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이용석 기자] 소비자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는 소비자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

이는 1901년 신발가게로 출발해 미국의 고급 백화점으로 성장한 노드스트롬의 유명한 일화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한 고객이 노드스트롬에 타이어를 환불하겠다고 찾아온다. 이에 노드스트롬은 환불을 받아준다.

중요한 점은 노드스트롬에는 타이어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이어는 이전 인수업체에서 판매하던 제품으로 인수 후 제품을 팔고 있지 않아 환불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노드스트롬 판매사원은 그 고객이 악의가 있든 없든 간에 일단은 노드스트롬을 찾아온 고객으로 생각하며 기꺼이 환불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얼마전 초고속인터넷 관련 제보를 취재하는 중에 억울한 소비자 사연이 있었다.

인터넷 서비스를 가입한 한 소비자가 가입 후 한달 여만에 새로운 상품이 출시돼 약정한 3년간 동일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더 많은 요금을 지불하게 됐다. 

업체 관계자와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입을 맞추기나 한 듯이 같은 예시를 들며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들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도 이전에 산 물건을 세일 기간에 들고가서 '나는 비싸게 샀으니 차액을 돌려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상시적으로 할인 판매를 진행하는 백화점, 대형마트와 한 번 가입하면 보통 3년 이상 장기 약정을 걸고 사용하는 인터넷서비스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는 제도상 어쩔 수 없는 문제로 근거의 타당성은 차치하도록 하자.

업체 홍보팀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단순 변심으로 인해 청약철회 기간에는 계약 취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방문판매를 통해 가입했다면 14일 이내에 청약철회가 가능. 전자상거래 7일).

‘아이폰’으로 유명한 미국 애플은 이번 제보와 유사한 상황에 대비해 가격조정제도라는 환불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제품 구입 후 14일 이내에 동일한 상품이 할인이 됐다면 그 차액만큼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두 제도의 목적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보자와 같은 상황을 가정한다면 우리나라 업체나 미국 업체가 청약철회, 차액보상를 위해 소비자에게 준 시간은 14일로 동일하다.

문제는 애플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고객 불만 상황을 예상한 것은 물론 ‘어느 제품이든 상관없이 가까운 매장에 찾아가서 차액을 환급받을 수 있다’고 정확히 명시해 소비자들은 당당하게 차액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단순 변심에 의한 환불을 해야한다.

웬만한 소비자들은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단순 변심에 의한 환불은 업체에게 진상 고객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이를 감수하고도 꼭 환불을 받겠다고 하면 직원들의 따가운 눈빛과 차가운 목소리를 참아야 하는 것은 물론 내용증명을 써 보내는 등 복잡한 행정처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업체가 같은 손해를 보더라도 소비자를 당당하게 만드느냐, 진상으로 만드느냐는 한 끗 차이다.

불합리한 점을 문제 제기하는 고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헤아려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려고 먼저 노력한다면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고객 신뢰를 얻을 수 있지 아닐까. 

노드스트롬의 신입사원이 처음 받는 회색다이어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뛰어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에서 최고의 판단을 내리십시오. 더 이상의 규칙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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