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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레몬’ 앞에 명차는 없었다
[칼럼] ‘레몬’ 앞에 명차는 없었다
  • 오길영 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19.04.15 19: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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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교수님 한 분은 평소 올곧고 검소하며 소탈하신데, 그래서 그는 마치 소나무 같은 학자의 기품을 지녔다.

오길영 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오길영 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그는 어느 날 자동차 애호가인 필자에게 다소 부끄러운 말투로 자신은 죽기 전까지 딱 한 번은 벤츠를 타 보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평생 공부만하며 살다보니 좋은 음식이나 좋은 옷 등 자신을 위한 일에 한 번도 욕심을 내본 적이 없지만, 은퇴를 하면 한 번이라도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상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왜 하필 벤츠인지를 물으니, 그 대답은 간단했다. ‘명차’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잘 모른다는 그는 더 좋은 차도 있겠지만 남들이 명차라고 하는 자동차라면 자신을 위한 상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언젠가 상을 주게 되는 날이 오면 필자를 꼭 초대해달라고도 말했다.

아마 많은 소비자들이 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꼼꼼히 따져보지 않아도 한국 사람에게 벤츠란 대체로 명차가 맞는 모양이다.

그러나 며칠 전 필자가 만난 벤츠는 그리 명차가 아니었다.

레몬법 적용을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 위한 자리에서 그들은 끝내 언론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기자들의 카메라를 거부했으며, 심지어 홀 한가운데에 전시해놓은 그들의 명차를 ‘덮개 천’으로 꽁꽁 싸놓기까지 했다. 반짝이는 삼각별 마크가 카메라에 담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그리고는 몇 명의 건물 보안요원을 파견해 공개된 로비를 서성이던 방송용 카메라를 검사하도록 했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테러 등 보안상의 이유였다.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벤츠코리아가 위치한 건물은 서울역 바로 맞은편의 그 유명한 ‘서울스퀘어’ 빌딩이다. 1층 로비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자리하고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애초에 방송사 마크가 붙어있는 촬영용 카메라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보안검사 품목인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었다. 촬영기자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불쾌한 기분을 참아가며 촬영된 영상을 현장에서 공개했지만 필자는 의문이 들었다.

‘방송국 카메라 검사는 사실 법관의 영장이 필요한 사항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그 명차를 만드는 회사가 레몬을 들고 찾아온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인 것이다.

레몬은 먹기가 편한 과일이 아니다. 만약 이를 오렌지라 생각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면 그 표정은 어떠할까? 그 강렬한 신맛에 깜작 놀라고 당황해 다들 표정이 일그러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레몬을 오렌지인줄 알고 구매한 사람을 구제하고자 마련한 미국의 주법을 ‘레몬법(Lemon-Law)’이라고 한다.

즉 신차를 구매했다가 동일하자가 반복되거나 하자의 치유를 위한 수리기간이 장기간 소요된 경우에, 새로운 자동차로 교환을 받거나 환불을 해주게 하는 소비자보호제도를 말한다. 물론 TV나 냉장고 등 전자제품이나 다른 공산품들도 당연히 이러한 권리를 보장받는다.

그럼에도 유독 자동차만을 위해 독립된 법률을 만든 이유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미국의 레몬법을 꽤나 장시간 연구해 본 필자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고 싶다.

첫째, 다른 공산품과는 달리 자동차의 안전은 사람의 생명 및 신체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둘째, 자동차는 공산품 가운데 매우 고가의 제품으로 교환이나 환불을 하게 될 경우 생산 또는 판매자의 손실이 크기 때문에 거부당하기가 일쑤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사유로 인해 특별히 강화된 소비자보호책을 강구한 것이 바로 레몬법인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소비자는 올해 1월 1일자로 레몬법의 혜택을 보게 됐다. 국내에 인증을 마치고 판매되는 모든 차량이 그 대상인데, 단 자동차의 판매자가 서면계약서에다 레몬법의 적용을 명시해야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를 법학을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참으로 요상한 조문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살핀 레몬법의 취지를 생각해보자면, 당연히 강행 규정으로 일제히 적용돼야 할 것이 아닌가?

덕분에 자동차판매사의 의지에 따라 레몬법 적용의 가부가 정해지게 됐다. 레몬자동차를 끌고 찾아온 소비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이제 ‘사또 마음대로’가 된 것이다.

일찌감치 레몬법을 적용하겠다는 회사에서부터, 적용은 할 것이나 언제부터 적용할지 모르겠다는 회사, 그리고 묵묵부답인 회사까지 참으로 다양한 입장으로 전개되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앞으로 오렌지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만약 레몬일 경우 교환·환불을 해주는 회사인지를 알아서 따져가며 구매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에서 보듯, 명차라는 인식이 높아서, 또는 자동차의 가격이 매우 고가라서 당연히 레몬을 수용해주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또한 설사 그 적용의사를 밝힌 회사라고 해도, 레몬을 들고 온 소비자를 반기리라 생각하면 그 역시 오산이다. 보안상의 이유로 무언가 털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글을 마무리하려다 보니 자꾸 아우디가 생각난다. 같은 날 함께 찾아가 본 아우디는 그래도 벤츠보다는 나았다. 그들 또한 첫 응대는 동일했다. 건물 입구에 적힌 층별 안내에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입점을 알리는 모든 안내판을 미리 제거해놓았기 때문이다.

전시차를 돌돌 싸서 덮어놓은 벤츠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던 처음과는 달리, 아우디의 담당 임원은 결국 기자들을 응대했으며 항의서한을 전달하는 카메라 앞에 섰다. 즉, 회사 측의 결정된 방침을 어겨가며 레몬을 들고 온 소비자를 공개적으로 만나고 만 것이다.

회사의 문책을 감당해가며 스스로 이러한 결단을 내린 그의 속내를 들어보지는 못했으나, 필자의 생각에는 아마도 곤혹스러워도 예를 갖추어 살아가는 한국인의 자기희생을 보는 것 같았다. 독일명차의 자존심이 아니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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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2019-04-15 20:32:3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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