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윤철한 팀장

   
▲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윤철한 국장

좀 껄끄럽고 불편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소비자운동과 소비자단체에 대한 이야기다. 이글은 소비자단체에 대한 애정으로 봐주기 바란다.

정부는 70년대 이후 ‘잘 살아보세’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경제부흥과 산업발전을 위해 재벌로 대변되는 기형적인 기업위주의 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소비자의 권리는 무시되고, 소비자는 기업을 살찌우는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올해 12월 대선에서 최대화두인 경제민주화도 이러한 기업위주 정책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소비자단체는 자발적이고 헌신적으로 왜곡된 소비환경에서 소비자의 주권을 찾기 위해 노력하여 왔고, 이로 인해 소비자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크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소비자단체에 대한 역할이나 국민적 기대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 증대나 국민적 기대를 소비자단체가 제대로 부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소비자단체 시스템은 매우 독특하다. 정부는 기업위주의 정책을 펼치면서도, 한편으로 기업을 견제하기 위하여 소비자단체 등록 제도를 도입하였다. 등록한 소비자단체에 대해서는 법적권리와 재정적 혜택이 주어진다.

등록된 소비자단체는 소비자기본법, 약관규제법, 표시광고법, 방문판매법, 전자상거래법, 개인정보호보호법, 식품위생법 및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의해 사업자에게 자료제공 요청하거나 분쟁조정, 법원에 단체소송제기 등 많은 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사업비 및 시설비를 지원 받을 수도 있다. 또한 물가대책위원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국민연금심의위원회,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금융조정위원회 등 소비자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에 대하여 소비자를 대표해서 정부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도 생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단체 등록제도가 오히려 소비자운동을 활성화시키는게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운동과 소비자단체의 발목을 잡는 덧으로 변질되고 있다.

첫째, 소비자단체 등록 자체가 기득권이 되어 버렸다. 소비자단체에 등록하게 되면 혜택이 많다보니, 이미 등록한 단체 입장에서는 신규 단체가 등록되는 걸 꺼리게 되고 보이지 않는 견제를 하게 된다. 그 결과 공정위에 등록된 소비자단체는 몇 개 단체를 제외하고 87년도에 등록되었다. 나아가 이중 10개 단체가 소비자단체협의회를 구성하여 실질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원을 독점하고 있다.

둘째, 독립성의 한계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비자단체의 사업비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통해 해결하다보니,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해야할 역할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셋째, 투명성이 부족하다. 공정위에 등록된 14개 소비자단체의 홈페이지를 조사해 보면, 정관이나 규칙, 임원, 임기 등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특정인이 임기 없이 30년 이상 주요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또한 정부 지원을 통한 사업내용 조차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넷째, 소비자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는지 확인할 수 없다. 소비자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에 대하여 소비자를 대표해서 정부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내용이나 논의과정이 전혀 공개되지 않아 소비자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거나 소비자의 대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그 동안 소비자단체가 우리사회를 위해, 소비자 권익증진을 위한 노력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비환경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정 단체에 한정된 제도적 혜택이나, 의사결정 독점, 재정과 운동의 투명성 부족 등 초심으로 돌아가 바꿀 건 바꿔야 할 것이다. 이제 변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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