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고지의무 다했다" 판시…개인정보 악용되는 선례될까 우려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경품행사를 미끼로 수집한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팔아 넘겨 전 국민적 공분을 샀던 홈플러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아 파장이 커지고 있다.

법원은 홈플러스가 법에서 요구하는 개인정보 제3자 유상고지 의무를 다 했다는 판단이지만 여론은 법원이 또 한 번 ‘대기업 봐주기식’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냐며 들끓고 있다.

▶1㎜ 가량 크기 경품응모권 글씨,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수준?

홈플러스 법인과 도 전 사장 등 전·현직 임직원들은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경품행사 등으로 모은 개인정보 2,400만여 건을 보험사에 231억7,000만 원에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며 물의를 빚었다.

검찰은 홈플러스 법인에 벌금 7,500만 원과 추징금 231억7,000만 원을, 도성환 홈플러스 전 사장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부상준 부장판사는 기소된 도성환(61) 홈플러스 전 사장과 홈플러스 주식회사를 비롯해 고객정보를 불법으로 제공받은 혐의로 기소된 보험회사 L사와 S사의 제휴마케팅팀 차장 2명까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홈플러스 측이 법에서 요구하는 개인정보 제3자 유상고지 의무를 다했다고 판단했다.

부 판사는 “경품응모권에 ‘개인정보가 보험회사 영업에 활용될 수 있다’는 내용 등 법률 상 고지사항이 모두 적혀 있으며, 고객들 역시 자신의 개인정보가 보험회사 영업에 사용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응모권에 기입 된 '보험마케팅 및 정보제공'에 대한 내용이 1㎜ 가량으로 작아 사실상 읽을 수 없게 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4포인트 정도의 크기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며 다른 응모권이나 복권 등도 비슷한 크기인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은 거짓이나 기타 부정한 방법이라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가 당첨자에게 경품을 주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사실인 개인정보 불법판매 혐의와 무관하며 애초 경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행사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이번 판결에 불복하고 즉각 서울중앙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소비자·시민단체, 홈플러스 무죄 “비상식적”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등 13개 소비자·시민단체들은 ‘무죄’ 판결에 대해 철저하게 기업중심적 판결이며 대기업에 면죄부를 안겨 준 비상식적 판단이라고 비난했다.

13개 시민·소비자단체들은 “특히 홈플러스가 고객정보를 타 사에 제공한 것을 기업 업무를 위한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이는 법원이 앞장 서서 업체 간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공유와 활용으로 악용될 소지를 마련해 준 것”라고 주장했다.

홈플러스가 개인정보 판매로 올린 이익은 231억 원에 달하지만 현재 공식적으로 나온 정부의 처벌은 표시광고법 위반에 의한 과징금 4억3,500만 원에 불과하다.

경실련 박지호 간사는 “정부가 유출피해에 대해 소극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불법행위에 대한 과징금과 과태료를 현실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집단소송제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멍 뚫린 대형마트, 개인정보 유출 통로?

이번 홈플러스의 무죄 판결은 대형마트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다시 뜨거운 감자로 만들었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역시 과거 개인정보 유출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자사에서 진행한 보험사 행사에서 경품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업체가 수백만 건의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판매한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단지 보험사에 매장을 빌려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끝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대해 무혐의 처리됐다.

잇따른 대형마트 업체들의 고객정보 유출 및 불법매매 의혹들은 수많은 소비자들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때문에 고객정보 관리시스템 개선과 함께 근본적인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단체 한 관계자는 “유통업체들이 포인트 혜택 제공 등의 명목으로 이용자들의 쇼핑내역을 빅데이터로 분석, 활용하고 있다”며 “이용자들이 자신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온라인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이 개인정보보호법에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홈플러스와 같이 기업이 수익 창출을 위해 계획적, 의도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서는 수익의 몇 배에 해당하는 배상책임을 부과하는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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