쩌면 인간이 성숙해지는 과정 속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건 역시나 마음 아픈 일이다.

▶’슬픔’ 없이는 ‘기쁨’ 또한 있을 수 없다…단순하지만 명쾌한 깨달음

영화를 관람하던 몇몇 사람들은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났을 것이다.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의 머리 색과 몸 색은 각각 파란색, 빨간색, 보라색, 초록색으로 동일하게 이뤄져 있는데 어째서 기쁨이만 몸은 노란색 머리는 파란 색으로 다르게 설정된 걸까.

 

그리고 결말을 곰곰이 곱씹은 뒤 그 해답을 손쉽게 찾게 된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발현되어야만 슬픈 일을 극복 할 수 있다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슬픔을 드러내지 않으면 위로 받을 수 없고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사실 영화 초·중반까지만 해도 슬픔이라는 캐릭터는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짜증유발자’로 정의 내릴 수 있다. 무기력하고 느릿느릿한 말투와 우울한 표정을 하곤 기쁨이가 말리는데도 기어코 라일리의 즐거운 기억을 건드려 모두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슬픔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감정 낭비일 뿐일까?

기쁨이는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슬픔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부로 돌아가기 전 그녀의 손을 잠시 놓아버렸지만 마지막에 결국 깨닫게 된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슬픔 없이는 기쁨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쁨을 위해서는 슬픔도 반드시 필요하며 슬픔도 우리가 살면서 느껴야 할 중요한 감정이라는 것.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한편, 틈만 나면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콧노래의 정체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폭풍 공감 유발. 엄마와 아빠의 머릿속 감정들을 통해 성인 남녀의 차이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재치와 유머.

그 외에도 라일리 상상 속의 남자친구, 꿈 제작소, 생각의 기차, 기억 쓰레기장, 성격의 섬 등 머릿 속 세계를 시각화 해 보여주는 장면들 모두 하나도 빠트릴 수 없는 명장면이자 깨알 포인트다.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애니메이션/코미디. 감독 피트 닥터.

전체 관람가. 2015년 7월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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