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칼럼] 누구나 알고 아무나 하는 인문학 ③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인문학을 함께 공부할 윤성호라고 합니다.

그간 문학, 역사, 철학 등 소위 인문학으로 불리는 공부를 하며 조금이나마 얻은 지식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이번에 컨슈머치와 함께 독자 여러분을 찾아뵐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우선 인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종교와 예술과 철학이 어떻게 발생됐는지 살펴본 후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 종교에 관해 고찰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저자의 말>

그리스, 종교의 시대에서 철학(哲學)의 시대로

 

종교에서 발원한 통찰력, 철학으로 발전

우리는 철학이 철저한 논리를 통해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도출하는 활동이니 철학과 종교는 배타적 갈등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철학은 논리와는 거리가 먼 주술과 종교에서 비롯됐습니다.

주술의 시대를 거쳐 종교 활동을 시작한 인류의 두뇌는 드디어 가상에서 현실을 분리하기 시작했고, 현실에서 비유의 연관을 벗겨내려고 힘 써 왔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기원을 규명하고 자연현상에 대한 인과관계를 낱낱이 파헤치려는 노력을 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엄밀한 논리와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는 자유로운 사고가 전제돼야 했습니다. 그런데 엄밀한 논리와 자유로운 사고가 전제가 돼야 하는 철학이, 역설적이게도 논리와는 거리가 먼 종교적 통찰에서 시작됐습니다.

천재적인 몇몇의 사제와 주술사, 달리 표현하면 굿을 하고 점을 보는 무당과 샤먼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고 그들의 이러한 직관적 통찰이 철학적 사고의 원형이 된 것입니다. 주술사와 무당 계급이 사물의 본질을 직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충분합니다. 원시시대의 주술사나 제정일치 사회의 사제는 당시 사회에서 지식을 독점하던 최고 엘리트들이었습니다. 당대의 최고지식을 세례 받은 그들이야 말로 사물에서 비유의 연관을 벗겨낼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이었을 것입니다. 인류는 이제 종교적 사제의 직관에 힘입어 호모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라는 이름에 걸 맞는 철학적 사고행위가 가능하게 됐습니다.

 

고대 그리스, 디오니소스의 주술적 제전이 피타고라스의 철학적 사유로 발전

인류가 본격적으로 철학적 사고를 시작한 곳,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에서 최초로 철학적 사유를 했다고 평가받는 피타고라스를 통해 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가상과 현실을 연결한 주술사였고 교단을 이끈 사제였으며 피타고라스 정리를 발견한 수학자이자 세상이 모두 수로 이뤄졌다고 주장한 철학자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주술과 종교적 통찰력으로 철학적 사고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피타고라스 이전의 시대를 이해해야 피타고라스로부터 기원한 서양철학을 알게 됩니다. 피타고라스 이전 시대에 행해진 디오니소스 제전이 오르페우스를 거쳐 피타고라스로 이어지는 계보를 살피면 주술활동과 원시종교가 철학적 사유로 이어지는 일련의 관계가 파악됩니다.

 

디오니소스 제전의 광란과 오르페우스의 개혁 

그리스의 문화의 원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오니소스 신화와 디오니소스 축제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다음은 디오니소스 신화와 축제에 대한 설명입니다.

▲디오니소스 신화

제우스는 인간 여인 세밀레와 정을 통해 디오니소스를 낳게 되나, 제우스의 정식 부인 헤라가 세밀레를 질투해 세밀레가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죽도록 유도했습니다. 제우스는 세밀레가 벼락에 맞아 죽을 때 배 속에 있던 아기를 재빨리 꺼내 허벅지에 감췄고 이 아이는 10개월 후 그의 허벅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가 디오니소스입니다.

또 다른 탄생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페르세포네(Persephone)의 아들입니다. 디오니소스는 어렸을 때 제우스의 아내 헤라에게 희생됩니다. 헤라는 타이탄들(Titans)에게 디오니소스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디오니소스는 타이탄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먹히고 심장만 남게 되나 그 심장을 세밀레가 먹고 임신을 해 그는 결국 두 번 태어납니다.

