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와 출판·서점 업계 갈등…문체부 한 발 물러서며 봉합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오는 11월 21일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새롭게 시행 될 예정이다.

도서정가제란 서점들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의 가격보다 싸게 팔 수 없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것으로,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출간한지 18개월이 지난 책도 할인율이 최대 15%로 제한된다.

도서정가제는 무분별하게 과열된 책값 할인 경쟁과 왜곡된 유통질서를 바로잡음으로써 지나치게 침체된 출판시장을 활성화 시키고, 출판사 및 중소서점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도서정가제 어떻게 ‧ 얼마나 바뀌나

   
▲ 도서정가제 현행과 개정안 비교

도서정가제 개정안의 가장 큰 골자는 할인율 조정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신간과 구간의 구분 없이 순수 가격할인은 정가의 10%까지만 가능하다. 마일리지와 적립금 등 추가적인 혜택을 포함해도 전체 할인율은 최대 15% 이상을 넘길 수 없다.

단, 발행한지 18개월이 지난 구간 도서의 경우 검토를 통해 ‘정가 재조정’이 가능하다.

그 외에도 기존 도서정가제에서 제외됐던 실용서와 초등참고서 역시 도서정가제의 할인 폭을 적용하며, 국가기관 및 지자체 도서관 등에 판매하는 간행물 또한 도서정가제 적용 영역으로 포함된다.

▶도서정가제 개정안 허점투성이? 문제가 된 주요 쟁점

도서정가제 시행을 한 달여 앞두고 출판업계는 벌써부터 진통이 시작됐다. 논의가 되는 몇 가지 세부사항을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출판·서점 업계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운 것이다.

출판사와 중소서점들이 의견을 모아 도서정가제에 대한 수정과 보완을 요구했으나, 문체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 출판업계‧중소서점의 요구사항

출판업계와 중소서점은 도서정가제 위반 과태료를 현행 100만 원에서 사재기 과태료와 비슷한 수준인 2000만 원으로 올리고, 오픈마켓 역시 간행물 판매자로 포함시켜 도서정가제의 규정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증받은 도서’를 중고도서 기준에서 제외시켜 판매가 되지 않아 반납된 새 책이 기증받은 책으로 둔갑해 중고서점에 유입되는 것을 막아야 하며, 경품과 배송료 및 카드·통신사 제휴를 통한 간접할인을 최대 ‘15%’ 이내 할인 혜택에 포함시켜 추가적인 변칙 할인을 막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 외에도 전집이나 세트로 묶어 파는 형태에 대해 정의를 명확히 하고, 구간 정가변경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출판·서점 업계의 요구사항을 종합하면, 도서정가제 시행령의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는 애매모한 규제 정의에 대해 전체적으로 좀 더 명확히 하고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고영수 회장은 “문화부가 과연 올바른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 상황에서 개선할 점과 향후 예견되는 변칙 등 모든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반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있는 업계 의견을 도외시하고 무사안일의 탁상공론만 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회의,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인터넷서점협의회 공동 주최로 공청회가 열리며 사안이 크게 번지자 문체부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업계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논의해보겠다”며 한 발자국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22일 결국 문체부는 출판·유통계 대표들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도서정가제 관련 출판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협의를 통해 법률 규정사항을 제외한 출판·유통계의 요구를 전향적으로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폭탄 세일로 재고처리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오래된 책도 할인 폭이 최대 15%로 제한돼 인터넷서점 및 대형서점들은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각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들이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 발 빠르게 재고 털어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도서 11번가는 인기도서 6000종 빅 세일 이벤트를 통해 최대 9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지마켓에서는 ‘임박! 도서정가제 10월의 구매찬스’라는 이름으로 매일 오전 10시 선착순에 2000명에게 도서 20% 쿠폰을 나눠주고, 1900원에서 3900원 대의 특가 할인을 진행 중이다.

최근 쿠팡은 도서정가제 시행에 앞서 최대 90%의 높은 할인율을 적용한 '책 읽는 가을 도서기획전'을 내달 6일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출판협회는 “이런 폭탄 세일이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희석시키고, 도서 가격에 대한 소비자 불신을 야기 시킨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당분간 세일 전쟁을 막을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서 구매자들의 각양각색 반응들…대체로 ‘불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당장의 가격 변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기존 30~50% 이상 할인 된 가격으로 구매하던 소비 패턴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커다란 상승폭으로 체감 책값이 오른다는 것에 대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서정가제 시행에 대해 한 소비자는 “현재 책을 소비하는 구매자는 한정돼 있다. 안 사던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도 안 살 것이기에 당장의 반발은 적을지 몰라도, 결국은 그나마 기존에 도서를 자주 구매하던 소비계층마저 잃게 되는 정책이 될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반면에 다른 한 소비자는 “정가제를 시행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 한다”고 일부 찬성하면서도, “하지만 그동안 과도한 할인 경쟁 때문인지 정가 자체에 거품이 껴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며 그것부터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도서정가제가 책 가격 상승만 부추기는 제2의 단통법이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오랜 기간 위축됐던 출판업계 시장이 활기를 되찾으면 더욱 다양한 양질의 컨텐츠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등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도서정가제 시행까지 남은 기간은 이제 딱 한 달. 도서정가제의 시행이 출판업계에 어떤 결과물로 도출될지 가늠할 수 있는 역사적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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