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김현우 기자] 게임 중독이 질병으로 인정됐다.

지난 25일(현지시간)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안이 2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B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기 때문이다.

B위원회에서 통과된 새 기준은 28일 폐막하는 총회 전체 회의 보고를 거치는 절차만 남아, 사실상 개정 논의는 마무리됐다. 개정된 ICD-11은 오는 2022년부터 194개 WHO 회원국에서 적용된다.

제72회 세계보건기구 총회(출처=세계보건기구)
제72회 세계보건기구 총회(출처=세계보건기구)

■ 게임 산업 무너질까 우려

게임 중독의 질병 지정 소식에 국내 게임업계는 오는 29일 88개 단체가 참여하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한다.

이에 앞서 공동대책위 발족을 위한 준비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질병코드 지정에 대한 강력한 유감을 표시했다.

준비위는 “질병코드 지정은 UN 아동권리협약 31조에 명시된 문화적, 예술적 생활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라며 “미국 정신의학회의 공식 입장과 같이 ‘아직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의 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지정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 생각되며 이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 강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게임 산업이 국내 콘텐츠 산업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연간 13조 원에 달한다. 또 게임 산업은 국내 콘텐츠 산업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WHO 개정안이 통과되면 게임 산업에 대한 세계적 규제가 강화되면서 2023년부터 3년간 한국 게임 산업이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은 최대 1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은 국내 ‘문화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게임 중독의) 질병코드 등재는 국내 게임 산업의 경쟁력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국가 경제에 큰 손실을 입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심한 경우, 수많은 게임 회사가 문을 닫아 실업자가 쏟아지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게임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사실

게임 업계에선 산업 붕괴를 우려하고 있지만 이를 두고 산업‧경제적으로만 해당 문제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게임 중독을 원인으로 하는 사회적 문제가 이미 수차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3월, 생후 3개월 딸을 굶겨 숨지게 한 부부가 도주 5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김 모씨와 부인이 친딸을 죽인 이유는 다름 아닌 온라인 게임.

이들 부부는 롤플레잉게임에 빠져 게임 캐릭터에게 옷과 장신구를 사주고 육아일기까지 써줬지만 정작 친딸은 굶어가고 있던 것이었다. 숨진 채 발견된 친딸의 사인은 ‘장기간 영양결핍으로 인한 기아사’였다.

또 2016년, ‘원영이 사건’으로 알려진 평택 아동 살해 암매장 사건의 주범인 김 모 씨(신원영의 계모)는 피해자가 굶주리는 중에도 모바일 게임에 4000만 원을 쏟아 부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2017년 4월에는 생후 열두 달 된 친아들을 때려 숨지게 윤 모 씨가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원인은 게임 중독으로 당시 경찰에 따르면 친부인 윤 모 씨는 아이들 보육비 지원금까지 게임에 탕진해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아이의 장례는 경찰이 대신 치러준 것으로 알려졌다. 친부인 윤 모 씨가 게임 아이템 구입 등에 재산을 모조리 써버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게임 캐릭터를 키우는 데 몰두한 나머지 갓난아기를 방치해 굶겨 죽이거나, 때려 죽인 경우부터, 게임 구매에는 수천만원을 쓰면서 정작 자녀에겐 추운 겨울 옷 한 벌 입혀주지 않은 원영이 계모에 이르기까지 아동 학대의 이면에는 게임 중독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출처=Pixabay
출처=Pixabay

■ 중독 및 사행성 조장하는 게임

일각에선 국내 게임사가 중독성이 높은 MMORPG(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를 주로 출시하기 때문에 이 같은 사회적 이슈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MMORPG는 다수의 이용자가 온라인으로 접속해 각자 캐릭터를 키우며 역할을 수행하는 게임 장르로, 게임 속 캐릭터는 이용자의 분신과 같다. 게임 속 캐릭터의 능력치와 아이템이 좋을수록 인정받는 모습은 사회적 지위를 방불케 한다.

특히, 이 능력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매일 게임에 접속해 시간을 써야 한다. 이를 ‘몰입도’라고 표현하는데, 게임업체 대부분은 이 몰입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또 MMORPG는 사행성이 강한 게임이다. 캐릭터에게 더 좋은 장비를 입히거나, 아이템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확률형 아이템’을 결제해,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수차례 뽑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황 모씨(27)는 “넥슨에서 서비스하는 트라하라는 게임을 했는데, 서비스 초기에는 랭킹에도 들고 할 만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면서 따라가기가 어려웠다”며 “가입한 길드에서 순위 유지 등을 위해서는 과금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 결국 게임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트라하를 삭제하고 다른 게임을 하려했는데, 역시 과금을 하지 않으면 다른 유저들과 어울리기 어렵더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경기도 성남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김 모씨(42)는 “평소 NC소프트 리니지M의 공성전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시청하는데, 영상에 나온 아이템값이 수억 원에 달하더라”라며 “같은 게임을 하는 유저지만, 게임 내 모든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과금을 해야 할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리니지M의 유저인 서울 잠실에 거주하는 고 모씨(31)는 “리니지M에 1000만 원정도 투자했는데, 아직 초보자 소릴 듣고 있다”며 “집행자의 검(게임 내 최상위 아이템)을 두고 집 한 채의 검이라고 표현할 정도인데, 무과금으로 온전히 즐기기엔 어려운 게임인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국내 게임 업계의 MMORPG 장르 쏠림 현상은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상위 게임 다섯 건 중 네 건이 MMORPG 장르라는 데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게임 업체가 돈벌이가 잘되는 특정 장르에만 쏠리고 ‘게임 몰입도’라는 명분으로 중독성을 일부 조장해온 측면도 없지 않다”고 했다.

또 한국을 방문한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대표는 지난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랜덤박스(확률형아이템)로 예측가능성을 떨어트리는 것은 좋지 않다”며 “(게임사들은) 게임중독이 나타나지 않도록 게임 모델을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게임 중독을 일으키는 원인이 수익 창출을 위해 한 가지 장르를 주로 선보이는 게임사에도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컨슈머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