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동경하는 19세 소년과 유쾌하고 씩씩하게 삶을 사는 80세 할머니 이야기

※ 본 기사는 주관적인 리뷰이며 일부 연극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컨슈머치 = 김예솔 기자] 19세 소년과 80세 할머니의 러브스토리가 가능한 일일까. 연극 <해롤드앤모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이 범상치 않은 러브스토리를 유쾌하고 낭만적으로 풀어냈다. 수없이 자살시도를 하며 죽음을 동경하는 19세 소년 ‘해롤드’와 밝고 긍정적인 80세 할머니 ‘모드’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두 사람 사이의 우정과 사랑에 관한 연극이다.

▲ 해롤드앤모드

작년 드라마 ‘미생’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장백기역의 ‘강하늘’이 삶의 의욕 없이 자살시도를 벌이는 ‘해롤드’로 분했다. 관객들에게 능청맞은 유머를 날리며 긍정적인 삶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드’는 연극배우 ‘박정자’가 맡았다.

‘강하늘’은 2006년 뮤지컬 천상시계로 데뷔했지만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몬스타, 엔젤아이즈, 상속자들, 미생 등 다 수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다. ‘박정자’는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뒤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연극계의 거물이다.

나이, 성별, 이력 등 그 어느 것 하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두 배우. 작품을 감상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두 사람의 조합이 어떤 식으로 앙상블을 이룰지 언뜻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연극의 막이 내려진 뒤 두 사람은 <해롤드앤모드> 내용 안에서도 밖에서도 서로에게 꼭 들어맞는 환상의 짝꿍임을 실감했다.

▲ 출처 = playdb, 해롤드와 모드가 함께 한 순간들

연극 밖에서 둘의 모습을 보면 이제 막 대중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신선한 배우 ‘강하늘’의 부족한 부분을 약 50년 경력의 노련한 베테랑 배우 ‘박정자’가 채워주고 해롤드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을 작품에 대한 기대로까지 이끌어낸 강하늘의 모습은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애정을 갈구하며 감성적 위로가 필요했던 해롤드는 끊임없이 자살시도를 하는 중 유쾌하고도 긍정적인 삶을 사는 할머니 모드를 통해 삶의 즐거움을 배우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의욕 없는 인생에서 길을 잃은 해롤드에게 모드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길잡이 같은 존재였다. 혼자지만 씩씩하고도 재밌게 살아가는 노년의 모드에게도 어린 해롤드는 행복함과 새로운 자극을 주는 친구다.

<해롤드앤모드>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활력을 주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가득 담겨있다. 자살시도를 취미 생활하듯 하는 극단적 주인공 해롤드에게 전하는 말이지만 결국 관객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조언은 모드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정말 할머니 같은 말투로 할머니 같지 않은 의욕적이고 활력적인 말을 마구 쏟아낸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 뱉는 대사 한 마디가 가슴에 콕콕 박혀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 출처 = playdb, 해롤드앤모드

모드의 캐릭터는 최근 본 할머니 캐릭터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60년 이상 어린 19세 소년에게 청혼까지 받아내니 말이다. 오히려 소녀 팬을 다수 보유한 훈남 강하늘을 보러 갔다가 극장을 나올 때는 박정자의 매력에 빠질 법 하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두 주인공이 결국 이별하며 슬픔 속에 연극은 끝났지만 그 과정은 재밌는 개그 프로와 인간극장을 합쳐놓은 듯이 웃음과 감동을 함께 선사했다.

연극을 관람하는 내내 둘 사이의 관계가 우정인지 사랑인지 헷갈린다. 확실한건 해롤드에게 모드는 사랑이었다. 파격적이었던 해롤드와 모드의 키스신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드에게 해롤드는 계획했던 죽음을 앞두고 만난 가엽고도 귀여운 친구 정도가 아니었을까.

국내에서 1987년 초연한 이후로 현재까지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해롤드앤모드>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어 자살 시도를 하는 해롤드와 인생에서 하루의 새로움을 강조하면서도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한 모드의 역설적인 이야기를 우울하지 않게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2015년 3월 1일까지 공연. 만 13세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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