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법 등과 달리 대기업 중심 할부거래업자, 법어겨도 처벌 불가

   
 

[컨슈머치 = 임경오 기자] 춘추 전국시대 초나라의 유명한 재상 손숙오(孫叔敖)는 당대 악사 우맹의 지혜를 눈여겨 보고 그와 절친하게 지냈다.

청백리로 살아온 손숙오는 남길 것이 없으니 어느날 병석에 누워 이런 유언을 아들에게 남긴다.

"내가 죽으면 너는 필시 곤궁해질 터이니 우맹을 찾아가 '제가 손숙오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거라"

손숙오의 아들이 찾아오자 우맹은 생전에 봐 뒀던 손숙오의 의관을 갖추고 일거수 일투족을 상기하며 철저하게 그의 언행을 흉내내 일년 후에는 살아있는 손숙오가 다 됐다.

그 후 한 연회에서 우맹을 만난 초나라 왕은, 그의 언행을 보자 그렇게 아끼던 손숙오가 환생한 것처럼 기뻐하며 최고위 정승으로 봉하고자 했다.

우맹은 "그렇게 덕이 많고 충성스런 손숙오도 죽고나니 그의 아들이 송곳 하나 꽂을 땅 한 평도 없어 끼니를 잇기 어려운데 저같이 부족한 인간이 어찌 나라를 돌보겠나이까? 차라리 죽여 주소서"라며 고사했다.

깜짝 놀란 초왕은 자신의 무심을 사과하며 손숙오의 아들에게 400호에 달하는 봉토를 하사하고 우맹을 중용했다.

이 사건에서 파생된 고사성어가 있으니 우맹의관(優孟衣冠)이 바로 그것이다.

'우맹이 의관(衣冠)을 입었다'라는 뜻으로 원래는 미담에서 근거한 고사성어지만 지금은 사람의 겉모양만 같고 그 실제는 다름을 비유하는 말로 바뀌었다.

소비자 권익 보호를 기치로 내걸고 있지만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하고 우맹의관인 법률이 있다.

참 살기 좋은 세상은 법이 없는 세상이라고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에 위반해서는 안될 사항을 법령으로 규정하고 법을 어기면 일정한 제재를 가하거나 형사처벌을 하기도 한다.

이때 금지 사항만 규정하고 제재나 처벌규정이 없다면 이 법은 장식품일수 밖에 없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 같은 법 위반시 선불식 할부업자만 처벌, 일반할부업자는 처벌 불가…왜?

우리 현행 법률중에 위반해서는 안될 사항만 잔뜩 늘어놓고 정작 법 위반시 처벌규정이 전혀 없는 법이 있다.(1월 15일자 '소비자 나몰라라' 하는 '할부거래법'?, 1월 19일자 할부거래법 사업자 처벌규정 '사실상 전무'…'소비자는 뒷전' 제하 기사들 참조)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할부거래법)에는 일반 할부거래업자와 선불식 할부거래업자에 관한 목적과 정의가 명시되고 이들에 대한 청약철회 방법 청약철회 효과 등도 규정돼 있다.

문제는 처벌규정의 형평성이다.

상조등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는 이 법 위반시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ㆍ과징금ㆍ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받을 수 있으며 누적 위반시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그런데 일반 할부거래업자는 처벌규정에선 쏙 빠져버리고 없다. 그러다보니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위와 같은 제재나 처벌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할부거래업자가 청약철회를 거부하더라도 공정위는 어떻게 손을 쓸수가 없다.

다만 계약서상에 청약철회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명시하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할수 있다는 규정은 있지만 이 경우에도 계약서상에 청약철회를 명시해놓고도 이를 거절한다면 할부거래법상으론 어떻게 해볼도리가 없다.

공정위는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 소비자, 민법 등 다른 법령에 근거한 법적 절차 밟아야만 보상 가능

이 경우 구제받으려면 소비자가 계약서상의 문구를 근거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 밖에 없다. 물론 소비자가 할부거래법대로 조치를 취했고 계약서상에 청약철회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을 경우 승소 가능성은 높다고 할수 있다.

소송가액이 2,000만 원을 넘지 않는다면 소액사건심판법에 의해 상당히 간편하게 빨리 진행할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송은 소송이다. 법원에 누가 가든 최소 2회 이상 가야하고 1회 또는 그 이상의 변론을 거쳐야할수도 있으며 적어도 수개월의 시간은 소요된다.

돈 몇푼 받자고 수개월동안 소송하기는 상당히 번거롭다. 결국 소비자는 울며겨자먹기로 할부거래업자가 내건 조건에 순응하는게 현실이다.

소비자를 보호하자고 한 법이 사실상 사업자인 일반 할부거래업자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할부거래법과 모든 면에서 유사한 전자 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상거래법)이나 방문판매등에 관한 법률(이하 방문판매법)과 비교하면 할부거래법이 어느 정도의 우맹의관인지 드러난다.

이들 전자상거래법이나 방문판매법에는 사업자들이 해당 법을 위반할 경우 공정위는 할부거래법상 선불식 할부업자에 대한 제재와 마찬가지로 시정명령 과징금 영업정지 형사처벌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전자상거래 업체, 방문판매 업체, 선불식 할부업자등은 관련법 위반시 모두 처벌이 가능한 상황에서 유독 일반 할부거래업자에 대해서만 공정위 조치를 불가능하게 법이 막아놓았다.

할부거래법은 소비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할부거래업자 보호를 위한 법이란 비난을 피할수 없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 법으로 소비자권리 행사 원천봉쇄?

전자상거래법이나 방문판매법은 기간내 청약철회를 인정하면서 서면 이외의 방법으로 청약철회가 가능토록 했다.

예컨대 전화 녹취, 구술 녹취, 상대방 시인등의 증거만 있으면 7일 또는 14일 이내에 청약철회가 가능하지만 할부거래법상에는 서면으로만 청약철회가 가능하도록 명문화했으므로 설사 전화로 청약철회를 했더라도 인정이 되지 않는다.

할부거래하는 소비자들은 이 규정을 잘 모를 경우 기간내 청약철회 규정을 알고도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할부거래법의 불합리한 점은 또 있다.

전자상거래법이나 방문 판매법에는 물건에 하자가 있을 경우 물건을 받은날로부터 3개월 또는 안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계약을 해제할수 있다는 규정이 있지만 할부거래법에는 그 같은 규정이 없다.

즉 하자가 있더라도 물건을 받은지 7일 이내에 내용증명을 발송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상황이든지 청약철회는 안된다. 오로지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키는 해지만 가능할 뿐이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이란 옛말이 있다.

여름의 화로(火爐)와 겨울의 부채라는 뜻으로, 아무 소용없는 말이나 재주를 비유해 이르거나, 또는 철에 맞지 않거나 쓸모없는 사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여름의 화로로 젖은 것을 말릴 수 있고, 겨울의 부채라 해도 그것으로 불씨를 일으키는 일을 할 수도 있지만 할부거래법은 그런 정도의 역할도 기대하기 힘든 상태다.

국회에서는 왜 유독 많은 사업자들중 대기업 사업자가 많은 일반 할부거래업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아니 쏘옥 빼버렸을까.

마지막으로 헌법 조문 하나 언급하면서 글을 맺겠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임경오 컨슈머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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