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대기업 총수와 자제들의 갑질과 폭행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면서 우리 사회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엔 대기업 한화그룹이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동선 씨가 술집에서 만취한 상태로 자신의 변호사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인데, 한화가(家)에 얽힌 폭력사건이 이미 수차례 되풀이 돼 온 만큼 한동안 ‘한화=폭력’ 이미지를 완벽히 탈피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영화가 현실…주폭 재벌3세

대기업 한화그룹 오너가 3세인 김동선 씨가 대형 로펌의 신입 변호사들을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재계 및 업계 따르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동선 씨는 지난 9월 한화그룹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대형 로펌 김앤장 소속 신입 변호사 10여명의 친목모임에 함께 동석했다.

 

이 자리에서 만취한 김 씨는 자신을 부축하는 남자 변호사의 뺨을 때리고, 여자 변호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김 씨는 또한 이날 변호사들에게 "너희 아버지 뭐 하시냐", "날 주주님이라 불러라", "지금부터 허리 똑바로 펴고 있어라" 등의 인신공격성 폭언을 퍼붓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변호사에게 "존댓말을 써라"라고 갑질도 일삼았다.

김 씨는 사건 다음날 술에서 깬 뒤에야 전화로 사과했고 피해자들은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당시에 무마됐다가 뒤늦게 사건의 전모가 폭로됐다.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사건이 일어난 술집 내부에서 폐쇄회로(CCTV)를 확보하고 서울청 사이버안전수사국에 의뢰해 영상 복원 작업을 하고 있으며,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21일 김 씨를 변호사 폭행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성명 발표를 통해 재벌 3세의 변호사 폭행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는 “슈퍼갑 의뢰인인 재벌그룹 3세의 변호사 폭행은 전형적인 ‘갑질’이자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며 “이러한 변호사에 대한 폭언 및 폭행 행위는 결국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변호사의 공적 기능을 위축시키고 나아가 법치주의마저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분노했다.

또한 전 국가대표 승마선수였던 김동선 씨가 체육인의 품위를 크게 훼손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대한체육회도 진상조사에 착수하는 등 사건의 여파가 각계각층으로 번지고 있다.

▶진정성 없는 사과... 싸늘하기만 여론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김 씨는 한화그룹을 통해 지난 21일 “피해자분들께 엎드려 사죄드리고 용서를 빈다”고 공식 사과했다.

 

김 씨는 "지난 9월 아는 변호사가 포함된 지인들의 친목모임에 참석했다"며 "상당량의 술을 주고받으면서 취기가 심해 당시 그 곳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거의 기억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다음날 동석했던 지인에게 ‘혹시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하지는 않았는지’ 염려스러워 물었고, ‘결례되는 일이 좀 있었다’고 해 그분들에게 우선 죄송하다는 사과의 문자를 보냈다. 곧 그들로부터 ‘놀라기는 했지만 괜찮다’는 등의 답신을 받고 그 후 내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오늘 보도된 당시의 상황은 저도 깜짝 놀랄만큼 도가 지나친 언행이 있었음을 알게 됐고, 지금은 제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다“며 ”진작에 엎드려 사죄드렸어야 할 일을 까마득히 모르고 지냈으니 제가 이제 와서 이 일을 어떻게 해야되는지 당황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결국 모두 술에 취해 벌어진 일이고, 최근까지도 당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본인조차 파악하지 못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 김 씨가 쓴 사과문의 요지라고 볼 수 있다.

김 씨는 앞으로 술과 관련 적극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아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과 피해자들이 기회를 준다면 일일이 직접 만나 사과를 전하고 싶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폭행 소식을 뒤늦게 접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아버지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무엇보다도 피해자 분들께 사과드린다"며 "자식 키우는 것이 마음대로 안되는 것 같다"고 그룹을 통해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父子)의 사과에도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온라인 한 커뮤니티에는 "한화가 또?",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다. 집안 내력인가”, “가정교육의 부재다”, “정신질환으로 콘셉트를 잡은 것이냐?”, “정신과 의사들도 상담해주다 폭행 당할까봐 겁나서 할 수 있을까”, “내부자들과 베테랑이 픽션오락영화에서 점점 논픽션다큐영화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화생명 암보험 해약하겠다” 등의 신랄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화는 불꽃? 한화는 폭력!” 이미지 회복 언제쯤

올해 권성문 KTB증권 회장의 직원 폭행 사건부터 수많은 재벌들의 ‘갑질’ 논란이 도마에 오르내렸지만 유독 한화에 대한 불편한 여론이 커지고 있는 건 김 씨의 만취 폭행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지난 1월에도 서울 강남 한 주점에서 만취 상태로 종업원 2명을 폭행하고 소란을 피운 혐의로 구속됐다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에 처분을 받았다. 특히 김 씨는 이날 출동한 경찰이 연행하는 과정에서 순찰차 유리문과 카시트를 파손해 더욱 큰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2010년에도 서울 용산 한 호텔 주점에서 만취해 마이크를 던지며 기물을 파손하고 호텔 여종업원을 성추행했다. 이 과정에서 보안직원 2명도 폭행한 바 있다. 해당 사건은 당시 기소유예로 처분됐다.

 

김 씨뿐 아니라 한화 일가 내 아버지와 형제들이 유독 이와 같은 일탈 행동으로 구설수에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점도 여론을 악화시키는데 한몫했다.

김 씨의 둘째 형인 김동원 씨도 2014년에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기소돼 물의를 빚었으며, 2011년에는 교통사고를 낸 뒤 구호조치 없이 도주했다가 적발돼 벌금 700만 원을 물기도 했다.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 직접 폭행 사건에 가담했던 ‘보복 폭행’ 사건은 아직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재벌 연루 폭행사건이다.

당시 김승연 회장은 둘째 아들인 동원 씨와 다툰 술집 종업원 4명을 청계산으로 끌고가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해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아들의 복수를 위해 조폭을 고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한화’라는 이름에 ‘조폭’, ‘폭행’, ‘망나니’ 등의 부정적인 단어가 함께 떠오른다는 소비자 반응도 적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는 불꽃이다’라면서 백날 이미지 광고를 하면 뭐하느냐”며 “총수 일가가 사고를 치는 통에 훼손된 이미지를 수습하느라 직원들만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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