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보유기간 유명무실…내용물 보상 규정도 따로 없어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최근 가전제품업체들이 부품보유기간 만료 전에 부품을 조기에 단종시켜 소비자들이 제품 수리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 2013년 접수된 김치냉장고 관련 소비자피해 392건을 분석한 결과 김치 및 내용물 변질이 172건(44%)이었으며, 수리불가로 인해 감가상각 보상 불만 관련이 80건(20.4%), 나머지는 A/S 불만 및 기타 등으로 조사됐다.

김치냉장고 관련 피해는 김장철 이후인 12월부터 2월 사이 집중되는 경향이 커 1년 피해상담건수의 3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치냉장고 수리 후 결함 재발…김장김치 전부 버려

동부대우전자 클라쎄 김치냉장고를 사용해 오던 소비자 김 모씨는 제품 고장으로 김치가 얼어버려 지난해 11월 21일 유상수리를 받았다. 이후 완벽하게 수리됐다고 믿은 김 씨는 김치를 담가 이 제품에 보관했다.

   
 

그러나 동일 결함이 다시 일어나 같은 달 28일 2차 수리를 받았다. 얼어버린 김치는 전부 버릴 수밖에 없었다. 2차 수리 후 김 씨는 또 한 번 김장을 담갔지만, 이번에도 같은 고장이 되풀이 됐다.

김 씨는 “유상수리를 했으니 이젠 괜찮을 것이라 믿고 김장을 해서 넣어뒀는데 수리가 제대로 안 된 탓에 고생해 담근 두 번의 김치가 전부 음식물쓰레기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후 업체 측은 ‘패널’ 부품을 구할 수 없다며 김 씨에게 수리 불가를 통보했다. 김 씨는 부품보유기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동부대우전자 측은 일정 보상금으로 책임을 대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정위 고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냉장고의 경우 품질보증기간은 1년, 내용연수는 7년, 부품보유기간은 8년으로 정해져 있다. 부품보유기간은 제품 마지막 생산일, 즉 단종일로부터 기산하게 된다.

김 씨가 6년간 사용한 제품은 아직 부품보유기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체 측이 부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경우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는 정액 감가상각 잔여금액에 구입가의 5%를 가산해 환급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

동부대우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실구입가 139만 원을 기준으로 감가상각금액을 계산한 16만6800원에 부품을 보유하지 않은 점에 대해 회사 자체적으로 일종의 페널티를 물어 10%의 추가 보상금을 더해 총 22만 원의 보상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부품보유기간 유명무실?…업체 측 “보상금 주겠다”

부품보유기간 준수와 감가상각잔액 보상이라는 두 가지 조항 중 동부대우전자는 보상금을 지불하는 쪽을 택했다.

   
▲ 부품보유기간 이내에 수리용 부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발생한 피해에 대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

유지비용을 감수하며 부품보유기간을 지키는 것보다 일정 보상금을 지불하는 것이 업체 입장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필수 가전제품의 경우 보상금을 받은 소비자가 비슷한 라인의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커 새로운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동부대우전자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부품을 보유해야 하는 기간은 7년이 맞다”며 “각 제조사들이 모든 부품을 보유하다 보면 창고 및 물류 비용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요 예상치를 두고 부품보유기간을 조정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례처럼 ‘패널’ 부품이 단종 되는 일은 정말 특이한 경우”라며 “다른 작은 부품은 보유를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보유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체로부터 23만 원의 보상금을 받더라도 150만 원 상당의 가전제품을 재구입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장 난 부분만 수리해서 쓰고 싶어도 업체 측이 부품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면 값비싼 가전제품이 통째로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업체의 자발적인 노력 이외에도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상황으로 부품보유기간을 지키도록 명문화 하거나 보상액을 높여 부품 확보 노력을 촉구하도록 하는 등 행정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내용물 보상 규정 따로 없어?…소비자만 답답

김치냉장고 속 내용물에 대한 보상도 문제다. 김치냉장고의 특성상 제품 자체 결함으로 인해 2차적인 소비자 피해손실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에 대한 보상 기준은 상세하게 마련돼 있지 않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상 내용물에 대한 규정이 없어 보상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동부대우전자 측은 김 씨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여러 단체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적극적인 대응을 벌인 후에야 뒤늦게 김치값 21만 원을 보상하겠다고 제안했다.

동부대우전자 측은 “소비자 관련법령에 음식물에 대해서 보상을 해주는 기준은 없지만 도의적 책임을 물어 김치값에 대해 일정 부분 보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씨는 피해를 본 김치 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라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내용물 보상 관련 기준이 별도로 없다”며 “제품 고장 같은 경우에는 통상적인 손해에 해당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김치 등 내용물은 법률적으로 특별손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명확한 규정이 없고 민법상의 판단이 들어가는 내용이기 때문에 민원 처리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보상금에 대한 정확한 수치 산출이 어려워 업체에 대략적인 금액의 피해보상을 하라는 권고 정도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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