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고준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 아직 달력 한 장 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행보 하나하나는 상당히 파격적이어서 항상 이목을 집중시킨다.

문 대통령의 당선 후 첫 일정은 인천국제공항공사 방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이 공약 이행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실제로 이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방법론과 시기 등이 제기돼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한마디에 우리나라 기업들의 반응이 사뭇 눈길을 끈다.

먼저 은행권들이 앞장 섰다.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은행권에 이어 통신업체들도 파격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선언하고 나섰다. 뒤를 이어 유통업계도 동참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정규직화'를 발표하고 있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며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이렇게 쉬웠나?”

비정규직 제도는 20여년을 지나오면서 당초의 목적을 넘어서 청년들의 꿈과 패기를 담보로 기업의 효율을 달성하는 쪽으로 변질됐고, 그로 인해 사회는 계층화되고 우리 사회는 활기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우리 경제 상황을 핑계로 비정규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쉽게 '사드 충격' 등 오히려 악화됐다면 악화됐다고 할 수 있는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너도나도 달려나와 정규직화를 외치는 작태에 심히 불쾌한 마음이 든다.

정규직 전환을 결심한 기업들에게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정규직 전환을 어떻게 이렇게 절묘한 시기에 결심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듣고 싶다.

특히 금융권을 보자면, 지난 정권에서 노조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과연봉제’ 뚝심있게 밀어붙이더니, '성과연봉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오히려 언제 그랬냐는 듯 정규직화 바람에 가장 선봉에 서 있다.

차라리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처럼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성과연봉제는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 훨씬 보기 좋다.

또 "갑작스런 정규직화, 문제 없을까?"

그동안 비정규직 제도는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병폐를 만들어 왔다.

지난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더라도 대다수의 후보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작게는 축소, 크게는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만큼 이 제도는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인식하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반대하는 여론이 존재하고, 앞서 언급했듯이 정규직화에 대한 방향, 속도, 순서 등 논의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그저 ‘정규직 전환’이라는 손수건만 흔들어 대면서 대통령 눈에 띄기를 바라는 상황은 옳지 않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정규직 전환은 일반적으로 비용이 증가하는 사안이다. 때문에 기업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입장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소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인사에서도 볼 수 있듯,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에 대한 관심도 기울일 준비가 돼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 

대통령이 시키는대로 하는 무조건적인 복종보다는 적극적인 의견 개진으로 사회적 합의를 얻어내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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