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법 거스르면서까지 자동차社 유리한 분쟁해결기준…개정 시급

   
 

[컨슈머치 = 임경오 기자] 자유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소비자가 제품 종류 및 수량, 경제유형, 산업유형 등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주권을 가진다.

소비자주권은 19세기 말 독점자본주의에 의한 독과점기업의 등장으로 상당부분 약화됐으며 최근에는 기업이 대형화ㆍ독점화되면서 이같은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다. 허위ㆍ과장광고로 인한 소비자 피해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20세기 이후 각국 정부는 기업의 불공적 거래행위를 규제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여러 법률을 제정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관련 법령과 고시들을 잇따라 제정,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나아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설치해 담합을 제재하고 공정거래를 유도하고 있으며, 산하 기관으로 한국소비자원을 설치해 소비자 보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현행 법령상의 소비자보호 규정들은

사실 일반 사법인 민법과 상법을 비롯 여러 법률에서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정이 산재해 있다.

예컨대 민법 제390조(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에는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돼 있다.

또 민법 제667조(수급인의 담보책임)에는 1항에는 "완성된 목적물 또는 완성전의 성취된 부분에 하자가 있는 때에는 도급인은 수급인에 대하여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하자의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으며 같은 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에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돼 있다.

상법 제651조(고지의무위반으로 인한 계약해지) "보험계약당시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부실의 고지를 한 때에는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내에,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내에 한하여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규정도 대표적인 소비자 관련 조항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규정들만으로 밤하늘의 별 만큼 수많은 유형의 분쟁을 처리하기엔 한계가 있는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기본법에 근거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 만들어져 현재 시행되고 있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품목별로 상세한 해결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비록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공정위 고시란 점과 사실상 처리기준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젠 대다수 기업들과 소비자들은 해결기준으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으면서 때론 관습법 이상의 효력을 보이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 소비자 분쟁해결기준, 용어 실수에 상위법 침해 현상도

이같은 지위로 인해 가장 법적 토대가 굳건해야 할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서 용어 상 실수들을 남발하고 있으며 나아가 기존 상위법들과의 괴리 또는 침해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

그 중 가장 문제되는 것이 민법 상의 매도인의 하자 담보책임 조항과 소비자분쟁해결기준 중 자동차 관련 소비자 보상 규정의 충돌이다.

민법 제581조 1항에는 종류매매의 목적물에 하자가 있을때에는 계약해제(계약목적 달성 불가능시)나 손해배상(계약 목적 달성 가능시)을 선택할수 있도록 했으며 같은 조 2항에는 하자없는 물건을 청구(즉 완전물급부청구권)할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비자의 폭넓은 권리 행사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이 권리는 안 날로부터 6개월내에 행사가 가능하다(민법 제582조).

즉 하자로 인해 운행이 불가능하다면 안 날로부터 6개월내에 계약해제(환불)나 교환이 가능하고 운행이 가능하다면 안 날로부터 6개월내에 손해배상이나 교환이 가능하다.

문제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 자동차 품목에서는 이같은 민법상 소비자의 권리가 극히 제약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법선 하자물건 바꿔주라는데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매우 까다롭게"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는 자동차의 경우 차량인도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주행 및 안전도 등과 관련한 중대한 결함이 2회 이상 발생하였을 경우 또는 1개월 이후 1년내에 주행 및 안전도 등과 관련한 중대한 결함이 발생하여 동일하자에 대해 3회까지 수리하였으나 하자가 재발(4회째)하거나 중대한 결함과 관련된 수리기간이 누계 30일(작업일수기준)을 초과할 경우에 교환 또는 환급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쉽게 풀어쓰자면 자동차를 받은 날로부터 한달 내에 중대하자가 두번 발생하거나 구입 한달후 1년이내에 중대한 하자가 4번 발생해야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명심할 것은 같은 고장이어야 하며 또한 수리까지 마친 후 고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는 민법 581조와는 배치되는 규정이다.

민법엔 분명히 하자가 있을때에는 안 날로부터 6개월내에 하자 유형에 따라 계약해제 손해배상 완전물급부청구(교환)등의 권리를 행사할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횟수요건은 별도 규정이 없으므로 단 한번이라도 하자가 발생한다면 위 권리들을 행사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는 비록 자동차란 품목 하나에 대해 유독 까다롭긴 하지만 주행 및 안전에 관한 동일 하자가 3번 발생해 모두 수리한후 4번째 같은 고장이 나야만 계약해제(환불)나 완전물급부청구(교환)가 가능하다.

주행 및 안전에 관한 하자가 어떤 하자인가. 주행 중 시동꺼짐이나 브레이크 고장 등이 가장 흔한 주행 및 안전에 관한 하자 유형이다. 이들 하자가 발생하면 운전자는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될지 삼척동자도 다 알 일이다.

설사 사고를 면한다해도 놀란 소비자는 한동안 운전대 잡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죽을 고비를 한번 넘긴 것이다.

▶ 죽을 고비 네번 넘겨야 결함 자동차 바꿔준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이런 고비를 네번 넘겨야만 교환이나 환불해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다른 종류의 고장이면 해당없다. 예컨대 두번은 시동꺼짐, 두번은 브레이크 고장이어도 교환이나 환불이 안 된다. 브레이크 고장이 네번 나든지 시동꺼짐이 네번 나야만 교환 환불이 가능하다.

이 해결기준에 따르면 소비자는 환불이나 교환받기 전에 자칫 사망할 지경이다.

이런 불합리한 규정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물론 자동차는 고가물인 특성상 교환이나 환불을 까다롭게 하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그것도 법적인 테두리내에서만 고민하고 해법을 찾을일이지 이처럼 한참 상위법인 민법을 단순한 고시 지위에 불과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 거스르는 것은 말도 안된다.

실제로 지난 2012년엔 수입차 차주가 5일만에 속도 계기판이 고장나서 차량 교환을 요구한 소송에서 2심은 차주인 소비자의 손을 들어줬다.

즉 민법 제581조 2항에 근거, 완전물 급부 즉 교환 판결을 내렸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의하면 한달내에 동일고장이 또 나든지, 한달이 지나 1년내에 같은 고장이 네번 나야먄 교환이 가능했지만 고법은 민법에 의거 단 한번 고장으로 소비자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민법을 원용해서 곧바로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한가? 현실은 '아니오'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회사들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현실에서 원용하고 있고 민법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자에게 매우 유리하게 돼있는 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의 해법은 무엇인가. 당연히 공무원들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개정해 민법과 부합시키든지 아니면 국회의원 나으리들께서 민법을 하위 지위에 있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맞춰서 개정하는 것만이 괴리를 없앨수 있다.

자 정부와 국회는 어떤 선택을 할까. 소비자들이 두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임경오 컨슈머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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