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김현우 기자] 지난 5월 8,100억 원의 국민 혈세를 투입해 가까스로 부도를 면한 한국지엠이 이번엔 연구개발(R&D) 법인 분리 문제로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는 지난 15일부터 16일까지 이틀간 ‘쟁의행위를 위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했고, 투표에 참여한 조합원 8,899명 중 8,007명이 찬성했다고 17일 밝혔다. 한국지엠 노조 총 조합원 1만234명 중 78.2%가 찬성한 셈이다. 반대한 조합원은 860명, 기권 1,355명, 무효 32명이다.

노조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 것은 사측의 법인분리를 막기 위해서다. 현재 한국지엠은 연구개발과 디자인 부문을 분리해 신설 법인을 설립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노조는 투표에 앞서 지난 12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도 했다. 이번 투표로 과반수 이상의 찬성표를 얻은 노조는 중노위가 조정중지 결정을 내리면 언제든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

노조는 찬반 투표 결과 다수의 조합원이 법인분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확인한 만큼 쟁의권을 확보하는 대로 총파업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법인분리 계획을 막는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GM, 시장 축소 이전 ‘법인 분리’ 절차 밟아왔었다

사실 노조가 사측의 법인분리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합원들의 고용불안 때문이다. 법인이 분리되면 글로벌 GM이 신설 연구개발 법인만 남기고 공장 등 생산시설은 점차적으로 폐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GM은 2017년 3월 사업 포트폴리오 도표를 공개한 바 있다. 글로벌 GM이 유럽 자회사인 오펠(Opel)을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PSA에 매각하겠다고 밝힌 무렵이다.

출처=GM
출처=General Motors

도표를 보면 글로벌 GM은 수익성(가로축)과 사업능력(세로축)으로 투자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두 가지 모두 높아 투자를 확대할 곳은 초록색으로, 부정적이라 점차적으로 투자를 축소할 곳은 빨간색으로, 두 가지 모두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곳은 검은색으로 표현했다.

지난해 3월 매각한 오펠의 색은 검은색. 결국 얻을 것이 없으니 PSA에 팔아넘긴 것이다. 문제는 빨간색으로 표현된 곳 중 ‘일부 GMI 시장’(Select GMI Markets)이 있다는 부분이다. GMI는 한국, 호주, 태국, 인도 시장 등이 포함된 'GM International'의 약자다.

도표에서 밝힌 것처럼 글로벌 GM은 GMI 부문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했는데 ▲호주의 경우 생산 공장을 폐쇄하고 디자인센터만 남겼으며 ▲인도는 2개 공장 중 1개 공장을 폐쇄, 노동자 500명을 정리해고한 뒤 상하이차(SAIC)에 매각했다. ▲한국은 군산공장을 폐쇄했고 ▲태국에선 승용차 부문을 없애고 트럭‧SUV 부문만 살렸다.

그런데 최근 도표가 일부 바뀌었다. 기존 빨간색(투자축소)이던 ‘일부 GMI 시장’(Select GMI Markets)이 검은색(철수)으로, 그리고 노란색으로 표현된 ‘남은 GMI’(Remaining GMI)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출처=General Motors
출처=General Motors

업계는 이 노란색 표현의 의미를 ‘일부 사업부문은 남기고 일부 사업부문은 철수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수익성이 있는 곳은 '투자 유지', 없는 곳은 '점차적으로 철수'하겠다는 것인데, 한국 시장에서 돈이 되는 '연구개발 법인'과 강성노조에 휘둘려 많은 인건비 지출이 발생하는 '생산·판매 법인'의 분리를 실시하는 것이다.

또 글로벌 GM이 분리한 연구개발 법인만 살리고 생산 법인을 철수하더라도 그럴만한 명분이 있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업계전문가들은 지난 4월 노조가 "사측이 약속한 성과급을 주지 않는다"며, 쇠파이프를 들고 사장실을 무단점거 한 ‘사장실 무단 점거 사건’ 이후 글로벌 GM의 한국지엠 철수 명분이 강화된 상태라고 말한다.

한국 사업을 정리‧축소할 때 해외투자자들한테 “강성 노조의 쇠파이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지엠, “시장철수? 법인 분리는 안정적인 발전을 위한 것”

반면 사측은 법인 분리가 회사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며, 오는 19일 주주총회를 열어 법인분리 안건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난 15일, 카허 카젬 한국지엠 대표는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법인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카허 카젬 사장은 “GM 코리아 테크니컬센터 주식회사(가칭) 설립은 우리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도약이며, GM의 글로벌 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확보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실행함으로써 한국지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최근 GM이 한국지엠에 배정한 글로벌 콤팩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프로그램은 한국지엠의 능력을 인정하는 자신감의 표시”라며 “이는 GM 코리아 테크니컬센터 주식회사 설립에 이어 한국지엠이 국내 생산과 수출, 내수 판매에 더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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