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환의 ‘맛있는 집’

 죽은 주로 입맛이 없어서, 몸이 안 좋아서 먹는 음식이다. 그런 만큼 좀 더 맛있고 양질의 재료를 넣어 만드는 죽을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럴 때 가볼만한 곳이 서울 여의도 KBS 별관 인근 전통죽 전문점 ‘대여’(여의도동 44-4 태양빌딩 101호·02-783-6023)다.

 
1983년 오픈해 30년 가까이 주욱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마음이 놓인다. 태양빌딩을 찾으면 밖에 입간판이 보인다. 그렇지만 건물 정면에서는 가게가 눈에 띄지 않는다. 1층은 1층이되 건물 안쪽에 숨어있고 정면 대신 측면과 이어지는 탓이다.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새우죽’, ‘야채죽’, ‘버섯굴죽’, ‘소두부죽’, ‘닭죽’, ‘잣죽’, ‘호박죽’, ‘동지죽’(팥죽)(이상 각 9000원) 등 다채로운 재료로 만드는 죽부터 죽집의 죽맛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전복죽’(1만2000원), ‘전복 산삼죽’, ‘전복 자연송이죽’(이상 각 2만원) 등 최고급 보양죽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죽이 마음에 드는 것은 어떤 재료를 넣었을까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이름만으로 재료를 눈치챌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전복산삼죽의 산삼은 진짜 산삼이 아니라 산삼과 98% 같다는 산삼배양근이긴 하다. 이 집 식재료는 100% 국산, 그것도 좋다고 소문난 지역에서 직송된다고 한다. 새우는 나로도, 굴은 통영, 전복은 완도, 그리고 쌀은 죽을 만들 때 꼭 필요한 엉기는 성질이 강한 정읍산을 쓴다고 한다. 소고기는 국내산 육우다.
 
10여 종의 죽 중 인기 높은 죽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독특한 풍미를 지닌 새우죽, 야채죽, 버섯굴죽 3총사와 전복죽이다. 전복죽을 먹을까 하다가 다소 비싸지만 일반 프랜차이즈 죽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전복자연송이죽을 골랐다. 주문하자 직원이 물김치를 비롯해 김치, 우엉조림, 콩나물 등 밑반찬을 세팅한다. 잠사 뒤 주문한 죽이 나온다. 
 
가게 안 수족관에서 지내던 활전복과 지난해 가을 채취한 자연송이를 주재료로 만든단다. 일단 죽 색깔이 노란 색이 나는 것은 전복의 내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노란색은 수컷, 녹색은 암컷이라니 이 죽은 수컷을 넣은 죽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릇에는 얇게 저민 송이버섯과 얇고 잘게 자른 전복 살들이 가득하다. 
 
죽만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아….” 경탄할 정도다. 프랜차이즈 죽 전문점의 그것과는 격이 다른 맛을 자랑했다. 이번에는 송이버섯과 함께다. 부드럽게 씹히는 동시에 입 안 가득 송이 향이 느껴졌다. 그 다음은 전복 살을 중심으로 떴다. 쫄깃쫄깃한 듯하다가 야들야들한 것이 맛이 절로 났다.
 
죽은 겉은 적당히 식지만 속은 그대로 뜨겁다. 따라서 죽을 먹다 보면 자칫 입안을 델 수 있다. 이럴 때 먹으라고 주는 반찬이 바로 물김치다. 그래서 죽집의 물김치 맛은 죽집의 인상을 좌우한다. 다행히 이 집 물김치는 너무 달거나 짜거나 쓰지 않고 감칠맛이 난다. 직원이 무표정하긴 하지만 불친절하지 않아 여러 번 달라고 해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갖다 준다.
 
인테리어는 흘러간 1980~90년대풍이고, 가게 안에 턴테이블과 수백장의 레코드판이 있다. 흐르는 음악도 바로 이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경음악이다. 그렇지만 근래 ‘써니’, ‘댄싱퀸’,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건축학개론’ 등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복고 영화를 하도 봐서 그런지 어색하기는커녕 오히려 정겹다. 
 
명절을 제외하고 연중무휴다. 오피스타운인 지역 특성상 평일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 주말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포장손님도 많다. 단, 주차 공간이 없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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