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결합 심사를 남겨놓고 있다.

지난달 31일 유럽연합(EU)이 두 기업의 결합을 최종 승인하면서 튀르키예, 영국, 일본, 베트남, 중국, 싱가포르 등 경쟁국들의 승인이 완료된 가운데, 지난해 12월에 심사를 시작한 공정위의 승인이 나지 않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수합병 시간끌기?

지난해 12월 19일 한화가 공정위에 기업결합 신고를 한 직후부터 HD현대는 네 차례 이의제기 했다. 2022년 12월 29일, 2023년 2월 6일, 3월 10일, 3월 24일 등이다.

HD현대는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할 경우 그룹 내 방산 계열사들이 자신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기술 정보도 차별적으로 제공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우조선 매각 당사자인 산업은행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정부가 최종 수요자로 기술, 가격 등이 강력히 관리되는 방산시장의 구조적 특성상 경쟁사가 제시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HD현대가 소속 직원들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관련 재판 판결문도 공개하고 있지 않아 논란은 가중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2020년 8월 총 7조 원 규모에 달하는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의 첫 단계인 기본설계를 수주했다.

문제는 이에 앞서 HD현대 특수선사업부 소속 9명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전원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 해당 직원들이 2020년 2월 검찰에 송치된 후, HD현대는 8월 KDDX 사업 기본설계를 수주했다.

0.056점 차이로 떨어진 대우조선은 방위사업청에 이의를 제기하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 대우조선이 작성한 설계도를 훔쳐 HD현대가 사업을 따냈다는 것.

법원은 HD현대가 불법적으로 취득한 자료를 KDDX 기본설계 입찰에 활용했는지 여부가 확실치 않다며 기각했다.

방사청은 HD현대 직원들에 대한 1심 유죄 판결과 관련해 “후속조치를 검토하기 위해 해당 판결문을 울산지법에 요청했지만 판결 당사자의 공개제한 신청에 따라 판결문 제공이 불가하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판결문을 볼 수 없어 입찰참가제한 등의 제재를 검토할 수 없다는 것. 방사청은 “향후 판결문을 확보해 KDDX 사업과 HD현대의 연관성이 확인될 경우 법과 규정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잇따른 대형 수주 앞두고, 조선사 고지戰

대우조선은 2010년대까지만 해도 다양한 대형 구축함을 건조하는 등 수상함 시장의 강자였지만 그간 매각 실패와, 경영 악화로 방산 분야의 경쟁력이 약화돼 왔다.

이에 한화는 당초 대우조선에 대한 인수를 추진하면서 특수선(방산)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계획했다.

올해 1분기 내 인수 절차를 완료하고 곧바로 대형 크레인 도입과 도크 보수, 각종 의장작업을 위한 샵 증축 등 특수선 건조시설 현대화 할 예정이었다.

특히 올해와 내년은 대형 함정사업 발주가 몰려 있어 대우조선에 대한 투자와 사업 본격화를 위한 적기다.

당장 5월에 발주되는 8000억 원 규모의 충남급 호위함 5·6번함 사업과 하반기 1조 원 규모 차세대 잠수함(KSS-III Batch-II) 3번함 건조 사업,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도 기다리고 있다.

이에 HD현대의 잇따른 문제제기와, 지연되는 기업 승인 심사는 굵직한 함정 발주를 앞두고 펼쳐지는 조선사간 수주 경쟁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HD현대 입장에서는 대우조선이 한화에 인수돼 정상화 궤도에 오르게 되면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며, 인수가 늦어질수록 입찰에서 유리한 만큼 가능한 한 인수를 늦추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방산 전문가인 한 해군 예비역은 ‘함정 독과점’ 문제에 대해 “함정사업은 해군과 방위사업청 통합사업관리팀(IPT)에 의해 배 건조 따로, 전투체계, 소나체계, 무기체계 등을 따로 분리해 발주하기 때문에 타 산업 대비 경쟁 제한 문제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각 분야별 경쟁 업체들이 존재하고 이를 원가검증을 거쳐 정부 통제 하에 도입하기 때문에 그룹 내 계열사끼리 기술 정보 공유나 가격 할인 등의 특혜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함정 자체나 함정 탑재 장비에 대한 원천 기술은 국가 소유고, 입찰을 위해 필요한 자료는 입찰공고나 설명회 등을 통해 모든 입찰 참여자에게 제공된다”면서 “부품 업체가 특정 조선소에만 기술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은 관련법상 방산기밀정보 유출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컨슈머치 = 이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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