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병의원 미용시술도 치료용 둔갑…수년 내 존폐 기로 전망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실손의료보험 및 비급여 진료 악용 사례가 늘어나면서 보험업계가 신음하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항목 등을 보장해 주는 상품으로, 가입자 수가 3,200만 명이 넘어서며 이제는 어엿한 ‘제2의 국민건강보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될 정도다.

그러나 이해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무분별한 의료 쇼핑, 병원의 과잉 진료 등이 만연하면서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에는 높아진 손해율 탓에 실손보험의 향후 지속 가능 여부에 대한 논의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실비 있으시죠?” 달콤한 유혹

# 최근 주부 박 씨는 미백주사를 맞기 위해 A의원을 찾았다가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피부 마사지와 미백주사와 같은 미용목적의 시술을 받고 도수치료를 한 것처럼 진료영수증을 발급해주겠다는 것이다.

도수 치료는 실손보험 보장을 받을 수 있다. 딱히 보험사기라고 자각하지 못한 박 씨는 오히려 이를 거절하면 바보처럼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또 다른 B병원은 아예 보험설계사, 병원 직원을 브로커로 이용해 값비싼 피부관리나 휜 다리 교정 시술 등의 비용을 실비보험금으로 전액 보상받을 수 있다며 환자들을 끌어 모았다. 환자들은 공짜로 시술을 받을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쉽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최근 보험사기의 가장 흔한 사례는 진단명을 멋대로 바꿔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닌 미용이나 건강관리 차원의 시술을 치료용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또 불필요한 입원이나, 입원 기간 연장을 권하거나 심지어 보험설계사가 의사와 짜고 허위 장해진단서를 발급받는 경우도 있었다. 보험사기 수법이 나날이 다양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보험설계사들은 모집한 10여명의 보험가입자가 특정 병원에서 집중적으로 ‘동일한 특정 수술’을 수 차례 반복적으로 실시한 것으로 의료기록 등을 조작해 보험금을 타냈다. 이른바 ‘수술 횟수 부풀리기’ 수법이다.

이들은 경영난에 처한 병원의 약점을 이용해 가입자를 병원에 알선해 주고, 보험가입자에게 허위 입원·장해 진단서를 발급받도록 해 보험금을 챙기기도 했다.

▶자꾸 오르는 보험료…피해는 선량한 소비자 몫

문제는 불필요한 과잉진료와 보험사기 등으로 새는 보험금이 선량한 대다수 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급하는 보험금이 늘어나면서 손해율이 높아진 보험사들은 불가피하게 실손보험료를 올리고, 이 부담은 고스란히 가입자들이 나눠가지게 된다. 

현재 보험사가 주장하는 손해율은 120%대를 넘어섰다. 이 때문에 삼성화재, 현대해상, 동부화재, KB손해보험 등 대형 손해보험사들이 올 들어 실손보험료를 22~27%씩 줄줄이 인상했다.

소수의 이른바 '나이롱 환자' 때문에 일년에 한 번 보험금을 탈까 말까한 대다수의 소비자들의 부담만 커지는 형국이다.

현대해상화재 삼성화재 등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되면 향후 수년 내 실손보험료가 두 배 이상 오르고 실질적으로 보험 혜택이 절실하게 필요한 노년층들은 금전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실손보험 계약을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병원에서 과잉진료를 부추겨 악용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소병원 수익의 80%가 보험사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소리까지 있을 정도”라며 “실손보험의 과잉진료가 이뤄지면 보험사가 손해 볼 뿐 아니라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져 선량한 실손보험 가입자들까지 결국 피해를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보험사기 및 실손보험가입자 과잉진료 문제가 점차 심각해짐에 따라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제화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개인정보보호 문제로 과거 진료기록 확인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비급여 의료 정보의 표준화⋅사용 의무화 추진 및 공보험과 연계한 비급여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당국이 실손보험의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제시한 '기본형+특약' 방식 상품구조 개편안의 실효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보험업계는 비급여 진료 코드화 등 근본적 대책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며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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