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임경오 기자] 최초의 성문법으로 웬만한 학생과 일반인도 잘 아는 '함무라비 법전'은 1901년 프랑스 학자 드 모르갱에 의해 서부 이란의 페르시아만 고대도시 유적에서 발견됐으며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모두 282개조로 이뤄진 이 법전의 제196조에는 '만일 사람이 평민의 눈을 상하게 했을 때는 그 사람의 눈도 상하게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으며 제200조에는 '만일 사람이 평민의 이를 상하게 했을 때는 그 사람의 이도 상하게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즉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법에 기초한 형벌법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처럼 고대에는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 대해 피해자가 사적복수를 목적으로 형벌이 전개됐다.

이같은 형벌의 사적실행은 중세에 접어들면서 금지되고 형벌의 국가화가 시작됐다.

국가가 중심이 돼 형벌을 집행하고, 개인의 집행은 금지됐지만 이 시기에는 왕권의 강화로 인한 국왕의 권위를 표현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형벌을 사용함으로써 가혹하고도 준엄했다.

소추기관과 재판기관의 분리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왕의 대리인으로서 재판관이 죄인의 잘못을 취조하고 형벌을 부과했다.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에 대해 준엄한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국왕의 권위유지와 왕권강화에 기여했으니 이를 위하시대라고 한다. 쉽게 말해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겁을 주고 왕권을 강화했던 시기이다.

중세시대에는 범죄인의 손에 의해 사망한 사람보다는 재판관에 의해 사망한 사람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18세기 시민사회에 접어들면서 각국은 절대왕정의 형벌에 대해 성찰을 하고 반성하게 됐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중시여기는 풍조는 형벌을 법률에 의해 규정하고 집행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나타났고 그 형태로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가 확립되게 된다.

인간의 이성을 존중하던 당시의 사회분위기는 누구도 자신의 책임 이상의 형벌을 부과받지 않는다는 '자기 책임의 원칙'이 확립됐으며 형벌의 종류와 집행에 있어서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이를 실시했으니 이 시기 이후를 박애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박애주의 시대에는 잘못한 만큼 벌을 받되 뉘우치면 그보다 감경해주는 시대이기도 하다.

조선비즈가 법조인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을 경우 그 판결이 적합한지에 대해 물어본 결과를 16일 보도했다.

조선비즈에 따르면 설문조사 결과 의외로 법조인 53명은 집행유예가 ‘적합하다’고 답했고 나머지 47명은 ‘적합하지 않다’고 답했다. 뒤집어 얘기하면 법조인의 53%, 즉 과반수가 실형은 과하다고 답변한 것이다.

반면 일반인은 70.3%가 적합하지 않다고 답했고 적합하다고 답한 일반인은 30%가 채 되지 않았다. 10명중 7명이상이 여전히 실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법조인과 일반인의 법감정의 괴리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법 철학과 형법과의 연관성을 알고 기존 타 피고인들과의 형평성 여부를 잘 알고 있는 법조인과 언론이 전달해주는 정보만 들어 온 일반인의 법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게 아닌가.

필자는 법조인이 아닌, 일반인이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과반수 법조인과 똑같은 의견을 내고자 한다.

첫째, 조 전부사장은 파렴치한 고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본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폭언을 하고 항공기를 세웠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필자의 단견으로는 조 전 부사장에게 형법상의 죄를 저지른다는 파렴치한 주관적 고의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항공기를 납치하고 목적지를 바꾸는 테러 행위는 자신의 행위가 어떤 법에 위배되고 또 정확한 형량을 모를지언정 법을 위배한다는 고의는 뚜렷하지만 조 전부사장의 경우 도의적으로 크게 비난할 수 있을지언정 파렴치한 고의는 발견하기 쉽지않다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승객들을 영문도 모르는채 20분 가까이 기다리게 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둘째, 초범이 잘못을 뉘우칠 경우 웬만한 중한 범죄가 아니라면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내리는 경우가 상당수인 게 현실이란 것을 감안해 조 전 부사장의 경우에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내리는게 다른 피고인들과의 형평성 면에서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는 점이다.

재벌의 자녀라고 해서 특혜도 안되지만 역차별 받는 것도 곤란하다.

셋째, 이미 지난해 12월 구속된 후 미결구금일수를 포함 두달간 자유를 잃었고 향후 2심 판결까지 수개월을 더 수감생활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역시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처벌은 받았다고 보기에 2심서 집행유예를 받아도 법 감정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얼추 계산해 수감생활 6개월이면 1년 실형의 형기 절반인데다, 다른 얘기이지만 형기의 3분의 1을 살면 가석방 요건이 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응보의 관점에서도 만족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 조 전 부사장은 일반적인 피고인들과 달리 이미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수없는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관련기사마다 댓글이 수백개에서 수천개씩 달리는 것은 예사일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당사자는 형벌못지 않은 고통을 이미 받았을 것으로 보이기에 여기서 1년 실형이 내려진다면 이미 자기책임의 원칙을 상당히 벗어났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조 전 부사장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많이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조 전 부사장이 연루된 직원을 직접 찾아가 미안함의 쪽지를 전달하고 2억 원의 공탁금을 건네며 공개적으로도 여러번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법적으론 충분히 사과로 받아들일만 하지않을까.

집행유예가 적당하다는 53%의 법조인 의견도 필자와 비슷한 생각에서 그런 의견을 냈을 것으로 보인다.

형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고 행사돼야된다.

차별보다는 특혜를 더 많이 받아왔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퍼져있는 재벌의 자녀에 대한 역차별 금지를 외치는 필자에게 많은 분들이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필자도 모를리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형사법 대원칙을 무너뜨릴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비즈의 설문에는 없지만 만약 무죄항목을 끼워 설문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향후 2심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할지,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집행유예를 내릴지 실형을 내릴지 아무도 알 수는 없다.

조 전 부사장은 분명히 도의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이유들로 현재 수감 상태에서 2심에서조차 실형을 받는 것은 여론재판의 또 다른 희생양에 다름 아니다는게 필자의 짧은 견해이다.

첨언하자면 필자는 조 전 부사장과는 일면식도 없다. 특혜도 없어야 하지만 차별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소박한 욕심에 펜을 든 것이다.

임경오 컨슈머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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