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주관적인 리뷰이며 일부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영화 <곡성>은 이 불변의 진리를 보기 좋게 깨트린 기대작이다.
전작 <추격자>, <황해>를 통해 한국 스릴러의 거장으로 평가 받는 나홍진 감독이 무려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나오는 배우들도 굵직하고 영화가 ‘잘 빠졌다’는 평가까지 무성하다. 당연히 기대가 컸고, 다행히 만족은 더 컸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영화 <곡성> 오프닝 中 누가복음 24장 37절-39절)
영화 <곡성>은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갑자기 벌어진 기괴한 사건과 그에 대한 기이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흘러간다.
정체불명의 연쇄 사건, 정부는 야생버섯 중독에 의한 참극으로 결론 내리지만 경찰 종구(‘곽도원’ 분)는 마을에 퍼진 소문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온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 분)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포스터 메인 문구이자 극을 관통하는 주제 그 자체다.
영화는 현혹되지 말라고 경고해 놓고 현혹될 수밖에 없도록 끊임없이 미끼를 던진다. 영화 내내 관객은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이 때 관객을 낚는 나홍진 감독의 낚시는 수준급이다. 덫인 것을 알면서도 미끼가 너무 매력적이라 기꺼이 물 수밖에 없다.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예측불허의 스토리 곳곳에 마치 “이래도 안 낚일래? 이래도?”라고 말하듯 약 오를 정도로 덫을 깔아놨다. 곱씹어 보면 힌트는 많았다.
대담할 정도다. 아니, 어찌 보면 치졸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 갈 때 ‘결국 내 스스로 현혹된 것인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명쾌함’과 그럼에도 납득 가지 않는 ‘모호함’이 공존한다.

영화 <곡성>은 초현실적 이야기를 극사실적으로 풀어냈다.
스릴러를 기반으로 오컬트와 토속신앙, 기독교적 색채까지 어지럽게 혼재돼 있다. 흥미진진하지만 난해하고, 재미있는 동시에 불편하다.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던 몇몇 관객들의 마음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영화가 끝난 후 다시 영화가 시작된다. 감독이 던져 놓은 미끼 하나에 수십 가지 해석과 의견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갖가지 해석에 대해 누군가는 감탄하고 누군가는 꿈보다 해몽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분명한 건 <곡성>이 여지껏 볼 수 없었던 유형의 영화라는 것과 그 속에 수 많은 이야깃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호불호를 떠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배우들의 열연도 빛났다.
귀신 들린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종구 역을 통해 배우 인생 첫 주연작을 맡게 된 곽도원은 이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캐릭터와 상반되는 연기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곽도원이 표현할 수 있는 부성애의 끝을 본 느낌이다.

특히 절벽 끝에서 힘이 풀린 채 비틀거리는 곽도원의 연기는 인상 깊다. 해당 장면을 촬영할 때 실제로 안전 장비 하나 없이 높은 벼랑에서 촬영된 거라고 하니 나홍진 감독은 좋은 배우에게서 최상의 장면을 정말 악질적으로 잘 뽑아내는 연출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배우 혹사(?)시키기로 악명 높은 나홍진 감독의 이번 최대 희생양은 따로 있다. 극중 외지인 역할을 맡은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이다.
적지 않은 연배에 산 속을 뛰고, 흙 위를 뒹굴고, 절벽에 매달리고, 발가벗은 채 폭포에 몸을 맡기는 등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극한 상황의 연속이다.
착각이겠지만 극중 눈물을 흘릴 때 현실 서러움마저 느껴진다. 그만큼 눈물나는 열연을 펼쳤다. 관객을 압도하는 표정, 눈빛, 목소리. 그가 나오는 씬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팽팽함 긴장감으로 넘쳐난다(시장에서 닭 사는 장면만 빼고).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무속인 일광 역을 맡은 황정민의 등장은 단비 같다. 조금 지루해질 수 있는 극의 상황을 단번에 환기시킨다.
바로 전작인 영화 <검사외전>을 보고 늘 똑같은 황정민 연기에 신물이 났다던 관객들도 다시 돌아오게 만들 만큼 신선했다.

나홍진 감독은 개봉 전 인터뷰에서 영화 <곡성>은 코미디로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참 짓궂은 농담이라고 치부했으나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일면 수긍하게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그만큼 정말 이상한 영화다.
156분의 긴 러닝타임. 팝콘과 콜라는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