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지속 발생하고 있다.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자동차 급발진(Sudden Unintended Acceleration, SUA)은 자동차가 운전자의 제어를 벗어나 의지와 관계없이 가속되는 현상이다. 해당 결함이 발생하면 RPM이 급격히 상승하며 차량이 돌진한다. 급발진은 정지상태나 저속상태, 정속 주행상태에서 모두 일어날 수 있으며, 대개 제동장치의 작동 불능을 수반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현재 내연기관 자동차는 기계식으로 작동하던 부품의 전기·전자화로 전기 및 전자 장치 장착 비율이 약 40%에 달하고 그 장착 비율이 더욱 심화되면서 각종 전자부품의 오작동으로 인한 급발진 발생 빈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 급발진의 원인으로 자동차의 문제가 아니라 운전자의 부주의로 발생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에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급발진 관련 현황 자료를 조사했다.

자동차, 운전, 급발진, 가속(출처=pixabay)
자동차, 운전, 급발진, 가속(출처=pixabay)

■'급발진 의심' 사고 지속…경찰청, 통계도 無 

소비자주권이 소방청 산하 각 지역 소방본부에 정보공개를 요청해 회신한 자료를 분석해 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급발진 추정 혹은 의심되는 교통사고로 신고를 받아 출동한 건수는 791건이었다. 서울만도 132건에 달하고 있다.

경찰청의 경우 급발진 의심 사고 관련 통계조차 남기지 않는 실정이다.

소비자주권의 요청에 경찰청은 경찰청 판단의 급발진 의심에 대한 별도의 통계 기록이나, 피해자들의 급발진 의심 진술에 대한 통계가 없다고 회신했다.

2023년 3월 허영 국회의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13년간(2010년~2022년) 급발진 의심 사고는 766건이나 발생했으나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제조사별 누적 건수로 살펴보면 현대기아차가 452건(59%)으로 급발진 신고가 가장 많았다. 다음은 르노 102건, 한국GM 49건, 쌍용차 46건, BMW 32건, 벤츠 22건, 토요타 17건 등이 뒤를 이었다.

변속기 종류별로는 자동변속기 채택 차량이 669건(91%)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으며 무단변속기(CVT)도 일반적으로 자동변속기로 분류됨을 고려하면 비중은 더욱 커진다.

그 외에 변속기를 사용하지 않는 차량은 모두 전기차로 21건이 집계됐으며, 수동변속기 차량은 단 7건에 불과했다.

■美·EU, 제조사에 '입증 책임' 부과

미국은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급발진 관련 모든 자료를 폐기하거나 훼손할 수 없으며, 피해 관련 모든 자료를 요청할 수 있고, 제조사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거부할 수 없으며 설계도면부터 기술적 분석보고서 등 모든 자료를 제출하도록 했다.

제조사가 재판 과정에서 자동차의 결함이 없다는 것을 관련 자료를 폭넓게 제출하도록 해 사실상 제조사가 결함 여부를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 역시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손해배상의 타당성을 입증할 만한 사실과 증거를 공개하도록 법원이 명령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제조업자 등이 이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 인과관계를 추정’하도록 해 제조사가 급발진을 입증하도록 했다.

우리나라는 급발진 의심 사고 증명을 위한 핵심 소프트웨어인 전자제어장치(ECU)도 활용할 수 있지만, 이는 차량 제조사가 보안 사항이라며 재판부는 물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결국 급발진 의심 사고 피해자가 직접 사고 원인을 입증해야 하는데 불가능에 가깝다.

■대안 - 킬프로그램

일본의 경우 지난 2019년부터 차량에 급발진 등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가속을 막아주는 '킬 프로그램' 장착을 의무화했다.

소비자주권은 일종의 '킬 프로그램'을 적용해 자동차가 먹통이 돼 폭주할 경우 소프트웨어적으로 가속을 완전히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운용 중인 기계장치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사용하는 빨간색 비상 정지 스위치와 유사하게 운전석에도 비상 완전정지 스위치를 기계적으로 장착해 비상시 엔진을 정지시키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대안 - EDR 법적 규제 구체화

통상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면 차량에 탑재된 사고기록 장치인 일명 ‘EDR(Event Date Recorder) 분석 절차를 거친다.

EDR은 자동차의 중요한 정보, 즉 자동차의 속도, 브레이크 작동, 에어백 배치 등의 데이터를 사고 발생 전후로 기록하는 장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EDR은 사고기록장치가 아니라 제작사가 자사 차량의 에어백이 터지는 전개 과정을 보기 위해 개발한 프로그램이라는 것.

소비자주권은 그만큼 현재의 사고기록장치는 신뢰성 측면에서 문제가 크고 기록된 출력물도 신뢰성 측면에서 문제가 크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사고기록장치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비행기 사고기록장치와 같이 자동차의 뇌로 불리는 ECU를 별도로 개발해 탑재해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급발진으로 인한 운전자의 과실 여부 판단에서 영상 블랙박스와 사고기록장치(EDR)가 맞지 않을 경우 제조사가 이를 증명하도록 법적 규제를 좀 더 구체화해 한다고 촉구했다.

■대안 - 페달 블랙박스

소비자주권은 세계 최고 수준의 영상 블랙박스 기술을 활용해 발을 찍는 페달 블랙박스를 장착해 사고 당시 운전자가 페달을 밟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급발진 판단의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주권은 "급발진 사고 대응체계의 근본적인 개선과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적극적인 조치와 제도개선 등을 통해 국민의 의구심과 불안감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토부가 원인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 제조사가 진위 여부를 증명하도록 법적 규제를 좀 더 구체화해야 한다"면서 "킬 프로그램, 페달 블랙박스 등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컨슈머치 = 고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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