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이용석 기자] 기자는 지난해 가을 쌍용자동차 관계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출시를 앞둔 새 모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관계자는 당시까지 프로젝트명인 X100으로 불렸던 그 차를 소개하면서 보여준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웬만한 애사심을 뛰어넘는 신뢰가 가득찬 눈빛으로 새로 출시할 X100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쌍용차는 그간 노조문제로 갈등이 있어왔으며, 저조한 실적 개선을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전사적인 노력을 해왔다. 그만큼 신차 출시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차가 바로 올해 1월 출시한 ‘티볼리’다.

'티볼리'는 탄탄한 기본사양 대비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불리는 국내 소형SUV시장에서 입지를 잡아가고 있다. 출시 반년이 지난 지금도 ‘티볼리’는 긍정적인 시장 평가를 받고 있으며 더불어 쌍용차 실적도 개선되고 있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는 ‘티볼리’를 보고 있노라면 팬택이 눈에 밟힌다.

팬택처럼 위기를 걸었던 쌍용자동차는 2005년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인수된다.

하지만 상하이자동차는 인수 뒤 투자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고 쌍용차는 신차 개발 중단, 적자 전환 상황을 직면한다. 결국 2010년 쌍용자동차는 인도 마힌드라에 다시 인수되면서, 애초에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의 기술만 취한 뒤 버리는 이른바 ‘기술 먹튀’를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빚었다.

이후 외국자본의 ‘기술 먹튀’ 우려는 종종 화제에 오르고 있다.

팬택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았는데 원밸류에셋이 인수에 나섰을 때 휴대전화 제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자산운용사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의심을 피해갈 수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원밸류에셋은 부적합 판정을 받고 인수에 실패하게 된다.

결국 시간은 흘러 지난달 26일 팬택은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신청했다. 

막상 이렇게 청산 기로에 선 팬택을 보니 ‘기술 먹튀’라도 좋으니 인수가 됐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든 인수됐다면 쉽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팬택은 살아 움직일 것이며, 언젠가는 쌍용차의 ‘티볼리’ 만큼 엄청난 괴물을 들고 나타날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동안 ‘단언컨대’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던 풀메탈 바디, 후면 버튼 지문 인식, 팝업 펜 등 소비자들을 즐겁게 했던 베가시리즈를 우리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출시 되지도 않았지만 얼마전 개발단계에서 온라인에 공개된 ‘팝업 노트2’가 팬택의 마지막 모델이 됐다.

베가를 더이상 보지 못하는 소비자들 보다 더 큰 문제는 팬택 임직원을 포함해 협력업체 직원까지 팬택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던 5만 명은 졸지에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한 시상식에 참석한 공재광 평택시장은 평택의 자랑으로 쌍용차 ‘티볼리’ 이야기를 꺼냈다. 현재 시간 당 13대가 완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팬택 역시 인수가 됐다면 주인은 바뀔지언정 우리 손으로 계속해서 휴대전화를 만들 수 있고, 그것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지역의 자랑도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런 와중에 팬택 직원들은 참 사람들도 좋다.

청산 절차에 들어간 26일부터 그간 회사를 지켜온 1200여 명의 팬택 직원들은 십시일반 모금을 통해 기부금을 마련한다.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엔젤투자펀드 구성에 활용하기 위함이다.

벤처 1세대로 불리는 팬택은 청산을 앞둔 상황에서도 스타트업들의 최고 선배로서 멋진 모습으로 보여줬다. 웬만한 애사심으로 가능한 일일까.

소비자들이 제품을 원하고 회사를 사랑하는 직원들이 건재한데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만 하는 팬택을 보면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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