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주관적인 리뷰이며 일부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솔직히 고백하자면 평소 ‘저예산 영화’를 보는 일이 거의 없다.

‘저예산 영화는 보지 않을 것이다’는 어떤 확고한 의지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평범한 대중들이 그렇듯 ‘딱히 손이 가지 않아서’ 무심코 지나치고 있다.

‘돈을 쓰지 않은’, 아니 ‘돈을 쓰지 못한’ 영화는 반드시 극장 스크린을 통해 봐야만 하는 ‘무언가’가 없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스타’도 없지 않은가.

▲ 영화 <동주>

상업영화 1,000만 시대 속에 소외 받기 쉬웠던 순제작비 5억 원의 저예산 영화 <동주>가 누적관객수 100만 명 돌파하며 충무로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영화 <동주>의 이러한 흥행몰이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관객 입소문과 더불어 영화 소재인 ‘윤동주’라는 이름 석 자가 우리에게 주는 강렬한 끌림 때문일 것이다.

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와 열사 송몽규를 스크린에 담았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시절 한 집에서 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의 일대기를 그렸다. 일대기라고 해 봤자 고작 29년, 서글플 정도로 정말 짧은 삶이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시인 윤동주와 한 번도 조명받지 못해 낯선 독립운동가 송몽규. 영화를 통해 비춰지는 이 둘의 모습은 애국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 외에 모든 것이 정반대다.

▲ 영화 <동주>

“총은 내가 들게. 니는 글을 쓰라.”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영화의 제목은 <동주>이지만 윤동주와 송몽규 두 인물 모두에게 초점을 맞춰 극이 흘러간다. 그리고 시종일관 둘을 대비시킨다. 동주가 백이라면 몽규는 흑.

어린나이에 이미 올곧은 신념으로 똘똘 뭉친 행동파 몽규가 생각이 많고 신중한 동주보다 더욱 부각돼 보일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째됐든 영화는 적절히 둘의 균형을 맞춰간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 그 속에서 시인을 꿈꾸는 일이 ‘나약한 선택’ 혹은 ‘문학으로의 도피’는 아닐지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동주는 치열하게 고뇌하고 좌절감, 패배감 등을 느낀다.

이처럼 내성적이면서 소심한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몽규는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도, 열등감을 갖게 만드는 존재다. 동주를 바라보는 몽규의 감정은 명확하고, 몽규를 바라보는 동주의 감정은 복잡하다.

그러나 핏줄이자, 벗이자, 일생의 라이벌인 두 사람은 서로의 인생에 너무도 깊이 개입돼 있고, 너무도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만은 똑같다. 동주는 곧 몽규고, 몽규는 곧 동주다.

영화 <동주>는 흑백 영화다.

컬러TV 이후에 태어난 현재 세대에게 밋밋하고 낯선 흑백화면은 분명히 몰입도를 방해하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북간도 사투리도 관람 초반 괴로움을 증폭시킨다.

▲ 영화 <동주>

그러나 어느 순간 영화 속 흑백 세상은 그 시절 시공간으로 관객들을 온전히 끌고 간다. 한 마디로 그 시절을 스크린 속에 담은 것이 아니라 관객을 그 시절로 ‘타임워프’시킨 것이다.

그렇게 영화에 빠져드는 순간 흑백 화면은 더 이상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한 수’가 된다.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이 느낌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듣고 싶어 이준익 감독의 의도를 찾아봤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흑백으로 연출한 이유에 대해 “윤동주 시인을 컬러로 그려냈다면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인물과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해서 오히려 흑백이 더 사실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또한 “흑백 사진으로만 봐오던 윤동주 시인과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모습을 최대한 담백하고 정중하게 표현하기 위해 흑백 화면을 선택했고, 스물여덟 청춘의 시절을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낸 이분들의 영혼을 흑백의 화면에 정중히 모시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동주>는 ‘보고 싶은 영화’다.

개인적으로 이런 역사적 소재를 다루는 영화일수록 ‘봐야만 하는 영화’가 아닌 ‘보고 싶은 영화’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그런 면에서 동주는 만족도를 충분히 채워졌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상업성은 철저히 경계하고 배제하되 대중성은 살린 이준익의 감독의 영리한 선택이 빛을 발했다.

▲ 영화 <동주>

특히 역사적 소재를 다룬 한국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신파적 연출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극적인 상황에서조차 결코 넘치지 않는다. 시종 물 흐르듯 잔잔하고 담담한 전개가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더 강렬한 울림과 여운이 남도록 만드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왕의남자, 사도 등 수 많은 히트작을 남긴 이준익 감독의 대표작은 이제 단연 영화 <동주>가 아닐까. 또한 이번 영화에서 흠잡을 곳 없는 연기을 선보인 배우 강하늘(동주 역)과 박정민(몽규 역)에게도 <동주>는 단언컨대 '인생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흑백화면처럼 어두웠던 시대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두 청춘의 이야기. 여운이 길다. 보고 나면 서점에 가 윤동주 시집 하나를 집게 만드는 힘이 이 영화 안에 있다. 

드라마. 110분. 한국.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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