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칼럼] 누구나 알고 아무나 하는 인문학 ④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인문학을 함께 공부할 윤성호라고 합니다.

그간 문학, 역사, 철학 등 소위 인문학으로 불리는 공부를 하며 조금이나마 얻은 지식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이번에 컨슈머치와 함께 독자 여러분을 찾아뵐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우선 인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종교와 예술과 철학이 어떻게 발생됐는지 살펴본 후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 종교에 관해 고찰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저자의 말>

 

철학의 뜻과 그리스 자연철학

 

철학이라는 말 : 哲學이란?

哲學이라는 단어가 일본말이라는 정도는 다 알고계시죠? 그렇습니다. 철학은 일본말입니다.

니스야마에(西周, 1829-1897)라는 일본인 학자가 있었습니다. 주자학에도 능통하고 서양학문도 익힌 바로 이 사람이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거기에서 서양 사람들이 공부하던 철학 즉, 필로소피(Philosophy)를 접했고 이 학문을 일본에 처음 소개했습니다. 그는 1874년 백일신론(百一新論, 백가지 학문을 하나로 통일하는 새로운 이론)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철학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필로소피를 ‘다양한 학문을 포괄하는 이론’ 정도로 이해한 후, 동양적 개념으로‘지혜로운 학문’정도가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학자(漢學者)이기도한 니스야마에는 동양 고전에서 자주 접한 철왕(哲王, 지혜로운 왕)의 개념에서 착안해 哲(밝을 철, 지혜로울 철)자를 붙여‘지혜로운 학문’을 뜻하는 哲學(테쯔가쿠)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과연 ‘지혜로운 학문’이 필로소피의 의미를 정확히 담고 있을까요? 불행히도 니스야마에가 만들어낸 철학이라는 말은 필로소피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큰 한계가 있습니다.

 

필로소피아(Philosophia) - ‘지혜’의 사랑이 아니라 ‘지식과 과학’의 사랑

일본말 哲(밝을 철) 學(배울 학)을 아무리 읽어 봐도, 철학의 뜻이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철학의 그리스 원어인 ‘필로소피아’를 분석해보면 어떨까요?

필로소피아는 필로(Philo = Love)와 소피아(Sophia = Knowledge)의 합성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니스야마에의 영향인지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해석이 맞습니까?

희랍어(그리스어) ‘필라소피아’가 갖는 뉘앙스를 추적해보면 우리가 쓰는 철학이라는 단어는 필로소피아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지혜’때문입니다. Sophia를 지혜로 인식하는 한 필로소피의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유교문화권에서는 지혜라는 말을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실용적 통찰 혹은 직감’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지혜는 논리나 지식을 넘어선 상위의 어떤 개념입니다. 그러나 ‘Sophia’는 동양에서 말하는 이런 ‘지혜’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당시 희랍세계는 자연과 우주 그리고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희랍사람들은 이에 대한 답을 직관적 통찰에서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논리적 성찰과 과학적 지식을 통해 찾으려고 했습니다. 자연과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지식,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지식, 바로 이것이 소피아입니다.

삶의 통찰을 의미하는 지혜와는 대척점에 서있는 개념일지 모릅니다. 그리스 철학의 최고봉 플라톤도 소피아를 ‘에피스테메’(참된 지식)과 동일어로 사용했으며 ‘참된 지식’이란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식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인생을 통찰하고 관조하려는 ‘지혜’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게 인식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의 ‘참된 지식’과 동양인들의 ‘지혜’는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그리스 철학은 동양적 의미의 지혜를 공부하는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그리스인들은 동양적 개념의 지혜라는 측면은 무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지혜’가 아니라 ‘자연과 우주의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모습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논리적인 지식’입니다. 따라서 필로소피아는 ‘지혜의 사랑’이 아니라 ‘지식·논리·과학의 사랑’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서양문화의 원천 - 그리스 자연철학의 시작 도시국가 밀레투스(Miletus)

그리스 철학이 아테네 혹은 그 근방의 어떤 도시국가(폴리스)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은 아테네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그리스 중심부에서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그 동네가 그 동네이긴 합니다).

