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등 떠밀려 사과한 업체들…철저한 수사·관련 대책 마련 필요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5년이면 1,825일, 이를 다시 시간으로 환산하면 4만3,800시간이다.

아무리 시간이 상대적이라고 해도 ‘5년’이면 목을 가누지 못하던 갓난 아기가 힘차게 운동장을 뛰고, 교복을 입던 학생이 정장을 입고 취업 할 나이가 될 만큼 긴 시간이다.

누군가는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시간. 대통령이 바뀌고, 전세계 축제인 월드컵과 올림픽도 성황리에 마친 5년간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1년 5월 우리나라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 환자들이 속출했다. 그들은 대부분 산모나 영·유아였다.

의료기관의 신고로 역학조사를 실시한 정부는 피해자들의 폐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살균제 판매 중단 및 수거 명령을 내렸다. 이어 2012년에 인체 독성이 최종 확인됐다.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수는 총 221명, 그 중 사망자는 94명이다. 추가 피해자 발생 가능성의 여지는 아직 무한대로 남아있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이가, 아내가,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이 하루 아침에 숨을 거뒀다. 건강하던 아이가 산소통을 달지 않고는 평생을 스스로 호흡할 수 없게 됐다.

전대미문의 대참사가 일어났지만 당시 처벌을 받거나 사건을 책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부가 뒷짐만 진 채 수수방관하는 사이 관련 업체들은 잘못을 은폐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상황이 반전된 건 검찰이 5년만에 재수사에 나서면서부터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눈물로 호소하며 사과와 보상을 요구할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던 업체들이 검찰의 소환조사가 이어지자 엉덩이에 불이 붙은 듯 부랴부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침묵을 먼저 깬 업체는 롯데마트다. 롯데마트가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문을 발표하자 이어 홈플러스도 사과와 보상안을 발표했다.

며칠 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도 기자회견을 열고 "일찍 소통하지 못해 피해자 여러분과 그 가족 분들께 실망과 고통을 안겨드리게 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사건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뒤늦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를 바라보는 피해자들, 그리고 수 많은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당연한 일이다.

그 동안 머리카락이라도 보일까 꼭꼭 숨어있던 업체들이 검찰의 칼날이 목 끝까지 들어오자 등 떠밀리 듯 억지로 마이크를 잡은 모습이다. 속셈이 빤히 보이는 사과에서 진정성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가해자가 사과를 하는데만 5년이 걸렸다. 피해자들이 그 사과를 받아주는 데는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 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가해업체들의 만행에 너무 큰 실망감과 분노를 느낀 피해자들이 영원히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데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업체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발표한 사과와 보상 대책이 면피용에 그치지 않고 끝까지 이행될 수 있도록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소비자들의 '눈'은 이번 사건이 티끌만큼의 의혹도 없이 완벽하게 종결되는 날까지 가해 업체를 향해 있을 것이며, 아직 뒤에 숨어 있는 관련 업체들을 절대 놓치지 않고 예의주시 하고 있을 것이다. 

한 맺힌 피해자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가해기업을 명명백백 밝혀내 온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며, 진정성 있는 사과와 향후 대책도 필요하다. 검찰은 성역없는 수사로 철저하게 책임을 규명하고, 정치권에서는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자그마치 5년이 걸렸다.

이제라도 잘못된 것을 제대로 바로 잡지 않으면 앞으로 국민 생존을 위협하는 또 다른 ‘5년, 50년, 500년간의 침묵’이 되풀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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