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수입맥주 할인규제 사실무근"…소비자 "여론 떠본 것 아니냐" 의구심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수입맥주 가격할인을 규제하는 일명 '맥통법' 도입 논란이 주류업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최근 국산맥주의 역차별 문제가 대두되자 정부가 수입맥주 할인 판매를 막기 위해 칼을 뽑아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맥주 소비자들이 거세 반발하며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기 시작하자 정부는 뒤늦게 사실이 아니라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책통법(도서정가제)으로 거듭된 가격할인 규제 정책에 이골이 난 소비자들의 불신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4캔 묶어 1만원 수입맥주… 기재부 “할인판매 규제없다”

   
 

지난 13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수입맥주의 기준가격을 제시하고 할인판매를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의견을 관련 업계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지난달 주형환 기재부 1차관 주재로 열린 ‘투자•수출 애로 해소 간담회’에서 국내 맥주업계 측이 수입맥주의 할인판매를 문제삼자, 주 차관이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고 알려지며 발단이 됐다.

이에 대해 임재현 기획재정부 재산소비세정책관은 19일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가 수입 맥주 회사들의 할인 판매에 제재를 가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다.

이어 임 정책관은 “현장 참석자들에게 확인해본 결과 지난달 27일 간담회에서 차관이 ‘수입맥주 할인을 규제 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국내 주류업계는 수입맥주가 기준가격을 부풀린 후 이를 기준으로 마치 상당한 할인을 해주는 것처럼 눈속임 판매를 하고 있다며 당국의 단속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는 이 역시 수입 가격 이하로 판매한 것이 아니라면 국세청 고시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임 정책관은 “수입맥주 회사들의 판매 행위는 국세청 고시 위반이 아니며, 정부가 세법으로 규제를 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단통법•책통법•맥통법…할인규제 공포에 소비자 ‘몸서리’

할인규제 제한 방안에 대해 전면 부인한 기재부 발표에도 소비자들의 불편한 심기는 여전하다. 소비자 반발이 생각보다 거세 잠시 꼬리를 내린 것뿐 언제든지 정부가 다시 ‘맥통법’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

중랑구에 사는 직장인 안 씨(38.남)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가 터졌을 리 없다”며 “생각보다 훨씬 더 여론의 반응이 부정적이라 잠시 꼬리를 내린 것뿐 언제든지 다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지난해 단통법•도서정가제 등에 질린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계속되는 할인규제 정책 이슈에 불안감과 함께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휴대전화, 책에 이어 이제는 수입맥주까지 소비자들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을 가만두지 않는 것 같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남양주 직장인 김 씨(29.남)는 “수입맥주 할인이 역차별이면 국산맥주 할인제한 규정을 바꾸면 되는 일인데 굳이 수입맥주 가격할인을 막는 것은 시장논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정부가 오히려 불공정을 부추기고 있는 꼴이 된다”며 “이미 단통법, 도서정가제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잡음과 소비자 불만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또 다시 비슷한 제도를 만들어 소비자들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빠진 국산맥주…역차별 때문?

최근 몇 년간 국산 맥주시장이 침체기에 빠진 반면 수입 맥주시장은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수입맥주 강세는 판매가격을 내리는 형태의 프로모션 영향이 크다.

대형마트, 편의점 등 수입 맥주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소매점 증가 등의 영향으로 수입맥주가 급격히 대중화된데다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는 소비자들 인식과 기호 변화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유통업계 따르면 수입 맥주가 인기가 꾸준히 치솟으며 올해 대형마트 맥주 매출의 40% 안팎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는 자사 전체 맥주 매출에서 수입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12.1%에 불과했으나 2015년(1~8월) 42.9%로 최근 6년 새 3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맥주 매출 비중은 87.9%에서 59.8%로 감소했다.

이런 수입맥주 시장 성장세에 위기감을 느낀 국내 맥주회사들은 역차별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수입맥주 보다 국산맥주에 매겨지는 세금이 더 많아 가격 경쟁력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국산맥주는 출고가 기준으로, 수입맥주는 수입신고가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산 맥주에만 적용되는 할인 제한이 규정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수입맥주의 경우 정해진 출고가격 정보가 없어 출고가를 기준으로 하는 할인판매 규제를 피할 수 있지만 출고가격이 명시된 국산맥주는 국세청의 행정명령에 따라 출고가격 이하로 할인 판매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수입맥주의 할인판매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국내 맥주업체가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에 비해 맛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평가는 훨씬 예전부터 계속 제기돼 왔던 이야기다. 그럼에도 접근성 문제로 국산맥주 밖에 접할 수 없었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국내 수입맥주 취급점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로 몰리고 있는 것뿐”이라며 “업체들 자체적으로 품질 경쟁력을 키워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한편,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의원은 맥통법 논란에 대해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참으로 한심한 행정조치”라며 “국민들은 단지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에 비해 현저히 질이 떨어지고 맛이 없기 때문에 수입맥주를 찾는 것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최고위원은 이어 “이미 휴대폰 시장에 적용됐던 악법인 ‘단통법’에 비유해 이를 ‘맥통법’이라고 국민들이 비난하고 있다”며 “역차별이라고 생각한다면 국산맥주에 제한되는 주류할인제한을 바꾸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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