서양문화의 원천인 그리스 자연철학은 그리스 세계의 변방, 그리스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국가 밀레투스에서 시작됩니다. 밀레투스는 이오니아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이고 이오니아 지방은 지금의 터키 지역으로서 서양사람들은 소아시아(Asia Minor)로도 부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북부 도리스족이 침입하면서 바다 건너 이오니아 지방으로 이주했고 밀레투스, 에페소스 등의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밀레투스는 지역의 특성상 아랍, 인도 등 동방제국과의 접촉으로 일찍부터 자연철학과 역사학, 지리학 등의 선진 학문이 발달했습니다. 그리스 문화와 동방문화가 만나는 지역적 특성으로 문화의식이 일찍부터 꽃피었고 상업도 발달해 경제적 부도 축적돼 있었습니다. 고대의 정신적 혁명이 일어나기에는 안성맞춤인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철학이란?

인류는 설명이 불가한 자연현상을 목도하거나 엄청난 자연재해 등을 겪으면 이러한 현상을 주술이나 종교, 신화를 통해서 설명하거나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번개가 치거나 폭풍우가 내리면 신이 분노한 것이고 따사로운 햇빛과 시원한 바람,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가 내리면 신이 자연을 통해 기쁨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지요. 약간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신의 인격성으로 자연현상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인격화된 신입니다. 자연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이러한 인격성을 바탕으로 한 신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자연 자체의 질서 안에서 그 원인을 찾거나 혹은 합리적 사고를 통해 추론을 하는 방식 등을 동원해 현상에 대한 근원적인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인격성을 배제하고 자연현상을 탐구했으므로 후대에서 이들의 연구 활동을 자연철학이라고 불렀습니다.

 

밀레투스의 자연철학

지금의 터키 지방, 당시 이오니아 지방의 밀레투스 지역에서 고대 철학자들이 나타납니다. 당시의 철학자들은 산과 들, 달과 별을 연구하면서 자연의 이치와 우주의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철학자인 동시에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습니다. 최초의 자연철학자로서 철학의 아버지로 회자되는 탈레스(기원전 624~기원전 546년경), 그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기원전 610~기원전 546년경),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 아낙시메네스(기원전 585~기원전 528년경)가 대표적인 밀레투스의 자연철학자입니다.

▲탈레스 - 만물의 근원은 물

탈레스는 당시 그리스 사람들이 자연현상을 신의 뜻이라고 생각할 때 자연 그 자체에서 자연현상의 원인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탈레스는 태양과 달을 주의 깊게 관찰해 일식을 예측했고, 일년을 365일, 한 달을 30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탈레스는 모든 사물은 하나의 물질에서 시작되고 이것이 바로 ‘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세상의 사물은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물’이 이 모든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모든 생물은 ‘물’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 - 만물의 근원은 무한정한 그 무엇

만물이 하나의 물질에서 시작한다는 탈레스의 생각을 이어받았지만, 그 하나의 물질은 물이 아니라 형태도, 한계도 갖지 않는 '무한정한 그 무엇'이고 그것이 땅, 물, 불, 공기를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낙시메네스 - 만물의 근원은 공기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공기'로 규정하면서 공기가 점점 두꺼워지면 바람이 되고, 바람이 다시 구름이 되고, 구름은 다시 물이 되고, 물은 다시 진흙이 되고, 진흙은 돌이 된다고 주장하고 공기가 점점 얇아지면 결국 불이 된다고도 주장했답니다. 또한 그는 인간의 영혼도 공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세 명의 자연 철학자들의 주장은 당시에는 아주 혁신적이었습니다. 신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만들고 변화시킨다는 신화적 믿음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 최초로 과학적 사고의 틀을 제공한 것입니다.

신들의 이야기에서 직접 자연을 관찰하고 인과관계를 밝혀 설명함으로써 드디어 인간은 신의 세계를 버리고 자연의 세계를 향했습니다. 그후 그리스 본토에서 활동한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훌륭한 철학자들은 자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의 사고를 인식대상으로 삼아 위대한 철학의 시대를 엽니다.

현대 인류가 이룬 문화와 과학의 눈부신 성취가 그리스 자연철학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는 만큼 그리스 자연철학은 서양문화의 원천을 넘어 인류문화의 원천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저자 윤성호

인문학 대중화를 통해 사회공헌을 추구하는 인문학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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