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직원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관련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공개되지 못했던 판결문이 공개됐다.

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KDDX 사업 관련 군사기밀을 탈취하고 내부망에 공유해 군사기밀 탐지·수집 및 누설로 인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11월말 유죄를 최종 확정받았다.

그간 판결문은 HD현대중공업 직원의 '제3자 열람금지' 신청으로 공개되지 못했다.

최근 시사저널이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1·2심 판결문을 모두 입수해 보도했다.

출처=HD현대중공업
출처=HD현대중공업

보도에 따르면 판결문에는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어떤 식으로 군사기밀을 빼냈는지 자세히 기록돼 있다.

직원들은 2012년 10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3년여 동안 군사Ⅲ급 비밀을 8회 이상 빼냈다.

이들이 빼낸 군사 기밀들에는 우리 해군에 향후 도입될 구축함, 잠수함, 수상함, 수중함, 장보고-Ⅲ Batch-Ⅱ 등의 성능을 비롯한 제원, 운용 및 개발 관련 정보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계룡 해군본부 전력분석시험평가단 함정기술처장실·설계실, 서울 방사청 장보고-Ⅲ 사무실, 부산 국방기술품질원 등에서 군사기밀을 빼냈다.

특히 2015년 11월 19일에는 한 직원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해군 선배 장교인 A중령(당시 해군본부 근무)에게 연락해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건물 1층 매점 옆 흡연실에서 군사Ⅲ급 비밀인 '장보고-Ⅲ Batch-Ⅱ 사업추진 기본전략(안)'을 건네받기도 했다.

또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각종 군사기밀을 수집한 후 이를 내부에 설치된 자체 서버를 통해 공유했다.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는 내부 서버를 활용하다가 2013년 11월부터는 폴더별로 접근권한을 제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CC 솔루션'을 도입하는가 하면 군사기밀 등 비밀성 자료는 별도로 보관해 네트워크를 단절하는 방법으로 중앙보안감사를 피해 왔다.

재판부는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빼낸 군사기밀에 대해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방위사업청은 그간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입찰참가자격 제한, 과징금 부과 등 '부정당 제재'를 검토해 왔지만 판결문 열람 금지로 제재가 지연돼 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은 1심 판결이 2022년 11월에 나왔지만 "판결문 확보가 어려워 구체적인 제재 심의를 하기 어려운 상황"고 밝혔다.

방사청은 최근 판결문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사업법 시행규칙」 입찰참가자격 제한의 세부기준에는 장기간 지속적으로 Ⅱ급 또는 Ⅲ급으로 지정된 비밀의 제공을 요구하거나 받은 사실이 있는 경우 5년간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방사청은 군사기밀 탈취에 HD현대중공업 윗선의 '조직적 지시'가 있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판결문에도 HD현대중공업이 군사기밀을 조직적·체계적으로 비밀리에 관리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방사청은 올해 KDDX 사업과 관련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단계를 추진한다.

2030년까지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국산화하는 KDDX 사업은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지난 2020년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수주했다.

통상적으로 기본설계를 따낸 기업이 자연스럽게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까지 맡지만, 오는 2월 방사청의 계약심의위원회에서 제재가 결정되면, HD현대중공업은 사실상 수주가 힘들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방사청은 기동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보안 관련 법위반 행위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엄중한 사항이니만큼 앞으로도 현재와 같이 강화된 보안 감점을 지속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컨슈머치 = 이용석 기자]

저작권자 © 컨슈머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