▲디오니소스(바카스) 축제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상에서 태어난 타이탄들이 디오니소스를 찢어 먹고 신성을 얻었다고 생각해 특정한 날이 되면 술과 함께 들짐승을 여덟 갈래로 찢어 먹는가 하면 심지어는 인간 소년을 여덟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 먹는 광란의 축제를 열어 신성을 얻고자 했습니다. 축제에 광적으로 도취해 신의 경지에 들어서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신비로운 지식(그노시스)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아직까지는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상태의 축제입니다.

▲오르페우스 신화

오르페우스는 음악의 천재로 아름다운 아내 에우리디케(Eurydice)를 열렬히 사랑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사망하자 저승의 지배자 하데스를 찾아가 에우리디케를 구해옵니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말을 무시하고 이승에 발을 딛기 직전 뒤를 돌아봄으로서 에우리디케를 잃게 됩니다. 오르페우스는 아내의 죽음을 몹시 슬퍼한 나머지 다른 여자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고 그 여인들의 질투를 받아 몸이 찢겨 죽는 최후를 맞습니다. 

오르페우스는 디오니소스 축제가 지나치게 광란으로 흐르면서 타락하자 영혼 불멸 등의 정신적 요소를 가미한 오르페우스 비밀교단을 만듭니다. 오르페우스는 인간이 타이탄과 같은 악의 성질을 가지는 동시에, 타이탄이 먹은 디오니소스에서 유래하는 신적인 요소도 갖췄다면서 인간은 타이탄적 요소를 극복하고 신적 요소를 조장함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영적 쇄신을 통해 디오니소스 축제로 대변되는 당시의 육체적 정신적 타락에 대한 일대 반성 및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윤회·전생을 전제하고 있어 역시 윤회설을 강조하던 피타고라스 교단과 밀접히 연결돼 있었습니다. 정신적 사유가 감각보다 우선한다는 그리스적 사유문화는 오르페우스 교단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타고라스, 철학적 사유의 시작

오르페우스가 디오니소스를 개혁하려고 했다면 피타고라스는 오르페우스 교단의 정신개혁을 더욱 혁신하려고 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발견한 수학자이면서 매우 혁신적이고 신비로운 사상가입니다. 또한 세상이 수로 이뤄졌다고 주장한 철학자로서 현의 길이를 3분의 2로 하면 음이 5도 올라가고 2분의 1로 하면 한 옥타브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낸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의 진짜 직업은 수많은 금기와 주술을 계율로 엮어 당시 그리스를 영적으로 개혁하려고 한 피타고라스 교단의 교주였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철학자’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이기도 합니다. 도시국가 플리우스의 왕으로부터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에 대해 “필로소포스”라고 대답해 필로소퍼(philosopher 철학자)의 어원이 됐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자기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제자 중에 스승의 모습을 직접 본 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제자들에게 질문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누구라도 ‘아우토스 에페’(어른께서 말씀하시되)를 덧붙이면 불변의 진리가 돼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피타고라스 교단은 금욕생활을 하면서 윤회를 믿고 채식을 한 결속력 강한 비밀 공동체였습니다. 이 교단은 각종 금기사항으로 유명했는데 고기와 콩을 먹지말라, 흰수탉을 만지지 말라, 떨어진 물건을 줍지 말라, 침대의 자국을 그대로 남기지 말라, 잎사귀를 부러뜨리지 말라 등이 있었습니다.

피카고라스는 이 교단을 통해 종교적 통찰을 통한 과학적 사색을 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종교적 사색을 통해 얻은 수리적 신비주의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바탕이 됐습니다. 수리에 대한 탐구정신은 사유가 감각보다 더 고귀하고 사유의 대상이 지각의 대상보다 더 실재적이라는 그리스적 사고방식의 원형이 됐습니다.

철학이 매우 엄밀한 논리와 무전제적인 자유 사고를 과시하는 듯 보이나 그 궁극에 종교적 세계관과 신비적 통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철학은 종교를 부정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종교적 가치관에서 생성된 순수한 사유의 세계라는 사실을 피타고라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을 대리해 가상을 현실에 구현했던 사제들은 이제 당대의 지식과 종교적 통찰력을 기반으로 사물에서 비유적 연관을 제거한 본질적 모습을 찾으려 했고 이러한 노력이 결국 철학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저자 윤성호

인문학 대중화를 통해 사회공헌을 추구하는 인문학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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