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송수연 기자] 믿음에 대한 사자성어 중에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으로 이 말은 소비자와 기업 사이에서도 유효하다.

소비자는 품질과 서비스에 대한 믿음을 준 기업에 신뢰를 보낸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항상 진정성 있는 모습을 다한다.

'손님은 왕'이라지만 많은 경우 소비자들은 약자가 된다. 소비자들은 신뢰를 저버린 기업에 소송이나 불매운동 등으로 맞서지만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불거진 '노쇼(No Show)' 문제는 소비자들의 무책임한 행동에서 비롯됐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예약 부도'. 즉 예약을 한 뒤 나타나지 않는 소비자들의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항공, 외식뿐만 아니라 미용, 여행, 공연, 의료에 이르기까지 노쇼 피해를 받고 있는 직종은 굉장히 많다.

가장 흔한 예로 음식점에서 노쇼가 발생하면, 음식점 입장에서는 당일 해당 테이블에는 손님을 받지 못하게 된다. 더불어 예약 손님 수에 맞춰 준비한 음식들은 모두 손실이 된다.

항공업의 경우 전 좌석을 채우고 운항해야 최고의 효율을 올릴 수 있지만 노쇼 승객이 발생하면 좌석을 비워둔 채로 운항할 수밖에 없다. 해당 항공편이 반드시 필요했던 제 2의 승객들은 노쇼 승객들로 인해 보이지 않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노쇼 문제가 심각해지자 최근 유명 셰프들이 직접 노쇼 근절 캠페인을 벌이는가 하면, 항공사들도 예약 부도 위약금을 정해 무분별한 노쇼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큰 문제는 아직까지 소비자들은 노쇼에 대해 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당장 손해될 것이 없기 때문에 업체들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긴다.

최근 항공업계에서는 ‘노쇼 신공’, '카약 신공', '히든 시티 티케팅' 등으로 불리며 저렴하게 항공권을 구매하기 위해 수단으로 '노쇼'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소비자까지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국내 항공권 예약자의 2%가 예고없이 나타나지 않고 노쇼 고객 때문에 하루 평균 500명 정도가 원하는 항공권을 구매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노쇼와 비슷한 사례를 여행업계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인 외식·항공업의 노쇼와 다르게 여행업계의 문제는 일단 소비자들이 여행 상품에 대한 비용은 다 지불한다. 다만 정해진 여행 일정에 참석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패키지 여행 상품이 문제인데, 여행사들은 패키지 상품 내에 쇼핑, 레저활동 등 부가 활동을 포함시키는 대가로 현지 업체로부터 일정 경비를 지원받는다. 이 경비는 고스란히 상품 가격에 반영돼 저렴한 상품이 출시된다.

이 패키지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현지 일정을 소화해야 여행사는 현지업체와의 계약을 지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발생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참가 여부는 약관 등에 정해진 것이 아니여서 일부 소비자들이 저렴한 패키지 상품을 구매해 항공, 숙박 서비스만 이용한 뒤 현지 일정은 임의로 불참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엄연히 패키지 상품에 대한 금액은 이미 지불한 것이기 때문에 현지 일정 소화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지만, 여행사 입장에서는 감당할 손해가 벅차다는 입장이다.

만약 이 상황이 지속될 경우 저가 패키지 상품은 앞으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이에 여행업계는 패키지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현지 일정에 참가하도록 하는 약관 개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편법은 최근 스마트한 여행팁으로 온라인 상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더 문제다.

약관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소비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권리가 업체들이 시간, 인력 등 불필요한 낭비를 조장하고, 다른 소비자들의 구매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기업이든, 소비자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오랜시간 쌓아올려야 하는 신뢰를 갉아 먹는 행위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지금 당장은 몇 푼을 아낄 수 있지만 업체들의 손해는 결국 항공권 및 여행상품 가격 상승, 계약 약관 강화 등으로 이어져 결국 소비자 전체의 손해가 된다.

내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관행은 근절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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